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미디어공약 평가②] 대통령 선거 방송정책 공약을 보는 두 가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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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 언론의 자유를 잃고, 표현의 자유를 빼앗겼습니다. 저널리즘이 무너졌습니다. “언론도 공범이다.” 촛불 광장의 외침이었습니다. 미디어 개혁은 이제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습니다. 국민주권의 촛불정신을 쫓아 미디어 시민주권을 되찾아야 합니다. 대선후보들은 촛불의 명령을 구현할 수 있는 준비가 됐을까요?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회가 19대 대선 주요 후보의 미디어공약을 평가해봤습니다. 방송통신 노동, 방송, 통신, 시청자·공동체미디어 분야 순으로 결과를 전합니다.

모든 선거가 그렇겠지만 대통령 선거의 공약은 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다. 지난 18대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정책공약집은 총 491쪽에 달했다. 국회의원 선거나 지자체 선거보다 대통령 후보자의 정책공약집은 몇 배나 두껍고 다루는 분야 또한 전방위적이다. 게다가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 직후에 치러지기에 사회 곳곳에서 9년 동안 억눌렸던 개혁의 요구들이 빗발치는 기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행정부의 수장이지, 국회와 사법부를 통제할 수 있는 제왕적 권력이 결코 아니다. 분명히 대통령의 권한으로 이행할 수 있는 공약의 한계가 있지만, 온 국민의 직접투표로 뽑는 선거라는 형식은 대통령에게 권한 이상의 욕망과 기대를 투영하게 만든다. 방송 부문 또한 예외가 아니다. 방송은 텔레비전만이 아니며 시청자 또한 채널만 돌리던 예전의 시청자가 아니다. 오랫동안 풀리지 못했던 과제들에, 달라질 미디어 환경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뒤섞여 복잡하고 난해한 셈법이 필요한 부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난 27일까지 제출된 네 당의 방송부문 정책공약 평가에는 두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 첫째, 각 후보의 방송 정책은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대한 이해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둘째, 대통령의 권한이 갖는 한계를 명확히 하여 실현가능한 공약을 제시해야 한다.

 

첫 번째 기준으로 볼 때 가장 두드러지는 네 정당의 답변은 방송통신규제기구의 개편 방안과 유료방송시청자위원회에 대한 입장이다. 규제기구의 개편 방안은 차기 정부의 미디어 정책에 대한 가치 설정 뿐 아니라 현재 시장 상황에 대한 이해가 담길 수밖에 없다. 선거 전략상 공개할 수 없다거나, ‘합의 정신’의 회복만을 내세우는 것은 가치도, 이해의 정도도 알기 힘든 공약이다. 아예 시장과 정치를 분리하여 정치적 공방이 오가는 방송과 언론의 규제를 별도 기구에 맡기자는 지극히 ‘정치적’ 제안을 한 정당도 있었다.

 

시장 변화에 대한 이해 부족은 이용자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이어진다. 유료방송시청자위원회는 명칭에 오해가 있을 수 있으나, 방송 뿐 아니라 유무선 통신, 인터넷, OTT, IoT 등 다양한 미디어 환경을 살아가는 이용자들의 선택권과 서비스 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구현하기 위한 기구다. 어느 한 정당도 이렇게 이해한 곳은 없었다. 그저 방송사 시청자위원회와 같이 콘텐츠 비평과 제작 참여 수준에 머무는 수용자위원회의 관점에서 보고 있을 뿐이다.

 

두 번째 기준을 보자.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다. 설령 노동조합을 비롯한 각 이해당사자들의 요구가 있더라도 관련법의 시행령이나 행정기구의 권한으로 실현이 가능한 공약으로 제시하거나, 여당을 통해 입법·사법부를 설득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언론장악방지법의 개정을 포함한 공영방송의 독립에 대한 공약이 그렇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국회 구성은 그대로이며, 지난 수개월 동안 계류된 법안이 쉽게 통과될 리 없다. 언론장악방지법과 같이 여야의 대립이 뚜렷한 법안들에 대해 우선 개혁과제의 선정과 처리 방식을 논의할 협의체를 국회에 제안하는 방안 등 대통령과 여당의 의지를 강력히 피력하겠다는 약속이 더 현실성 있을 것이다.

 

대통령 권한의 한계에 대한 인정은 달리 말해 대통령과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의 적절한 분산을 또한 의미하기도 한다. 방송부문 공약에서 대표적인 중앙 권력이 분산되어야 할 부분은 바로 지역방송 등 미디어 환경의 지역성 구현이다. 미디어의 지역성은 지방 특산물과 같이 콘텐츠의 지역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지역성은 지역 내 미디어에 대한 지역민들의 자기 결정권 확보를 뜻한다. 지역 미디어에 대한 인허가 심사나 규제, 그리고 지원 등에 지역민들의 대의기구가 어떤 권한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은 단순히 미디어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분권의 정치적 문제다. 지역 정치와 자치권이 부재한 곳에서 어떻게 미디어의 지역성이 구현될 수 있는가. 대통령 선거의 공약에는 이렇게 권력의 행사에 대한 약속만이 아니라 권력의 배분에 대한 약속 또한 포함되어야 한다.

 

네 정당의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답변과 발표될 공약의 문구 하나하나에 무게를 둘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문자, 도표, 그림으로 제시된 공약은 당선 이후 말과 행동으로 표출될 때 실체가 드러난다. 공약은 기대에서 만들어지지만, 실행은 의지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그것이 대통령만의 의지여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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