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고 답답한 일상에도 감사할 일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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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일기’ 써보니, 점점 즐거워지는 일상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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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허항 MBC PD]  '감사일기'를 쓴 지 반 년이 넘어간다. 아는 분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지고, 미래에 대해 자신이 없어진다는 느낌 속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속는 셈 치고 스마트폰 노트에 하루 한번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라고 하기엔, 오늘 감사했던 일들을 나열한 간단한 리스트 같은 형식이다. 

처음에는 어떤 부분에 대해 감사해야 할지 한참을 생각해야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그냥 오늘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써보고, 좋은 책을 발견한 것에 감사하다고 써보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오늘 점심 저녁을 챙겨먹을 수 있는 돈이 수중에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시력이 있음에 감사하다고 적게 되었다. 

하루 이틀 쓰기 시작한 감사일기는 어느 새 몇 달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쓰는 나의 일과가 됐다. 신기하게도, 감사일기는 쓰면 쓸수록 그 내용이 많아졌다. 처음엔 두세 개였던 ‘감사거리’가 금세 20~30개로 늘어났다.

더욱 감사한 것은, 감사일기가 습관이 되면서부터는 일상의 모든 것에서 감사할 거리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이다. 날씨가 좋은 날은 좋은 날대로 감사하고, 비오는 날은 나름의 운치가 있어서 감사하다고 쓰고 싶다. 만나는 사람, 먹는 음식 하나에서도 감사할 거리를 찾기 시작하니 그 순간순간이 점점 즐거워짐을 느낀다. 

이렇게 감사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요즘, 내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담고 있는 책을 만났다.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 The Gratitude Diaries>이라는 책이다. 저자인 제니스 캐플런은 우연히도 나같은 여성 TV프로듀서이다. 한 때는 매사에 불평을 달고 살았고, 짜증이 많았다는 점도 나와 비슷했다. 그 역시 우연한 계기를 통해 감사일기를 쓰며 감사의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1년을 보내며 경험한 변화들을 책에 기록한 것이다. 

저자는 나보다 훨씬 심도 있게 ‘감사’에 대해 연구했다. 감사하는 습관이 일의 성과에, 건강에, 인간관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몸소 경험한 바를 기록했다. 감사할수록 일에 대한 시각도 폭넓어지고, 충동구매도 줄이게 되고, 건강도 좋아진다고 한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호르몬이 나온다는 과학적 연구도 찾아내 소개하고 있다.  그는, 감사는 어떤 상황에 대한 수동적 반응이 아닌 ‘적극적인 관여’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할 때 만족감을 더 잘 느끼게 되고 불행감은 잘 느끼지 않게 된다’고 단호히 말한다. 

사실 요즘은 뭔가에 감사하기가 참 힘든 시기다. 가족들의 건강이 걱정되고, 주변 분위기도 다소 뒤숭숭하다. 여러 프로그램들의 촬영 일정도 취소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는 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막막하다. 새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 혹시 첫 방송이 미뤄지는 상황까지 오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요즘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제니스 캐플런의 표현을 빌어) ‘감사의 렌즈’로 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보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정부와 건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의 열을 재고 위생을 관리하는 분들의 존재에 감사해본다. 이제야 부모님께 건강 챙기시라고 자주 연락하는 나의 무심함을 돌아보게 된 것에 감사해본다. 무엇보다도, 예전 같으면 예의 불평불만과 자기연민으로 점철될 수 있을 상황에 의식적으로 감사를 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 가장 감사하다. 

“감사하면 가장 안 좋은 시기에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쁘다.” 줄을 그어놓은 많은 문구들 중에, 가장 소개하고 싶은 구절이다. 육아로 하루종일 칩거하는 사람들, 혹은 오늘도 만원 지하철을 타고 일터로 나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답답한 마스크 너머 한줄기 맑은 숨이 되어주길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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