역행하는 언론 시계…안녕 못한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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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13 방송계 키워드

새 정권과 함께 시작된 2013년도 어느덧 끝을 향하고 있다. 새벽종도 울게 하고 새 아침도 밝히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2012년을 보냈던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 했던 약속을 실현할 수 있는, 또 그래야만 하는 위치에서 올 한 해를 보냈지만 실현된 건 별로 없어 보인다.

이런 현실은 방송계도 예외는 아니다. 애초에 많은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니건만, 방송·언론의 정치적 독립과 공정성 등의 보장과 관련한 내용은 단 하나도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내는 사이 지상파 방송의 보도는 비판을 넘어 조롱의 대상이 됐고, 대중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대안언론, 손 글씨로 적은 대자보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신뢰받는 언론인’ 손석희씨가 종합편성채널 JTBC의 보도담당 사장을 맡으며 논란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었고, 그가 메인뉴스의 앵커까지 맡고 3개월이 지난 지금 JTBC는 유일하게 정권에 비판적인 뉴스도 생산하는 방송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현실 속 언론인들은 지금 과연 안녕들 할까. <PD저널>은 열 개의 열쇠말로 2013년을 정리한다. 열 개의 열쇠말로 되돌아본 2013년 정말 안녕했는지, 혹시 그렇지 않다면 다가오는 2014년 안녕하기 위해 언론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편집자>

# 불이행: 비판 없는 공영방송에 대한 의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기간 동안 방송 정상화와 관련해 내놓은 공약으로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사실상 유일무이하다. 박 당선인은 대선을 9일 앞두고 내놓은 공약집에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에 대한 정치권의 영향력 행사로 독립성·중립성 침해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방송법 등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이명박 전 정권에서 언론의 불공정 논란과 언론인 연쇄파업을 불러온 근본적 원인이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회가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지배구조에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하는 태도로 해석됐다.

박 대통령 당선 직후 제1야당인 민주당은 공영방송 관련법 개정안을 먼저 발의하며 박 대통령의 약속 이행을 촉구했고, 언론계 안팎에서도 관련 토론회 등을 열며 활발한 정책 제안에 나섰다. 이렇게 사회적 분위기는 무르익었지만 박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기간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런 모습은 당선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야당과 언론계 안팎의 압박으로 국회 내에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이하 특위)를 설치·운영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8개월 동안의 활동을 마치며 지난 11월 특위가 내놓은 보고서에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논의는 쏙 빠져 있었다. 8개월의 특위 활동 기간 동안 여당 의원들은 “이대로가 좋다”며 공약 이행의 뜻이 없음을 ‘커밍아웃’ 했고, 일부에선 경영진 못지 않게 언론인들의 정치 중립도 중요하다며 정치 편향 논란이 있는 언론노조를 탈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 더 남은 만큼 공약의 파기를 단정하긴 이르다. 하지만 집권 1년차,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대통령과 “지금 이대로”를 외치는 여당의 모습에서 이행 의지를 발견하긴 어렵다. 이런 대통령과 여당에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언론노조가 9월 2일 방송의 날 축하연이 열리고 있는 서울 여의도 63빌딩 앞에서 공정보도와 해직언론인 복직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언론노조

# 16인: ‘설마’했던 1900일의 시간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1년 차에 해직된 YTN의 기자 6인은 1907일(12월 25일 기준)째 ‘해직 언론인’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다. 7인의 MBC PD와 기자들도 길게는 660일이 넘도록 해직자 신분에 놓여있으며, <국민일보> 기자 2인과 <부산일보> 기자 1인도 마찬가지다. 무려 16인의 언론인들이 낙하산 사장과 전횡을 일삼는 사주 등이 훼손시킨 보도 공정성과 제작 자율성의 회복을 요구하다 회사에서 내몰려 해직자로 살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시절 사회 통합을 얘기하며 취임 이후 국민대통합위원회를 구성해 관련 논의를 이어갈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4개월 만에 늑장 구성된 대통합위는 지난 7월 해직 언론인들과 한 차례 면담을 진행한 후 관련 논의에서 손을 털었다.

대통합위는 언론 관련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로 공을 넘기고 있지만, 이경재 방통위원장은 “불간섭이 원칙”이라며 언론인들을 해고한 회사와 얘기할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1월 22일 법원이 이상호 기자에 대한 MBC의 해고는 부당하다며 무효 판결을 내렸지만 사측은 ‘무단협’을 근거로 복직 대신 항소에 나선 상황이다.

방송공정성특위를 종료하며 여야는 ‘해직언론인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앞장설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내년 1월 10일 MBC 해직언론인들이 제기한 해고무효소송 1심 결과가 나온다. 그 결과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서 여야 결의의 진정성 또한 가늠할 수 있을 터다.

# 전락: ‘언론’ 아닌 ‘산업’만 남은 방송

2013년 한 해 동안 지상파 방송, 특히 공영방송의 위상은 안팎의 말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방송의 공정성 확보와 관련한 공약은 언급조차 않은 박근혜 정부가 산업으로서의 방송, 특히 유료방송을 중심에 둔 공약만을 충실히 이행한 결과다.

시작은 방송 담당 정부 부처 쪼개기였다. 지상파 방송 정책만 방통위에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로 넘긴 것이다. 미래부는 유료방송을 중심으로 한 규제 완화에 적극 나섰고, 그 결과가 바로 최근 발표한 방송산업 발전 종합계획이다.

종합계획엔 박 대통령이 공약했던 △유료방송 법체계 일원화 △스마트 미디어 육성 △진입 및 영업규제 완화 등의 내용이 모두 담겼다. 이에 따라 위성방송사업자가 요구한 DCS(접시없는 위성방송) 허용, 종편과 케이블 사업자가 원한 8VSB(8레벨 자류 측파대)와 클리어쾀 허용, 유료방송들이 주장했던 지상파 의무재송신 범위 확대 등이 현실화 되는 상황에 놓였다. 42개 지상파 방송사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한국방송협회에서 “지상파가 플랫폼 기능을 완전히 잃고 콘텐츠 기업 중 일부로 바뀌는 쇠락의 시기가 될 것이며 미디어 복지 또한 후퇴할 것”이라고 우려한 배경이다.

유료방송을 중심으로 한 일괄적 규제 완화는 그나마 공영방송이 주도하던 지상파 방송까지도 무한경쟁의 시장에 던져버렸다는 점에서 논란의 불씨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이 박 대통령의 미디어 공약 제1순위에 놓여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 공약의 불이행엔 침묵하며 유료방송과의 형평 문제만 말하는 상황에서 그 주장은 대중에게 얼마만큼의 진정성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 과천정부청사 미래창조과학부. ⓒ노컷뉴스

# 조롱: 비판도 아까운 땡박뉴스

창조경제를 정책 기조로 내세운 박근혜 정부에 발 맞춰 지상파 방송, 특히 공영방송이 새로운 저널리즘을 창조하고 나선 듯한 한 해였다. 대표적인 게 외교 무대에 선 대통령의 패션과 어학실력에 대한 탐구였다.

일례로 박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했던 지난 11월 4일 SBS <8뉴스>는 두 번째 리포트에서 “통역을 포함해 20분 동안 박 대통령이 프랑스어로 연설했고, 연설이 끝나자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고 전한 뒤, 통·번역 대학원 교수의 “존중받는다고 생각해 프랑스 국민들이 감동을 느낄 것 같다”는 의미부여 멘트까지 방송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연설 내용과 프랑스 경제인들과의 대화 내용은 전해지지 않았다.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당시 도시철도 시장개방과 관련해 WTO(세계무역기구)의 정부조달협정의 국내 비준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6월 중국 방문 당시 박 대통령이 칭화대에서 시작과 끝에 4분 동안 중국어로 연설한 것을 KBS <뉴스9>는 4번째, MBC <뉴스데스크>는 3번째, SBS <8뉴스>는 2번째 리포트로 배치했고,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던 지난 5월 방미 당시에도 박 대통령이 상·하원 합동연설을 약 30분간 영어로 했다는 점을 주요하게 전했다.

대통령의 어학실력만큼 패션 또한 주요하게 다뤄졌는데, 이런 사이 지난 1년 내내 계속된 국가정보원 등의 대선 개입 의혹과 대통령의 공약 파기와 관련한 내용들은 누락되거나, 상황만 단순히 전달되는 데 그쳤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 시절과 같지만 다른 ‘땡박뉴스’의 탄생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특혜: 종편은 다 괜찮아?

이제 막 개국 2년을 넘긴 종편을 수식하는 단어는 ‘저질’ ‘편파’ ‘왜곡’ 등 부정적인 의미들로 가득하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TV조선·채널A)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아시아나항공 착륙 사고 때는 “사망자가 모두 중국인이어서 다행”(채널A)이란 실언을 내보냈으며, 시사 프로그램에선 여성 정치인의 각선미를 품평(채널A)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 탓이다.

사업권을 얻기 위해 했던 약속들은 공수표로 드러났다. 방통위가 지난 7월 발표한 2012년도 종편채널 사업계획 이행실적 점검 결과에 따르면 종편 4사는 주요 항목인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공익성’ 부문에서 스스로 제시한 계획을 대부분 이행하지 않았다. TV조선과 채널A는 ‘종합편성’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전체 프로그램의 절반 이상을 보도 프로그램으로 채우고 있었고, 종편 4사 모두 편성의 50% 안팎을 재방송으로 메우고 있었다.

주주구성 역시 의문투성이다. 주주구성 과정에서의 위법은 승인 취소도 가능한 ‘뇌관’으로, 언론개혁시민연대와 언론노조, 언론인권센터 등이 구성한 종편승인 심사검증 TF와 최민희 민주당 의원의 분석 결과 채널A가 특히 수상쩍은 흐름을 보이고 있었다.

대표 사례가 채널A 대주주인 <동아일보>의 고위 임원이 김찬경 전 미래저축회장과 공모해 채널A 주식과 김 전 회장의 차명회사인 ‘고월’의 골프장 타운하우스를 맞바꾸기 한 정황이 드러난 부분으로, 최민희 의원 등은 이와 관련해 최근 방송법과 상법 위반 혐의로 채널A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 막장: 시청률만 나오면 만사형통?

종편이 저질 시사·토크 프로그램으로 이슈를 만드는 사이 지상파 방송은 ‘막장’ 드라마로 시청률을 잡았다. 150회로 종영할 때까지 ‘떡대’라는 이름의 개와 남자 주인공을 포함해 열 셋의 캐릭터를 죽이거나 미국으로 보낸 임성한 작가의 MBC <오로라 공주>가 대표 사례다.

<오로라 공주>는 “암세포도 생명”이라는 황당한 대사로 암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황당함을 넘은 상처를 남겼고 “(동성애자였는데) 절을 만 번 하니 남자가 눈에 안 들어오더라”는 성적 취향에 대한 몰이해가 가득한 비하 대사도 서슴지 않았다.

MBC <백년의 유산>에선 아들을 이혼시키려 며느리를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시어머니가 등장했고, MBC <기황후>는 고려의 폭군 충혜왕(극중 왕유)과 악행을 일삼았던 고려 공녀 출신으로 원의 황후가 돼 고려 정복을 지시했던 기황후(극중 승냥이)를 영웅으로 그린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밖에 KBS <왕가네 식구들>도 ‘며느리 오디션’, ‘자작 납치극’ 등의 무리한 설정으로 논란이 됐다.

그러나 이들 드라마는 모두 20~3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욕 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계보를 이어나갔다. 물론 불가능이란 없는, 드라마 속 막장의 세계는 하루 이틀 사이 구축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상파가 앞장서 ‘높은 시청률=만사형통’의 논리를 구축하면서 이상하고도 불편한 비상식의 세계를 매일 시청자의 눈앞에 펼쳐 보여도 되는 것일까.

# 편향: 정권 향한 굽은 잣대 심의

방송의 공정성 심의를 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불공정 심의 논란은 사실 새삼스럽지 않다. 하지만 최근 방심위 심의의 굽은 잣대를 둘러싼 논란은 예사롭지 않다. 논란에 불을 댕긴 건 국가정보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수사와 해당 사건에 대해 1심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KBS <추적 60분>에 대한 중징계다.

정부·여당 추천 방심위원들은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와 제11조(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 위반을 이유로 <추적 60분>에 대해 중징계 처분을 했다. 방송심의규정 제11조는 재판 중인 사건을 방송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신중하게 방송하라는 의미의 것인데, 방심위 심의 과정에서 방송을 해선 안 된다는 식으로 풀이가 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심의가 하나의 전례로 남아 관례가 될 경우 최종심에서 결론이 나오기 전에 방송에서 다룰 수 있는 내용은 없어지고, 이는 제작 자율성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는 게 언론인들의 주장이다.

현재 방심위는 ‘방송은 일반적으로 인식된 역사적 사실 또는 위인을 객관적 근거없이 왜곡·조롱·희화화하여 폄훼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내용의 방송심의규정 제25조의 2(민족의 존엄성) 항목을 신설하려 하고 있는데, 이는 자칫 방송을 ‘쇼비니즘(맹목적 애국주의)’을 부추기는 도구로 활용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PD연합회가 언론노조와 시민단체, 법학자들과 함께 일련의 독소조항의 폐지를 위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 이유로, 이들은 문제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과 행정소송 등도 검토하고 있다.

▲ 길환영 KBS 사장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신관 5층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수신료 조정안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노컷뉴스

# 수신료: 누구를 위한 인상인가

KBS이사회가 지난 10일 현재 월 2500원인 수신료를 4000원으로 올리는 인상안을 7인의 여당 추천 이사들만 참석한 가운데 강행 처리했다.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담보하지 못한 데서부터 논란은 예고됐는데, KBS가 인상안을 방통위로 넘기며 TV수상기만이 아닌 TV수신카드를 장착한 태블릿PC와 휴대전화 등의 ‘수신기기’에도 수신료를 부과하는 정책 제안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반발 여론은 폭발했다.

심상치 않은 여론 속 KBS는 수신료 인상안과 수신기기 확대 방안은 전혀 무관한 사안임을 강조하고, 종국엔 방통위에 해당 제안을 제외시켜 달라는 요청까지 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야당 추천 방통위원들과 언론·시민단체 등이 현재의 인상안을 폐기하고 이사회에서 재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야당 추천 KBS 이사들과 언론·시민단체에선 수신료 인상에 앞서 보도 공정성과 제작 자율성을 위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일련의 요구가 비단 이들만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디어미래연구소가 한국언론학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는 조사 결과에 따르면, KBS의 영향력은 몇 해 째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반면 보도의 정확성과 진실성을 평가하는 신뢰성과 보도의 균형성과 정치 중립성 등을 평가하는 공정성 부문에선 2011년 이후 4~5위로 떨어진 상태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영향력은 크지만 신뢰성과 공정성은 그에 미치지 못한 현실, 이 괴리를 좁히는 데서 수신료 인상은 시작돼야 하는 게 아닐까.

# 대자보: 더 이상 공기(公器) 아닌 방송

지난해 대선을 거치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중심으로 대안방송에 대한 요구가 들끓기 시작했다. 대선기간 내내 종편은 물론 지상파 방송들조차 정권 교체를 바랐던 절반의 민심을 외면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일련의 요구는 그간 대안매체로 몫을 해온 <뉴스타파> 키우기와 국민TV방송 설립 추진으로 구체화됐다.

그리고 이들 대안방송들은 일정부분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조세회피처에 자금을 은닉한 한국인 245인의 명단을 공개해 파장을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도 밝혀냈다. 라디오 방송부터 우선 시작한 국민TV방송도 시사부터 문화까지 모든 분야를 아우르며 수많은 프로그램을 팟캐스트 순위 상위권에 올리고 있다.

이렇듯 대안방송들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올해 하반기 가장 큰 소통은 한 대학생이 손으로 쓴 대자보에서 시작됐다. 철도 민영화를 반대하며 파업에 돌입한 철도 노동자 4321인이 하루 만에 직위해제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정말 모두 “안녕들 하신지”를 묻는 그의 말에 청년세대들이 먼저 답을 했고, 어느새 모두가 가슴 속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스마트 시대, 시민들이 어느덧 과거의 유물이 된 줄로만 알았던 대자보에 손글씨를 꾹꾹 눌러쓰며 “안녕들 하신지” 묻고 있는 지금, 이경호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의 말마따나 “정말 ‘안녕한’ 뉴스만을 내보내고 있는” 방송들이 더 이상 스스로 사회의 ‘공기(公器)’임을 자부할 수 있는 것일까.

▲ JTBC <뉴스 9> 손석희 앵커. ⓒJTBC

# 손석희: 정부 반대편 목소리도 전하는 방송

수년 동안 각종 조사에서 가장 신뢰받고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꼽혀왔던 손석희 전 성신여대 교수가 지난 5월 <중앙일보> 계열 종편 JTBC의 보도담당 사장으로 부임하고 4개월 후 메인뉴스인 <뉴스9>의 앵커를 맡을 당시만 해도 기대보단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손 사장이 아무리 그간 탁월한 균형감각을 보여 왔다 하더라도 종편, 그것도 삼성과 특수 관계에 있는 JTBC 뉴스에선 한계에 직면하고 말 것이라는 의구심 말이다.

하지만 손 사장은 앵커 자리에 앉고 한 달 만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입수한 삼성그룹의 노조 와해 문건을 단독 보도했고, 밀양 송전탑과 쌍용차 분향소 이전 등 이른바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언론에서나 조명하던 이슈를 전했다. 백화점식 뉴스 구성을 지양하고, 그날의 현안을 집중 보도하면서 이해당사자들이 직접 부딪쳐 토론하게 함으로써 핵심을 보다 분명히 드러내는 동시에, 정권은 물론 반대편의 목소리까지도 모두 전하고 있다.

그러나 손 사장과 함께 한 JTBC 뉴스의 일련의 행보가 긍정적인 건 사실이나, 평가를 완결하기엔 아직 이르다. 일부에선 JTBC가 일정 시간 손 사장을 통해 이미지를 제고한 뒤 그를 내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을 말하고 있고, 또 다른 일부에선 정권이 이미 손 사장의 뉴스에 불편하다는 사인을 보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방심위가 최근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소식을 다룬 <뉴스9>에 중징계를 결정한 배경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언론계 안팎의 유보적인 평가와 한계를 설정하는 수많은 말들 속에서 손 사장은, JTBC는,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언론인들은 어떤 길을 걷게 될까. 아무도 답을 알 수 없기에 손 사장이 매일 저녁 다짐처럼 하는 클로징 멘트의 울림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내일도 저희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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