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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08 23:47
  • 수정 2016.06.14 10:40

“자유경제원의 반발, 역설적 진실을 보여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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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유규오 PD

세계 주요국의 통계를 이용해 불평등의 기원을 밝혀냈던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2013)은 전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그는 국가가 재분배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비민주적 소수에 의한 지배가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분배를 경제의 중심에 두고 설명한 이 책에 대해 찬사와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지난 23일부터 5부작에 걸쳐 방영한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도 민주주의와 분배를 말한다. 민주주의가 잘 작동한다면 전세계적인 불평등 현상이 사라지지 않을까? 현재 '헬조선'이라 불릴 정도로 불평등이 심화하는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해 민주주의의 역사와 의미를 전달한 <민주주의>의 유규오 PD를 지난 8일 오전 서울 도곡동 EBS 사옥에서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 유규오 PD는 ‘민주주의가 잘 작동한다면, 이런 막막함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민주주의' 제작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EBS

- 민주주의를 다룬 이유는?

EBS 다큐프라임에서 만들었던 <자본주의>(2012), <법과 정의>(2013) 두 편을 보면서 본질은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자본주의 내에서는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사회 불평등이 심하다보니 삶이 팍팍하다. 각자도생인 시대다. 이같은 상황에서 내 자식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걱정도 들더라. 많은 사람이 나같은 막막함을 똑같이 느낄 거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잘 작동한다면, 이런 막막함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민주주의에서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왜 그런걸까?’ 이런 의문이 들었다. 여기서 출발했다.

- 자원배분 문제를 얘기했는데 어떤 점을 강조하고 싶었나?

정치는 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며 민주주의는 시민에 의한 정치다. 이 두 개의 정의를 합치면 “민주주의란 시민의 평등한 정치참여를 기반으로, 시민이 자원배분에 대해 통제권을 가진 정치체제”가 된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런 내용이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실제로 행정부에서 가장 핵심적 권력은 자원배분에 나온다. 국회에서도 예산결산특별위원회라 하지 않나. 실제로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는 시민주권에서 나왔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민주주의를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의 개념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그 개념도 중요하다. 그러나 자유를 통해서 민주주의에서 보통선거에 시민이 참여를 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그 목적이 빠져 있다. 그걸 다시 얘기하고 싶었다.

- 2부 ‘민주주의의 엔진, 갈등’에서는 갈등에 대한 얘기를 주요하게 다뤘는데 그 이유는? 

갈등은 민주주의 작동원리다. 그리고 집단성을 호명하는 것이 갈등의 핵심이다. 정당에서 갈등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어떻게 치환하는지 보여주려 했다. 사실 많은 시민이 의사를 표현하거나 행동하지 않는 건, 호명하지 않아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효능감(유권자가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얻는 만족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바뀐다. 그래서 악순환이 된다. 민주주의에 대한 효능감을 크게 느낄수록 사람들은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한국만 보아도 이번 총선 끝나고 나서 전과는 다르게 숨통이 튼 것 같지 않나.

▲ "민주주의는 시민에 의한 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다." 1부 '시민과 권력의지'에서 등장하는 민주주의의 개념이다. ⓒEBS

-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에서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 ‘이념 편향적’이라 비판하면서 토론회도 개최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역설적 진실”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는 주제를 가지고,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대기업과 재벌이 지원하는 단체 전경련 ‘자유경제원’에서 바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나.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의 적은 어디인지 분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 이들이 어떤 지점에서 반발하고 있다고 보나?

아마 4부 ‘기업과 민주주의’가 특히 불편했을 것 같다. 4부에서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 정확하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정치원리 및 정부형태이다) 지금은 본래의 자유민주주의가 지니고 있던 의미가 훼손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말할 때에 기업의 자유를 항상 많이 거론한다. 자유경제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실 자유민주주의의 주체는 기업이 아니라, 시민이라 말하고 싶었다. 전형적인 자유민주주의자인 토머스 제퍼슨조차도 시민을 중요시 생각했다. 심지어 이승만 대통령 시절 만들어진 제헌헌법에도 “사기업에 있어서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이익 분배할 권리를 가진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이제는 시민은 기업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정부의 기능은 점점 더 취약해지고, 그 자리를 시장이, 즉 사적 정부(기업)가 강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는지 묻고 싶었다.

▲ 아담 쉐보르스키 뉴욕대 정치학과 교수는 "만일 민주주의가 정말 잘 작동한다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소득을 재분배할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EBS

- 세계적 석학들의 인터뷰가 흥미로웠다. 기억 남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과정이 어려웠다. 총 스물두 명의 인터뷰이 중에서 핵심적인 세 명이 있었다. 아담 쉐보르스키(뉴욕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제이콥 해커(예일대 정치학과 교수), 폴 피어슨(UC버클리 정치학과 교수)다. 이 세 명의 공통점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같이 고민하는 연구자들이란 거다.

아담 쉐보르스키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민주주의는 대부분 정부를 해고하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말했다. 여기서 정부라는 건 정당정부를 의미한다. 그런데 관료정부로 많이 쓰인다. 특히 흔히들 ‘정부’라는 단어보다도 ‘국가’고 쓰는데, ‘국가’라는 개념은 민주주의에서 쓰는 개념이 아니다. 아담 쉐보르스키가 말한 민주주의 정의에 따르면, ‘정부’가 국가적인 사건이 일어나거나 문제가 생길 때 잘하지 못한다면, 시민은 그 정부를 바꿀 수 있고, 바꾸면 되는 거다.

- 참고했던 책이나 영상은? 

앞에서 언급한 제이콥 해커, 폴 피어슨 교수는 <부자들은 왜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2012, 21세기북스)를 공동집필했다. 그들은 정치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찰스 린드블롬 학파다. 찰스 린드블롬은 <시장체제>(2009, 후마니타스)라는 책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매우 잘 설명해두었는데,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도 주로 참고했다.

이외에 켄 로치 감독의 <1945년의 시대정신>(2012)도 많이 참고했다. 1945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고 복지정책이 확대되었을 당시, 그 변화의 중심에 있던 당사자들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3부에도 나와 있지만, 인류역사에서 유일하게 불평등이 완화되었던 시기다. 보다 보면, 그 당시와 달라진 현실이 대비되면서 그들이 느끼는 답답함이 전해지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인터뷰 당사자들에게도 메일을 보내서 자문도 받았다.

-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많은 사진과 애니메이션을 준비했는데 어떤 점이 힘들었나?

과거의 장면들은 실제로 재현하거나, 관련 행사 장면들을 촬영했다. 그리고 사진을 쓸 때, 최대한 그 장면과 설명에 적확한 사진을 썼다. 사진 자체가 핵심을 말하도록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EBS 다큐프라임에서 작업을 항상 했던 팀이 애니메이션을 맡아주었다. 덕분에 내용이 잘 전달될 수 있었다. 

▲ 지난 8일 오전,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를 연출한 유규오 PD와 만나 <민주주의>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EBS

- 5부작으로 만들었지만, 아쉬움이 남는 게 있을 것 같다.

없다. 오히려 후련하다. 제작할 때에 우울했다. 우울함에서 벗어난 느낌이다. 제작할 당시에는 주제 자체에 눌려 있는 느낌이 들었다.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한 이상, 이 주제에 대해서 잘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도 있었다. 그래야 ‘민주주의’라는 주제에 대해서 미안하지 않을 것 같았다. 시간적 여유가 더 있었으면, 호흡이 더 고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만큼은 잘 정리한 것 같다.

- 소득 불평등이 교육 불평등으로 악순환되는 상황이다. 3부 도입부에서도 나오지만 교육방송 PD로서 지내면서 이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교육은 계층 이동성을 가능하게 만들기에 너무 중요하다. EBS의 수능 연계 방송도 마찬가지 기능을 한다고 본다. 그래서 7년 동안 수능 연계 방송을 제작할 때에도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다. 대작인 다큐멘터리나 시사프로그램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 앞으로 <민주주의 특강>도 연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큐프라임 <민주주의>와는 어떤 점이 다른가?

지난 6월 6일 1부 ‘민주주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부터 시작해서 총 18강으로 방영할 예정이다. <민주주의>를 기획하면서, 이런 형태의 강연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하고 싶었다. 아마 다큐멘터리에서 다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나올 거다. 강연자로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부터 정당과 대중 정치 이론가인 박상훈 정치발전소 교장, 마키아벨리를 전공한 정치철학자 곽준혁 숭실대 교수, 아테네 대학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전공한 손병석 고려대 교수의 강의를 볼 수 있다.

▲ 민주주의에 대한 효능감이 낮아질 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바뀐다. ⓒEBS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사실 시민은 정당정부에 의해서, 호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서지 않는다. 그런데 ‘나서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시민을 멍청하다고 생각한다면, 민주주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시민으로부터 모든 권력이 나오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시민은 누구나 훌륭한 혜안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 그들이 민주주의에 대해서, 효능감을 가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다. 많은 정치학자들이 말했듯이 결국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미래다. (5부 '민주주의의 미래')

솔직히 <민주주의>를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도 더 활성화된다면 좋을 것 같다. <민주주의>를 ‘정말 잘 만들었다’라기보다는, 약간은 다른 이야기를 전하는 다큐멘터리니까. 세계적 석학들도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서, 인터뷰해준 이유도 민주주의의 본질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길 바랐기 때문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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