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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캐릭터로 승부해야 … ‘값싸고 손쉬운 장르’ 인식은 곤란

|contsmark0|시트콤에 대한 우리 방송사들의 태도를 한 마디로 평하자면 얕보다 큰 코 다친 격이라고 할 수 있다. 공식적인 첫 작품인 sbs-tv의 [오박사네 사람들]의 성공 이후 다른 방송사에서도 모두 시트콤을 편성했지만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뒤를 이은 [오경장] 역시 [오박사]의 자기 모방에 머물러 마찬가지로 시청자들로부터 외면 당했고, 그 뒤 한 1년 정도 3개 방송사에서 모두 시트콤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 기간동안 암중 모색한 사람은 주병대 pd 뿐이었든지, 그는 [la 아리랑]을 통해 화려하게 권토중래했다. 이번에도 역시 다른 방송사에서 시트콤들을 줄줄이 따라 편성했지만 성공의 영예를 나눠 갖지는 못했다.어째서 시트콤들은 이처럼 주병대 pd의 두 작품을 빼고는 태작의 반열에도 들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시트콤들의 전반적인 실패에 대해 송창의 pd는 시간량과 에피소드 구성에 대해 핵심적인 지적을 한 적이 있다. 일정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정된 인물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한 가지 상황을 통해 웃음을 주어야 하는 시트콤의 성격상 50분은 너무 길다는 거였다. 시간이 그렇게 길다 보니 한 회에 등장하는 인물도 많아지고, 상황도 파생을 거듭해 재미의 초점이 사라져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가 25분 짜리 시트콤을 기획했는데 [남자 셋 여자 셋]이다. 이 작품은 썰렁한 초반 몇 개월을 넘기면서 이제 저녁 7시대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잡았고, 토요일과 일요일의 연속 재방송 또한 본 방송에 시간을 맞추기 어려운 시청자들을 끌어 모으는 흡인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제 시트콤의 성공작 명단이 세 개로 늘었다.이렇게 약 5년 동안 십수편의 시도 가운데 단 세 편이 그나마 시트콤 보는 재미를 제공했으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시청 시간을 투자함에 있어서 정말 비효율적인 장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방송 시간 때우기라든가 imf식 내핍 프로그램으로 즐겨 채택되는 것으로 볼 때 방송사에서 느끼는 시트콤의 매력은 값싼 제작비 요인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미국에서는 시트콤이 큰 인기를 끄는 장르이고, 따라서 형식이나 에피소드 구성, 대사 등에서 대단한 발달을 이룩해 냈으니, 우리도 그것을 본뜨기만 하면 기본적인 성공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그런 근사한 모델 텍스트가 있다는 점이 오히려 시트콤 제작에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형식이 이미 완성된 상태에서 이식된 장르이다 보니 장르의 기본 공식을 베낄 수는 있어도 축적된 제작 경험까지 얻어 올 수는 없는 일이다. 자연히 피상적인 흉내내기에 머물게 되고, 거기에 더하여 대표적인 흥행작들로 유명한 미국 텍스트들에 대한 컴플렉스까지 작용해 눈에 거슬리는 과장된 동작과 대사에 매달리게 된 듯도 싶다. 미국과 한국 시트콤 사이의 핵심적인 차이는 형식상의 완성도에만 있지 않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제작 체질의 차이가 문제이고, 그것은 결국 시트콤을 손쉬운 장르로 보는 방송사의 태도가 바뀌어야 극복될 수 있는 문제이다.시트콤과 관련해 가장 먼저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수없이 지적되어 온 것이 작가 문제이다. 하루 한 가지씩 소요되는 아이디어를 공급해 내려면 아이디어 제공 작가를 많이 확보해야 하는데, 제작비 절감 동기에서 편성된 시트콤에 그런 지원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결국 해답을 알면서도 다른 길을 찾아 나서야 하니 일이 잘 될 리가 없다. 더욱이 시트콤 장르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풍부한 작가는 전무한 상태에서 시트콤이 시작되었으니, 담당 pd들은 장르의 전도사 역할과 작가에 대한 교사 역할까지 겸해야 했으리라.코미디나 드라마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시트콤의 고유성은 무엇일까? 장소가 제한된다거나 회상이 금지되어 있다거나 관객의 반응을 즉각 받아 가면서 연기자들이 흥을 낼 수 있다거나 하는 점들은 모두 오픈 세트에서 연기가 이루어짐으로써 부가되는 특징들일 뿐 시트콤의 철칙은 아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로 승부를 건다는 점이다. 한 회에 하나씩 던져지는 상황은 바로 그 내재된 캐릭터를 밖으로 투영시키기 위한 스크린 구실을 한다. 에피소드들은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고안될 뿐이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발전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시트콤은 늘 제 자리로 돌아오는 폐쇄 구조를 띠게 된다.캐릭터의 표현은 대개 깜찍한 대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가령 삶 속에서 어떤 사람이 흔히 예상하지 못한 재치있는 반응을 보인다거나 그 상황을 간명하게 돌려 쳐 표현할 때 우리는 대단히 유쾌한 기분을 맛보곤 한다. 옆에 그런 사람이 늘 함께 있다면 무미건조한 삶에 얼마나 큰 활력소가 되겠는가. 시트콤은 바로 그런 기쁨을 제공해 주는 장르이다. 실생활에서는 1년에 한 두 번 만날까 말까 한 그런 소중한 순간들을 시트콤에서는 전문적인 연출을 통해 하루에 한 번씩 만날 수 있게 해주니, 그런 재치 있는 대사나 반응을 창출해 낼 때 tv 앞일 망정 마음으로 박수를 치게 된다. 현재로서는 캐릭터들 간의 팀웍이 다져진 [남자 셋 여자 셋]과 오지명의 뒤를 이어 시트콤의 기린아로 등장한 [la 아리랑]의 이영범, 그리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문득문득 떠올라 웃음 짓게 하는 [순풍 산부인과]의 어눌한 박영규 등에게서 그런 캐릭터의 성취를 목격할 수 있다.이처럼 캐릭터가 중시되는 시트콤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작가뿐만 아니라 연기자에게도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체화가 중요하다. 흔히 코미디언을 많이 캐스팅하지만 그들이 많은 경우 오히려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어색한 탓도 등장인물의 특성을 체화시킬 연기 역량이 없는데 원인이 있다. 마찬가지로 드라마에서는 코믹 연기로 한 몫 보는 연기자들도 시트콤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까닭은 짤막한 한 번의 호흡으로 상황의 핵심을 찔러야 한다는데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트콤 연기는 어렵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자 스스로에게나 시청자에게 익숙하게 만들기 위한 인내의 시간과 애정이 요구된다. 그런데 최근 시트콤이 다시 남발되면서 한 연기자가 두 편에 동시에 출연한다거나,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간다거나 할 때 그 캐릭터가 잘 살아날 수 있겠는가.결론적으로 말해서 시트콤은 잘 만들기가 참 어려운 장르이고, 그저 보통 수준의 흥행 성적을 올리기는 그보다 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처럼 다만 편성상의 필요에서 급조하는 방송사의 태도가 개선되지 않고는 제작진이나 시청자 모두에게 피해 가고 싶은 3d 프로그램 처지를 벗어나기 어렵다. pd연합회 방송비평모임대표집필:손병우|contsmar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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