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누군가는 너무 쉽게 잊으라고 했지만, 다행히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잊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잊지 않았고, 무엇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걸까.
지난 28일 <SBS 스페셜> ‘졸업 - 학교를 떠날 수 없는 아이들’ 편에서는 세월호 사고를 겪었던 아이들이 어느 새 단원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세월호 마지막 구조자’ 박준혁 군이 졸업식 후 친구들의 사진을 들고 사고로 함께 가지 못했던 ‘제주도 수학여행’을 다녀온 여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제작진을 처음 만난 준혁이는 자신이 아마 사고 후유증이 가장 심한 사람일 거라고 말했다. 매일 아침 함께 등교하던 친구들을 떠나보낸 후 준혁이는 학교 갈 때를 제외하고는 외출을 하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땐 벽을 보고 먹는다. 자신이 끓여주던 음식을 다 맛있게 먹어주던 친구들이 없기 때문이란다. 준혁이는 화가 난다기보다는 너무 외롭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그만하라고 이야기한다. 심지어는 보상금이 ‘로또 당첨’이라고 말한다. 그들을 향한 배려는 특혜로 비춰졌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던 분노의 화살은 희생자를 향했다. 무엇이 진실인지보다, 어떤 보상을 줄지에 날 선 시선이 꽂혔다. 세월호 생존자 중 한 명은 “페이스북에서 ‘나도 그냥 친구 잃고 대학 갈래’ 이런 말을 봤다. 그런 애들을 보면, 그러면 나는 대학 다 포기할 수 있고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으니까 네 친구랑 내 친구랑 바꿔 달라고, 그런 얘기 함부로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그래도 모든 끝에는 시작이 공존하는 법. 단원고를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준혁이에게, 졸업은 하나의 시작이기도 하다. 졸업식을 마치고도 바로 꽃다발을 들고 친구들이 있는 빈 교실을 향하던 준혁이는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친구들과의 졸업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실 준혁이는 물에 잠긴 배에서 빠져나오기 직전까지 수정이라는 친구의 손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물살이 한꺼번에 세게 밀려올 때 손을 놓쳐 자신만 빠져나오게 됐다고 한다. 그게 지금까지도 마음의 짐이 됐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위해 처음으로 수정이의 단짝친구였던 누리에게 연락을 했다. 그렇게 준혁이와 누리, 예진이는 기수, 경빈이, 현섭이, 장환이, 그리고 수정이의 사진을 들고 제주도로 향했다.
아이들은 제주도 곳곳에 노란리본을 달며 “오는 사람마다 와서 기억을 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하고 말했다. 그리곤 친구들의 사진을 들고 제주도 바다를 바라보며 “친구들과 첫 여행을 오니 참 좋다!”를 외치며 오랜만에 밝게 웃었다. 준혁이는 못다 한 수학여행을 대신 마무리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 웃어보였다. 친구들을 잊기보다는 새로운 기억에 담으며 웃음을 되찾았다.
“이 기억에 사로잡혀선 안 돼. 하지만 그렇다고 잊어서도 안 돼.” 세월호 생존자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던 웹툰 작가 이종범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건, 아이들을 붙잡고 있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사라진 아이들을 위해 우리의 시간을 붙잡아 두겠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아이들의 꿈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그 아이들과 함께 많은 이들의 시간이 멈춰버렸다는 것을, 우리의 시간 속에서 기억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또다시 어떤 비극으로 침몰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을 다 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