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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글쓰기를 시작했다⓻]

▲ ⓒ픽사베이

[PD저널=김민태 EBS PD] 1986년 11월 24일자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는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의 이야기가 실렸다. 주인공은 미국 텍사스주에 사는 ‘로이 웨스틴’이라는 사람이다.

웨스틴은 수석전람회에 갔다가 마음에 드는 진귀한 돌을 발견했다. 푸르고 회색 빛깔을 띤 돌의 가격은 15달러였다. 흥정을 잘해 10달러에 샀다.

집에 돌아와 비로소 돌을 자세히 봤다. 그런데 이상한 예감이 들어서 정밀 감정을 의뢰했다. 감정 결과 그 돌은 보통 돌이 아니었다. 1900캐럿의 사파이어 원석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원석의 기록을 깼다. 로이 웨스틴이 번 돈은 228만 달러. 세상에서 손꼽히는 횡재라 할 만하다.

보석 주인은 이 기사를 봤을까. 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알아봤자 슬픈 이야기 아닌가.

보통 이런 에피소드가 기사화 될 때는 단순히 웃자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메시지가 있다. 이 기사는 사물에 대한 ‘안목’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리 소중한 것도 안목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나는 ‘생활 글쓰기’에서 보석을 발견했다. 이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글쓰기를 일상의 일부로 받아 들인 지 수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 전까지 나는 출판을 전제로 하지 않은 글에 대해서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페이스북에 쓴 글이나 블로그, 메모 나아가 일기가 나의 삶에 크게 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알게 되었다.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기저에 글쓰기가 있었고 그 끝에 출간이 있었다. 내가 어쩌다 저자가 되었을까. 책이란 것도 결국 사소한 글쓰기에서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아가 이러저러한 글의 흔적에서 새로운 호기심이 꽃핀다는 것도 알게 됐다. 생각과 의견을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나라는 사람을 더 이해하게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20년 간 하버드 글쓰기 프로그램을 이끌어온 낸시 소머스 교수가 그런 말을 했다. “대학 지식인은 글쓰기로 완성된다.” 공부와 글쓰기의 관계에 대해 유시민 작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공부의 과정에서 글쓰기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수준을 올리고 싶다면 계속해서 그 단계에서 내가 느끼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을 반드시 문자로 표현해봐야 합니다. 그렇게 표현해봐야 그 어휘가 내 것이 되고요. 뇌의 장기 기억 장치에 보관이 되고요. 쉽게 상실되지 않고요. 다음에 출력해서 또 쓸 수 있고요. 거기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비슷한 말을 한다. 공부의 완성은 쓰기다. 비단 학업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걸 표현해 내지 못하면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흔적을 남기면 다음 글에 대한 힌트가 보인다. 이렇게 써 놓으면 생각만 한 것보다 실천할 확률도 높아진다. 입력과 출력의 순환 시스템은 이런 노력에서 유지된다. 출력이 다시 입력을 자극한다.

글쓰기의 시작에서 ‘흔적 남기기’는 중요한 키워드다. 눈에 보이는 쪽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일상적 글쓰기에서 주제에 천착할 필요는 없다. 사연 없는 군대 이야기가 있는가. 열병 없는 사춘기가 있었던가.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 슬프고 좌절했던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런 단면도 좋은 소재고 오늘 있었던 일도 좋다. 시작만 쉽다면,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참 좋은 방법이다. 일단 쓰기를 시작하면, 무얼 쓰던 간에 마법도 시작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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