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영방송이 외면하는 공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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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망하는 데 공통으로 등장하는 요소가 바로 부정부패다. 월남 패망이나 고려, 조선의 붕괴에는 외부세력의 개입 이전에 내부 집권세력의 부패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극심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은 역대 새로운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웠지만, 현실이 대변하듯 척결은 허망한 구호로 끝났다.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을 자처했지만, 국민은 ‘도둑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비난했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만사형통’으로 불린 이상득 전 의원, ‘방통대군’으로 불리며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 알려진 최시중 등 최측근들의 부정부패 행렬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죄질에 비해 낮은 징계를 받거나 사면 등을 통해 법체계를 무력화시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정권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았다.

그런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혀줄 매우 귀한 자료가 최근 공개됐지만, 공영방송사들은 외면했다. 대검찰청에서 5대 범죄 판결문 6000여 건을 분석한 자료의 내용을 공개했다. 대검찰청은 양형기준이 재판에 처음 적용된 지난 2009년 7월부터 2010년 12월 31일까지 선고된 5대 범죄. 살인죄, 강도죄, 성범죄, 뇌물죄, 횡령·배임죄 등에 대해 1·2심 판결문 6000여건을 분석한 ‘양형백서’를 펴냈다고 밝혔다.

재판에서 양형기준이 얼마나 준수되는지, 어떤 양형 요소가 선고에 많이 반영되는지 등에 대해 실제 판결문을 통해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법치를 막는 요소가 무엇인지 이 이상 잘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있었던가.

판사마다 선고 형량의 편차를 줄이고자 만들어진 양형기준인데, 살인·강도 등 강력범죄엔 63~81%가 양형기준대로 판결해 별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양형기준이 권력층 및 사회 지도층과 밀접하게 연관된 뇌물죄는 10건 중 1건 정도만 지켜지는 기현상이 여전했다. 횡령·배임죄에서는 10건 중 3건가량만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력층의 부패, 부정사건에 대해 사법부 스스로 만든 양형기준이 현실에서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이 수치가 보여준다. 사법부가 국가의 부정부패를 예방하거나 제대로 처벌하기는커녕 여전히 자의적 판결로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로 양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공익적 뉴스에 대해 국민은 얼마나 알고 있으며, 공영방송사들은 얼마나 분석, 해설뉴스를 내보냈는가. 알 권리란 공익적으로 중요한 뉴스에 대해 공영방송사들이 가장 철저하고 신속하게 전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뇌물죄의 경우 분석 대상 판결문 401건 중 38건(9%)만이 양형기준을 준수했다. 또 횡령죄 분석 대상 판결문 1937건 중 613건(32%), 배임죄 412건 중 105건(26%)만 양형기준이 지켜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스스로 양형기준을 만들고 지키지 않은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런 이유를 알아내고 분석해 알려주는 것이 사법부를, 국가를 위해 해야 할 공영방송사의 사명이다.

언제부턴가 공영방송사는 날씨와 동물 뉴스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시작했다. 시사적이고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뉴스는 의도해서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하루의 뉴스를 정리하는 9시 종합뉴스에서 공영방송사를 시청하는 대신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를 본다는 시청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공영방송사 뉴스 앵커가 감시 대상이던 권력의 대변인으로 하루아침에 변신하는 상황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의 공영방송사가 전하는 뉴스는 보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을만큼 신변잡기적인 것이고 정파적으로 전락했다. 공영방송사는 또 다시 부끄러운 역사를 만들고 있고 언젠가 부끄러운 과거를 다시 고백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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