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속 트렌드, ‘투데이족’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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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 그간 터부시해온 ‘늙음’과 ‘죽음’이라는 소재를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투데이 예능’

영화 <죽은 시인들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을 향해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기라)이라는 가르침을 던진다. 키팅 선생의 말처럼 요즘 ‘투데이족’, 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 번뿐)의 앞글자만 따서 만든 ‘YOLO족’이 대세다. 기성세대가 냉혹한 현실 앞에 꿈이나 낭만 따위를 포기하던 태도와 달리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사는 이들을 뜻한다. 방송가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한 쪽에선 ‘늙음’과 ‘죽음’을 통해 인생의 소중한 의미를 되짚는다면, 또 다른 쪽에서는 그야말로 현재를 즐기는 각종 팁들을 전수한다. 두 가지 포맷은 완전히 달라 보이지만 비슷한 맥락으로 맞닿아있다. 내일보다 오늘을 집중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능계를 장악하고 있는 ‘투데이 예능’을 알아본다.

▲ 지난달 30일 첫 방영된 tvN <내게 남은 48시간>은 ‘죽음’을 앞세웠다. 특히 이미숙, 탁재훈, 박소담 등 좀체 예능에서 만나기 어려운 이들을 출연자로 섭외해 시청자의 호기심과 감정이입 효과를 살렸다. ⓒtvN

기존 방송가에서 ‘늙음’과 ‘죽음’은 기피할 만한 소재였다. 웃으면서 편하게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첫 방영된 tvN <내게 남은 48시간>은 ‘죽음’을 앞세웠다. 특히 이미숙, 탁재훈, 박소담 등 좀체 예능에서 만나기 어려운 이들을 출연자로 섭외해 시청자의 호기심과 감정이입 효과를 살렸다. 이 날 방송에서 이미숙은 막상 가상 죽음이 배달되자 “슬프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잘 살아왔나 싶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서러운 생각이 든다”며 눈물을 훔쳤다. 반면 박소담은 시한부 인생 앞에서 씩씩한 면모를 보였다. 생애 마지막 시간 통틀어 하고 싶은 것 중 하나로 소중한 사람인 배우 김예원을 만나 최대한 행복하게 죽음을 준비해나갔다.

이와 함께 최근 종영한 MBC <미래일기>는 출연자가 노년의 자신을 마주하는 일종의 ‘타임 리프’ 형식으로 시청자의 관심을 모았다. 출연자들은 하루 동안 60~80대가 되어 부모, 친구, 동료를 만나며 자신과 가족을 돌아보는 계기를 경험했다. 가수 슈는 56세로, 엄마는 97세의 모습으로 나란히 미래여행을 떠났고, 슈는 자신의 철없던 시절에 떠올리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무엇보다 <미래일기>의 핵심은 출연자들이 하루아침에 나이든 자신을 마주했을 때의 첫 반응이었다. 이들 스스로 노인으로 특수 분장했다는 설정을 이미 알고 있지만, 막상 거울에 비친 자글자글한 주름에, 검버섯이 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할 말을 잃는다. 겉모습만 바뀌었는데도 출연자를 대하는 부모, 친구, 동료들도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 ‘늙음’과 ‘죽음’의 반대편에는 그야말로 현재를 즐기는 팁을 알려주는 ‘쿡방’, ‘집방’, ‘행방’ 붐이 자리한다. 오늘을 잘 살기 위한 구체적 행복을 만드는 팁들을 전하는 것이다. KBS<배틀 트립>, JTBC<패키지로 세계일주-뭉쳐야 뜬다> 등 취향따라 떠나는 ‘행방’도 인기다. ⓒJTBC, KBS

‘늙음’과 ‘죽음’의 반대편에는 그야말로 현재를 즐기는 팁을 알려주는 ‘쿡방’, ‘집방’, ‘행방’ 붐이 자리한다. 오늘을 잘 살기 위한 구체적 행복을 만드는 팁들을 전하는 것이다. 지난해 정점을 찍은 ‘쿡방’ 열풍은 단지 ‘맛집’, ‘맛있는 요리’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만이 아니라 매일 세끼를 챙겨먹는 먹는 즐거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현실을 반영한다. 요즘 20, 30대 가구주의 경우 한 푼도 쓰지 않고 12년 넘게 모아야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가성비 좋은 ‘셀프 인테리어’가 ‘집방’으로 전이된 것도 비슷한 흐름이다. 또한 KBS<배틀 트립>, JTBC<패키지로 세계일주-뭉쳐야 뜬다> 등 취향따라 떠나는 ‘행방’도 인기다.

이렇듯 방송가에서는 후회 없이 오늘을 즐기도록 부추기는 ‘투데이 예능’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붙잡고 있다. ‘투데이 예능’은 죽음을 인생의 한 부분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웰다잉(well-dying)’ 열풍을 타고, 그간 터부시해온 ‘늙음’과 ‘죽음’이라는 소재를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오늘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힐링’으로 치환시키는 것이다. 이어 치열한 경쟁과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막막한 내일을 준비하기보다 ‘먹방’, ‘집방’, ‘행방’을 통해 일상의 피로감을 달래준다. 안정된 삶을 위해 오늘을 포기하기보다 자신만의 위로와 가치를 좇아 당장의 행복을 찾으라는 주문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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