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어른답지 않은 어른들이 만든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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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으로 벼랑 끝에 선 가족, 숨겨진 진실을 찾아 나서다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한 아이가 학교 옥상에서 추락했다. 과연 어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정상적인 걸까. 아이가 왜 추락했는지 이유를 파악하는 일이고, 어떤 문제가 있었다면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일이 우선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상처 입은 가족이나 친구들이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는 시간과 기회들을 마련함으로써 혹여나 존재할 수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까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어른들의 행동이고 조처이다. 불행한 일이 벌어져도 ‘아름다운 세상’은 그런 어른다운 행동들에 의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니.

하지만 JTBC <아름다운 세상>이 그려내는 풍경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학교는 혹여나 이 문제로 명성에 흠집이 생길까 서둘러 사안을 덮으려 한다. 심지어 아이가 친구들에게 이른바 ‘어벤져스 게임’이라는 명목으로 집단 구타를 당하는 동영상이 발견되었지만 그건 그냥 장난이었다는 아이들 증언과 부모들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듣고 성급히 자살 시도로 정리해버린다.

학부모들은 제 자식 걱정만 하느라 친구의 비극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학업 분위기를 망친다며 납득하지 못하는 추락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피해자의 부모를 오히려 몰아세운다. ‘아름다운 세상’이란 드라마의 제목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도대체 무엇이 아름다운가 하고 묻는 듯하다.

▲ JTBC 금토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현장포토. ⓒJTBC

<아름다운 세상>이 담으려는 건 그저 아름답지 못한 어른들의 모습만이 아니다. 그런 모습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치고,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어버리는지를 담는다.

추락한 아이 선호(남다름)와 함께 있었던 아이 준석(서동현)은 다툼 끝에 일이 벌어졌지만, 현장에 있던 엄마 서은주(조여정)가 그 사실을 자살로 은폐하기 위해 선호의 신발을 옥상에 옮겨놓는 걸 목격한다. 은주는 그것이 아들을 위한 행동이라고 여겼지만, 그 행동을 본 준석은 오히려 엇나가기 시작한다. 죄를 지었지만 거기에 합당한 벌을 받지 않는 아이는 과연 구원받은 것일까.

아니다. 아이는 오히려 지옥 속에 빠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힘이 있으면 죄를 저질러도 아무런 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로 점점 무감해진다. 아이는 심지어 자신이 저지른 일을 덮기 위해 다른 친구에게 뇌물을 줘 입을 막고 진실을 얘기하는 아이를 따돌린다.

학교재단 이사장인 준석의 아버지는 경쟁사회에서 세상을 이끄는 건 몇몇 소수이며 자신이나 아들 준석이 바로 그 소수라고 말한다. 그러니 다수의 희생과 피해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들의 아픔을 애도하거나 하는 행위들을 심지어 ‘시시한 짓’으로 치부해버린다. 아이는 그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 정도 갖고 있던 죄책감마저 지워버리며 괴물처럼 미소를 짓는다. 죄를 짓고 처벌받지 않은 아이는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지옥 속으로 들어갔다.

<아름다운 세상>은 어른이 어른다운 행동을 보이지 않을 때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준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자신들의 행동의 전범으로 삼는다. 경쟁적인 사회에서 항상 꼭대기에 서야 한다는 준석의 아버지 덕분에 준석은 그런 행동을 해왔던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은 한 학교에서 벌어진 학교폭력과 아이의 추락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우리사회의 축소판이다. 세월호 참사 같은 거대한 사건이 터지고 그 트라우마가 온 국민에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안되는 이 상황을 아이들은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과연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을까. 드라마는 이런 질문을 엄중하게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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