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보 유출 진원지 된 주민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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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수의 금융기관인 KB카드, 롯데카드, 농협카드에서 1억 건이 넘는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 요새 유행어로 국민은 ‘멘붕’에 빠졌다. 불안감을 느낀 사람들은 일제히 카드를 재발급 받기 위해 은행으로 몰려들었다. 한동안 은행창구는 악용 피해를 우려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특히 사고가 내부 보안 관리라는 인재 (人災)임이 밝혀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사실 개인정보 유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포털사와 상거래, 포인트 사이트 등에서 이용자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면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피해보다 처벌은 항상 ‘솜방망이’에 불과했다. 개선책으로 개인정보 관리자를 두거나, 인증시스템 도입, 처벌 강화 등이 제시됐다. 하지만 당시에도 정보사회학자들 사이에서는 전 국민의 개인정보가 다 유출되었고, 건당 얼마에 팔리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지금도 당신의 휴대폰과 이메일로 오는 각종 음란, 대출, 불법메일과 메시지는 누가 봐도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사례다. 그게 결국 이번에 사달이 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개인정보 유출과정에서 보안 관리의 문제만 도마에 오른 게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로 한국의 신분 파악제도인 주민등록번호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한국에서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의 신분을 증명하는 가장 일반적인 수단이다. 혹자는 한국이 주민등록번호로 인해 정보화가 외국보다 빨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상거래와 금융거래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인증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등록번호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섬뜩한 냉전의 추억이 자리를 잡고 있다. 물론 일본 강점기에도 신분확인제도가 있었다. 하지만 현행과 같은 제도로 정착된 것은 19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원이 청와대를 습격한 사태(우리에게는 김신조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이다. 이에 정부가 간첩을 식별하기 위해 주민 개개인에게 번호를 부여한 것이 현재의 주민등록제도다. 그리고 1호 발급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박 전 대통령의 번호는 1과 0으로만 구성됐다).

주민등록제도 유지한 배경에는 정보사회가 발전하면서 금융거래와 인터넷 정보를 이용하기 위해 신분 확인의 필요성이 커진 측면도 있다. 인터넷 도입 초기 가장 편한 신분인증이 주민등록번호였다. 지금과 같이 개인정보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제공했던 것이 엄청난 화를 야기한 것이다.

주민등록번호는 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개인정보 침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생년월일과 출신 지역, 성별이 공개되므로, 인권침해나 개인정보, 자기통제권 측면에서 많은 비판이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엔 금융거래 등 경제적인 불이익까지 등장한 것이다. 주민등록제도를 이용하면서 얻는 편익보다 불이익이 더 커지는 임계치에 도달했다는 분석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한국처럼 개인정보를 모두 번호에 집약하는 경우는 드물다. 일부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하다. 미국도 9‧11 이후 강화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사회보장번호를 사용한다. 캐나다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은 개인 식별번호가 있지만, 개인정보를 담고 있지 않으며, 자유로운 변경이 가능하다.

▲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
정보사회에서 개인정보는 인터넷 검색으로도 유출이 가능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기존에 있었던 주민등록번호가 개인정보 유출의 산실이 되고 있다. 물론 주민등록제도를 고치는 것은 쉽게 논의될 문제는 아니다. 사회적인 비용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장·단기적인 고려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국가는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국민의 행복권과 안전권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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