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이렇게 무겁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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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세월호’ 침몰 사고 진도 팽목항 현장

전남 진도 팽목항을 찾은 지난 25일 유독 햇볕이 쨍쨍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열흘째. 흰 천막으로 설치된 가족대책본부 앞 알림판에는 ‘신원 미상’이라고 적힌 종이들만 바닷바람에 나부꼈다.

조석간만의 차가 적은 소조기 마지막 날까지도 구조 작업이 더뎠다. 이에 분노한 실종자 가족들이 진도군청에 항의 방문한 다음 날이어서 그런지 팽목항은 차분하지만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람들의 신발만 봐도 팽목항의 숨 막히는 열흘이 짐작이 갔다. 실종자 가족들은 삼선 슬리퍼나 뒤축이 구겨진 단화를 신고 있었다.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흙먼지로 뒤덮인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알림판에 ‘신원 미상’ 종이가 새로 게시됐다. 키와 인상착의가 적힌 내용을 살펴본 한 실종자 어머니는 “우리 애가 아니야”라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구호물품이 넘쳐나고,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끊이지 않는 곳 팽목항. 진도군의 한 주민은 “먹을거리가 넘치는 천국, 마음은 지옥이야”라며 혀를 찼다.

▲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한 지 11일째인 지난 26일 한 실종자 가족이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기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족대책본부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간이 천막으로 설치된 부스에는 열 명 남짓한 취재 기자들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지상파 방송사들을 비롯해 <국민TV>, <고발뉴스> 등 대안 언론사의 부스에서는 기자들이 기사 작성에 여념이 없었다.

실종자 수색이 열흘째 지속되면서 기자들과 피해자 가족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었다. 언론에 대한 반감을 체감한 탓인지 기자들은 취재에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일부 기자들은 언론사 간 속보 경쟁으로 ‘오보’를 양산하는 등 ‘펜이 칼이 됐다’는 지적에 수긍했다.

화면으로 말하는 영상기자와 사진기자도 사건발생 초기와 달리 촬영을 위해서 깊숙이 현장에 들어가는 것을 자제하고 있었다. 가족대책본부에서 60~70m가량 떨어진 팽목항 초입에 카메라 트라이포드를 일렬로 설치해 놓았다.

한 사진기자는 사고 초기 설정되지 않은 포토라인에 우왕좌왕하다가 최근에서야 기자들 사이에 “가상의 포토라인이 생겼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의 언론에 대한 경계심은 여전했다. 사고 당일부터 혼선을 빚던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옮겨 적은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는 알림판 귀퉁이에는 ‘사진 촬영을 금한다’는 공지 글이 붙어있었다.

전날 기대에 못 미치는 수색 작업에 분통을 터뜨렸던 실종자 가족들은 이날도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면담을 하기 직전 “아이들을 위한 거니까 기자들은 알아서 빠져 달라”는 방송을 수차례 반복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실종자 가족의 상처를 키우는 취재를 하는 건 아닌지 자괴감이 크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사고가 발생한 날부터 현장에 투입됐다는 한 일간지의 A 기자는 “현장 기자로서 실종자 가족의 심정이나 사연을 전하는 등 해야 할 몫이 있지만, 데스크가 지시하는 내용과 현장 기자들이 체감하는 정도가 매우 달라서 어디까지 취재해야 하는지 고민이 크다”고 토로했다.

이틀째 팽목항을 취재 중인 한 VJ도 낯빛이 어두웠다. 그는 “직접 가족을 촬영하지 않기로 했는데도 현장에서 느끼는 무력감이 크다”며 “죄스럽다. 8년간 촬영했던 날 중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VJ도 “카메라가 이렇게 무겁긴 처음”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17년간 숱하게 현장을 누볐던 한 일간지 사진기자는 이번 세월호 사고는 말 그대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참사’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4일 이주영 해수부 장관과 가족들이 면담하는 모습을 찍기 위해 팽목항에서 비교적 높은 건물인 매표소 옥상에서 대기했지만, 가족들 이 ‘폭도처럼 그려지는 사진을 원치 않는다’고 해서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가족들이 언론에 분노를 표시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정부 당국과 접촉이 많은 기자를 비정상적인 우리 사회 시스템 일부로 보고, 분노하는 것 같다. 당연한 일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정부의 구조 작업에 대한 취재가 여의치 않아 오히려 실종자 가족에게 기대어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흐레째 취재 중인 한 대안언론의 B기자는 “수색 또는 구조과정에 대한 취재 대상은 실종자 가족이 돼선 안 된다”면서도 “그러나 본부나 해경이 전화를 돌리거나 확인해주기 어렵다는 식으로 답하니까 결국 실종자 대표를 통해 확인하는 취재가 반복된다. 실종자 가족의 상처를 키우는 것 같아서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 진도 팽목항에 설치된 게시판에 격려와 희망, 그리고 기적을 바라는 메시지가 붙어있다.(위) ,영상 카메라 기자들이 실종자 가족대책본부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포토라인을 설정해 카메라 트레이포드를 일렬로 설치했다.(아래) ⓒPD저널

사실 확인에 모르쇠로 일관…언론 해명 브리핑만 ‘수두룩’

정부 당국이 사고 경위와 구조 과정에 대해 ‘책임 떠넘기기’식 태도로 일관하면서 정보 통제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기자들은 입을 모았다. 실종자 구조 및 수색 상황에 대한 사실 확인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소조기 마지막 날인 지난 24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함정 261척, 항공기 35대, 구조대원 726명을 투입해 입체적 수색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사상 최대 규모’의 총력전을 기울이고 있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잠수사 2명만 수색에 들어갔다”며 진도군청에 항의 방문했다.

이날 진도군청에서 현장을 취재한 한 인터넷 신문의 C 기자는 “정부의 브리핑과 실종자 가족의 주장이 달라 대변인에게 해명을 요청해도 기자들은 오후 브리핑을 들으라며 제대로 확인해주질 않았다”며 “데스크도 가족 대표의 주장에 대한 해명이 들어가야 한다며 수차례 연락해왔지만 결국 정부의 입장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사고 초기부터 탑승자 수는 5번, 구조자 수는 8번이나 발표를 뒤집는 등 혼선을 빚었다. 그러다 지난 17일 해양수산부 등 11개 정부 부처 합동으로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이하 대책본부)를 설치해 언론 창구를 단일화했다.

기자들은 대책본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책본부는 재난 정보를 종합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실상 부실한 발표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대책본부는 진도군청에서 오전과 오후 두 차례씩 브리핑을 열고 수색 현황과 구조 작업 계획을 밝히고 있다.

C 기자는 “대책본부는 브리핑 자료를 읽고 빠지는 수준이라 정작 실종자 가족이 알고자 하는 내용을 알기 어렵다”고 평했다. 한 일간지의 D기자도 “대책본부가 두 차례 브리핑을 하지만 상황이 바뀔 때마다 구조 및 수색과정에 대한 실시간 업데이트가 한 발씩 늦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책본부 외에 관련 기관의 언론 대응 태도도 비슷하다.

사고 당일부터 취재하고 있는 A 기자는 “부실 관제로 진도VTS(해상교통관제센터)가 문제 됐을 때 VTS나 검경합동수사본부 모두 확인해줄 수 없다고만 말했다. 최초 신고자인 학생 이름을 알고서 전남소방본부에 이름을 확인할 때도 모른다고 했다”며 “대책본부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데 급급하다. 사실 확인만 하는데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든다”고 말했다.

▲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 20일 오후 팽목항을 찾았다가 가족과 언론에 둘러싸여 있다. ⓒ연합뉴스

대책본부나 해경은 언론 취재에는 제대로 응하지 않은 채 불리한 언론 보도에는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대책본부는 21일 해명자료만 4건, 22일에는 무려 9건의 해명자료를 쏟아냈다. 23일에 내놓은 해명, 참고자료는 13건을 내놓았다. 해경도 마찬가지 상황으로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25건의 보도자료 중 해명자료는 17건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생존자 구조 작업에 최대 고비였던 지난 18일에도 선체 진입 여부를 두고 정부는 오락가락한 발표를 내놓았다. 김석진 안전행정부 대변인은 백브리핑을 열고 정부 발표의 혼선을 사과했다. 기자들은 제대로 된 해명을 요구했지만 김 대변인은 “질문은 받지 않겠다”며 황급히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B 기자는 “오보에 노출되는 상황이 비일비재할 수밖에 없는데 기자가 최종적으로 믿고 확인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며 “정부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건 사고에 대한 책임 방기”라고 지적했다.

현장을 취재한 다음 날 새벽 진도 체육관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선 진도 해역에 강한 비바람을 예고하는 뉴스가 나왔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실종자 가족들은 체육관 실내의 찬 바닥에 누워 하염없이 뉴스를 봤다. 그곳에서 쪽잠을 청했던 기자들도 일어나 팽목항으로 향했다.

30일 오전 8시 기준 세월호 탑승객 476명 중 사망자 210명, 구조자 174명이다. 그리고 실종자는 9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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