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보다 못한 공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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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KBS스페셜-나는 살인자입니다. 진범의 고백’

“나는 살인자입니다.” 꽤 자극적인 제목이다. 하지만 꼭 필요한 제목이었다. <KBS 스페셜> ‘나는 살인자입니다’(6월 23일 방송)는 우리 사법 권력의 오만함을 고발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면서 인간의 양심에 관한 내용이었다. 진범의 등장과 참회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숨기는 우리 시대의 무기력에 경종을 울렸고 양심의 회복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침묵하는 경찰, 검찰, 법원은 살인자보다 못한 공권력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삼례, 17년간 이어 온 진실 공방

사실 이 프로그램의 소재가 된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은 세간에 널리 알려진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다. MBC <시사매거진 2580>(2000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2002년, 2014년), <PD수첩>(2015년), 뉴스타파(2016년)까지 수많은 매체에서 이 사건을 다뤘고 문제를 지적했다.

1999년 삼례의 한 슈퍼에 강도가 들어 부부 방에서 금품을 훔치고, 할머니 방으로 건너가 잠자고 있던 할머니 입에 청테이프를 붙이고 강도 짓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할머니가 질식사한다. 그리고 그 동네에 살던 세 명의 아이들이 범인으로 잡히면서 사건이 일단락됐다. 내용만 보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 한 특별한 사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법원 확정 판결 후 새로운 범인이 잡히면서 사건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새로운 범인은 전주가 아닌 부산지검에서 붙잡혔다. 부산지검은 마약 수사 도중 제보를 받고 수사해 범인들의 자백을 받고 강탈당한 패물의 행방도 확인했다.

‘나는 살인자입니다. 진범의 고백’ ⓒKBS

하지만 부산지검은 이 사건을 기소하지 않았다. 대신 사건을 사건 발생지인 전주지검으로 보냈다. 사건을 전주지검으로 보낼만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이미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으로 새로운 범인들이 모두 부산에서 붙잡혔고 장물처분지도 부산이었다. 뿐만 아니라 부산의 검사는 삼례 3인조도 이미 한 달 전에 부산교도소로 이감해온 상황으로 사실상 기소를 위한 모든 절차를 밟았던 것이다.

그런데 사건이 전주로 갔고 전주지검은 범인들의 자백을 믿기 어렵다며 풀어줬다.

부산지검 검사장과 전주지검의 검사

공교롭게도 당시 부산지검의 검사장은 전주지검 검사장으로 있다가 대검 중수부장을 거쳐 부산지검 검사장이 된 000 씨였다. 그리고 그는 전주에서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할 당시 전주지검의 검사장이었다. 부산지검의 내사 결과에 따르면 부산지검의 검사장은 자신이 전주지검에 있을 때 처리한 사건을 뒤집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도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받았던 사건을. 당시 검찰 수사관은 검사가 검사장실에 다녀와 상심하면서 사건을 전주로 보내라고 했다고 했다.

이 사건은 최초 사건을 처리(수사, 기소)했던 바로 그 검사가 다시 맡았다. 자신의 수사가 잘못됐다는 내사 결과를 받아 다시 처리한 것이다. 그 결과 진범은 풀려나고, 무고한 삼례 3인조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살인자입니다. 진범의 고백’ ⓒKBS

검사, 공익의 대표자? 공공의 적?

그런데 갑자기 지난 1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삼례 사건의 진범이 나타나 자백하고 피해자 할머니의 산소에 가서 절을 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것이다. 그리고 유가족이 그를 받아들였다. 그는 사건의 실체를 털어놨다. 그리고 17년 전에도 똑같이 자백했다고 말했다. 자백했지만 검찰이 자신을 포함한 범인들을 풀어줬다고 했다. 당시에는 고마운 검사였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진범은 전주지검에서 검사가 우리가 범인인 줄 알면서도 풀어줬다고 했다. 사건을 추궁한 것이 아니고 기억나지 않는 세부사항을 물어보면서 너희가 범인이 아닌 것 아니냐고 사실상 자백을 번복하게 했다고 한다.

검찰청법을 보면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삼례 사건에서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가 아니고 공공의 적이었다. 범인을 잡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며 정의를 바로 세우는 역할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범을 풀어주고 무고한 사람들에게 살인누명을 씌운 파렴치한 짓을 한 것이다.

우리도 사람이다

살인누명을 쓴 3인조의 삶은 우리를 한 번 더 분노하게 했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이었고, 누구도 그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법도 국가도 없었다.

ㅇ 주범으로 몰린 임명선 씨

임명선 씨는 어릴 때부터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로부터 매를 맞으며 자랐다. 매일 밤 아버지의 폭행을 피해 집 밖으로 쫓겨나 거리에서 잠을 잤고, 먹을 게 없어 수박 서리를 하다 걸리면서 전과자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연탄가스 중독 후유증으로 지적장애 2급의 장애인이었다. 잡혀가던 날 어머니가 옆방에 자고 있었지만, 아들이 잡혀가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가 잡혀갈 때 그는 혼자였다.

ㅇ 현재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최대열 씨

최대열 씨는 현재 지적장애 3급의 장애인이다. 사건 당시 아버지 어머니 모두 장애인이었고, 특히 어머니는 그가 어릴 때 아버지 경운기에 깔려 하반신 마비로 거동할 수 없는 처지였다. 사건 당시 그는 매형과 함께 일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은 그와 그의 가족의 주장을 모두 묵살했다.

ㅇ 천애 고아 강인구 씨

강인구 씨가 경찰에 끌려갈 당시 그는 엄마 없이 알코올 중독인 아빠와 생활하고 있었다. 엄마는 그가 6살 때 약국에서 사 온 약을 먹고 돌아가셨다. 엄마가 그에게 적어준 쪽지를 약국에 갔다 주고 받아온 약이 엄마와 그를 갈라놓았다. 엄마가 죽던 날 느꼈던 엄마 품의 온기를 잊을 수 없다는 그는 아직도 그날의 죄책감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잡혀갔지만, 아버지는 그의 울타리가 되지 못했다.

이런 그들이 살인죄를 뒤집어쓴 것이다.

‘나는 살인자입니다. 진범의 고백’ ⓒKBS

무전유죄, 유전무죄

얼마 전 네이처리퍼블릭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했다. 법조비리의 실체가 드러났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돈으로 변호사를 사고 사건을 무마하는가 하면, 돈이 없어 제대로 변론 받지 못해 죄를 뒤집어쓴다. 1999년 발생한 삼례 사건은 돈이 없어 죄를 뒤집어쓴 사건이었다.

삼례 3인은 돈이 없어 변호사를 사지 못했고 국선변호인마저 그들에게 자백을 강요했다. 번복하면 형기만 늘어날 뿐이라는 말에 그들은 법정에서조차 항변하지 못했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진행된 재판에서 강도치사로 유죄가 확정됐다. 2016년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현재진행형이다.

침묵하는 사법 권력

17년 전 사건 당사자들은 지금 어떤 위치에 있을까? 당시 사건에 관여했던 경찰, 검찰, 판사, 국선 변호인은 억울하게 누명 쓴 삼례 3인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당시 부산지검 검사장은 청와대 민정수석을 역임했다. 사건 담당 검사는 국내 최대 로펌에서 최근까지 일했다. 또 다른 검사는 지방의 한 고등검찰청의 부장검사로 있다. 국선변호인 중 한 명은 한 지방법원의 부장판사로 있다. 배석 판사 중 한 명은 현재 국회의원이다. 당시 검찰 수사관도 검사직무대리가 되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당시 수사책임자였던 경찰은 한 지방 경찰서의 수사과장으로 있다. 그리고 당시 부산에서 이 사건을 내사해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검사는 한 지방검찰청의 검사장으로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해서 사과하거나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나는 살인자입니다. 진범의 고백’ ⓒKBS

진실의 문, 열릴 것인가?

사건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얼마 후면 법원에서 재심 여부를 결정한다. 잘못된 판단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17년간 이어졌다. 이번에는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잘못된 판단을 바로 잡는데 걸린 기간이 무려 17년이다. 법조계가 새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17년 동안 죄인의 누명을 쓰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가족들의 인생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삼례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모여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다. 최초 사건을 내사한 부산지검의 검사, 그리고 범인이 아니라는 확신에 전주교도소에서 시작해 부산지검, 민변까지 찾아가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한 천주교 교화위원, 천주교 교화위원의 요청에 기꺼이 나서서 기억하기 힘든 그 날의 기억을 확인해 준 피해자, 그리고 현장검증 영상을 촬영해 경찰의 만행을 드러낸 유가족까지, 이들의 노력이 모여 진실의 퍼즐이 완성되고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의 중심에 재심을 청구한 박준영 변호사가 있었다. 그는 분홍색의 사건 서류 보따리를 들고 다니며 사건 관계자들을 만나 증언을 확보했고 피해자와 유족의 마음을 움직여 사건의 실체를 밝혔다. 진범을 설득하기 위해 매주 주말 부산을 오가며 진범과 같기 먹고 자기를 여러 번, 그런 그의 노력이 결국 진범까지 설득해 법정 증언을 이끌어내면서 진실의 문을 열 수 있었다.

그리고 억울한 누명을 밝히고 공권력의 잘못을 확인하면서 공권력의 반성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살인자도 반성하고 참회하고 있다. 우리 사법 권력이 끝내 침묵한다면 살인자만도 못한 경찰, 검찰, 법원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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