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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있던 날들] 정일서 KBS PD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부질없는 아픔과 이별할 수 있도록...’ 1991년 발표된 고(故) 김광석의 2집 앨범에 수록된 노래 <그날들>의 일부분이다. 김광석의 동물원 시절 음악동료이자 친구인 김창기가 만든 곡으로 김광석을 추억하는 같은 제목의 뮤지컬도 있다. <그날들> 외에 <디셈버:끝나지 않은 노래>와 <바람이 불어오는 곳>도 김광석의 노래를 소재로 한 뮤지컬들이니 그렇게 김광석은 죽어서도 오늘을 살며 노래하고 있다. 1996년 1월 6일 그 날, 내 나이 막 스물일곱을 맞이하던 그 해 벽두에 서른셋 짧은 생을 마감했던 그가 내 나이 마흔다섯이 되어버린 지금도 그 날에 멈춰버린 시계처럼 영원한 청년으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지금 앞 다투어 김광석을 소환하고 있는 여러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는 애써 알려 하거나 설명하지 않으련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그날들’은 들을 때마다 내 마음 속 가장 깊은 곳 무언가를 여지없이 베어버린다. 잘 벼리어진 칼과도 같은 노래다. 참 아프다.

▲ Peet Seeger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그 날. 2009년 5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황망하게 전해지던 그 날은 주말이었다. 아침에 소식을 알리려 다급하게 전화한 이가 있었다. 방송국으로 향했다. 평소 라디오 방송은 주말에는 미리 녹음해 놓은 녹음분이 나가지만 그런 일이 생기면 사정이 다르다. 이제 원고며 노래며 모든 것은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그 날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노래는 피트 시거(Pete Seeger)의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이었다. ‘모든 꽃들은 다 어디로 가 버린 걸까?’ 희망이 꺾인 듯한 깊은 고요와 먹먹한 공기만이 지배하던 그 시간의 강을 건너갈 노래로 나는 그보다 더 어울리는 곡을 찾을 수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했던 ‘부림사건’을 다룬 영화 <변호인>이 논란 속에서도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렇게 부활했다. 앙상한 가지에서도 계절이 바뀌면 꽃은 다시 핀다.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을 노래했던 포크계의 거장 피트 시거가 2014년 2월 2일, 9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는 20세기 모던 포크의 시작을 이야기할 때 우디 거스리와 함께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며, 조안 바에즈와 밥 딜런 등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이 존경했던 참 스승이었다. 흔히 포크 음악을 현실참여 포크, 이른바 프로테스트 포크와 상업적 포크로 구분한다. 용어 자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 음악이 담고 있는 메시지와 지향하는 바가 상업적이냐 실천적이냐에 따른 거친 이분법이다.

피트 시거는 프로테스트 포크의 선구자적 존재였다. 그는 음악은 사회적 실천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는 신념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언제나 적극적 참여의 자세를 견지했으며, 평생을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반전운동, 환경운동의 현장을 지키며 노래했다. 1대 99, 아니 0.1대 99.9로 기울어진 자본주의의 비합리적이고 추악한 모습이 부각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성난 시위대가 들불처럼 일어나던 2011년의 미국 월가 점령 시위에도 그는 아흔살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다.

▲ 정일서 KBS PD
피트 시거의 노래 중에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만큼 사랑받는 곡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We shall overcome’이다. 전 세계의 시위 현장에서 끊임없이 불리는 이 곡은 우리나라에서도 ‘우리 승리하리라’로 번안되어 과거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끊임없이 불리어졌다. 그런데 한동안 잊고 묻어 두었던 그 노래를 이제 다시 꺼내어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그런 세상이 되었지 않은가? 사람은 갔어도 그가, 그들이 남긴 사연과 노래는 살아있다. 그래서 다행이다. 하여 우리는 아직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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