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에 목마른 여배우, TV로 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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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보기 힘든 배우들이 드라마 출연을 택하고 있다. tvN<시그널>의 김혜수, 최지우에 이어 전도연이 11년 만에 <굿 와이프>로 드라마 출연을 결심했다. 고현정도 3년 만에 노희경 작가의 신작을 준비 중이다. 이처럼 여배우들의 TV 출연 행렬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얼까. 최근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의 변주가 눈에 띄자, 여배우들의 드라마 복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드라마 속 ‘신데렐라’, ‘캔디형’ 등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지만, 수사물과 같은 특정 장르가 시청자의 관심을 사로잡으면서 여성 캐릭터의 외연이 넓어진 측면이 있다.

영화에 주력했던 톱스타 배우들이 드라마에 눈을 돌리는 건 영화 속 여성 캐릭터가 한계를 지녔기 때문이다.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여배우들의 수요에 비해 남성 중심의 시나리오들이 넘쳐난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배우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몇 년씩 작품을 쉬기도 한다. 문소리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영화계에서 여배우, 여성 캐릭터의 역할이 한정되는 것은 언제나 안타까운 일이다. 더 공격적이고 현명하게 이 현실을 개척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 반성도 된다”고 말했다.(<씨네21> 인터뷰) 최근 이미연도 JTBC <뉴스룸>에서 “남자배우에게는 쓰지 않는 '여배우'라는 타이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여배우로서의 고민을 밝혔다.

▲ tvN <시그널> ⓒCJ E&M

사실 드라마 쪽 상황도 영화계와 비슷했다. 실제 지상파와 케이블, 종편채널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 대본을 집필하는 방송작가 중 여성 비율이 88%로(2015년 5월 한국방송작가협회 발표) 압도적으로 높다. 단순히 생각하면, 여성 작가들이 드라마에서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선보이는 시도를 할 법도 한데 실제로는 어떠한가. 가끔 개성 강한 여성 캐릭터를 표현해 주목을 끌고 있지만, 대개 여성 캐릭터는 ‘사랑받아야 할 존재’ 혹은 ‘모성애’의 상징으로 그려질 때가 잦았다. 여배우가 원톱으로 나선 영화를 찾기 어려운 것처럼 드라마도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최근 시청자의 눈길을 붙잡는 장르물이 케이블 채널 중심으로 본격화되면서 여성 캐릭터의 외연이 넓어지는 기회가 되고 있다. SBS <미세스캅2>, tvN<시그널> 등이 그렇다. 이들 드라마처럼 수사물에서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앞세우는 건 일종의 흥행 장치이다. 남성의 전유물처럼 느끼지는 직업군에서 ‘여형사’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 희소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다만, 남성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여성 캐릭터는 남자 형사를 뛰어넘는 털털함과 정의감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거나 미모를 무기 삼은 일종의 ‘과잉된 여성성’을 드러내는 인물로 치환된다. ‘여형사’라는 희소성에 대중성을 얹는 방식이다.

<미세스캅>의 경우 ‘여형사’를 표현할 때 전자와 후자 모두를 활용한다. 지난 5일 첫 방송된 <미세스캅2> 속 고윤정(김성령 분) 경감은 와인색 머리, 하이힐, 까만 매니큐어 등 화려한 스타일로 등장한다. 긴박한 현장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여성적 매력을 발산한다. 시즌1격인 <미세스캅1>에서 최영진(김희애 분)은 낮에는 강력계 팀장, 밤에는 애틋한 모성애를 지닌 엄마로 나온다. “(형사는) 할 짓이 못 된다”며 사직서를 품은 워킹맘이다. 배우 김희애는 전작 JTBC <밀회>에서 예술재단 기획실장으로 거침없는 사랑을 오혜원에서 털털하면서도 팀원을 이끄는 리더십 있는 형사로 등장했고,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 SBS <미세스캅 1> ⓒSBS

<시그널>은 수사물 내 여성 캐릭터 표현 방식에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여형사’라라는 성별에 갇힌 묘사가 아니라 장르적 문법에 따른 여성 캐릭터의 성장을 극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수현(김혜수 분)은 순경 시절 ‘강력계의 꽃’정도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사건을 파고들고, 소중한 사람을 잃는 과정을 거치며 지금의 ‘차 형사’로 거듭난다. 극이 전개될수록 ‘여성성’을 부각시키지도, 애써 무마하지도 않는다. <시그널>은 촘촘한 대본의 힘만큼 수현을 ‘여형사’가 아닌 ‘형사’라는 직무를 가진 인물로서 캐릭터를 구축하고, 서사를 구축해내는 데 힘을 실어준다.

그 결과 <시그널>은 드라마의 흥행 요소인 ‘러브라인’ 없이, 방송 시청률 6%대에 시작해 매해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그널>의 차수현은 여배우라면 탐낼 만한 인물이다. 미국 드라마 <더 킬링>에서 사건의 내막을 끈질기게 파고드는 새라 린든 형사처럼 차수현도 여전히 현장에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처럼 여성 캐릭터의 외연 확장과 작품의 성공은 TV에서 보기 어려운 배우들을 드라마로 이끌고 있다. 물론 높은 개런티도 한 몫 하겠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배우들의 드라마행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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