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직원'‧'몹쓸 짓' 가장 많이 사용한 언론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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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문 연 '언론이 또', 성차별 보도 한눈에
운영자들 "기술의 선한 영향력 믿어…기자들 경각심 가지고 변화 계기 됐으면 "

성차별적 보도 관행을 분석하고 감시하는 비영리 사이트 '언론이또' ⓒ 언론이또
성차별적 보도 관행을 분석하고 감시하는 비영리 사이트 '언론이또' ⓒ 언론이또

[PD저널=박상연 기자] ‘몰래카메라’ ‘인면수심’ ’몹쓸 짓‘, 성범죄를 전하는 보도에서 흔하게 접하는 표현이다. 성범죄의 심각성을 축소하거나 뚜렷한 이유 없이 여성을 부각하는 보도 관행은 지속적인 비판에도 현재진행형이다.

'언론이 또'(바로가기)는 성차별적 보도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기 위해 지난 4월 문을 연 사이트다. ‘언론이또’는 2016년 1월 이후 포털 사이트에 매일 송고되는 기사를 대상으로 하루에 3번 성차별적 표현이나 성범죄를 미화·축소하는 표현을 분석한다. '성차별 보도 아카이브'인 셈이다.  

사이트는 데이터 분석과 개발 역량을 가진 5명이 ‘김뉴스’라는 팀을 꾸려 익명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 팀원이 온라인에서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여기에 공감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뭉쳤다. 

언론의 변화를 추동하는 미디어 이용자들의 활약은 최근 두드러진 현상이다. 페이스북 '기레기 추적자'가 '나쁜 언론과 기자'를 '박제'하는 데 집중했다면 '언론이 또'는 성평등 보도 감시에 자동화 기술을 구현한 게 특징이다.  

지난 19일 만난 '김뉴스'팀은 “매일 뉴스 정보가 거대하게 쌓이지만 인간이 다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짚으며 “방대한 빅데이터 속에서 기사 분석 및 감시를 통해 문제 보도를 추출하는 자동화 모델을 만드는 게 ‘언론이또’의 목표”라고 말했다.

‘언론이 또’ 탄생 배경에는 최근 벌어진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가 영향을 미쳤다. ‘n번방 시민방범대’ 같은 비영리·공익 사이트가 성범죄 사건의 수사 현황과 여론을 파악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보고 팀원들은 ‘언론이 또’ 사이트 개발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만연한 성차별·성범죄 문제를 깊게 고민하게 된 계기”라며 “기술을 선하게 이용하고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싶다는 바람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언론이또' 사이트는 성차별 조장 등 문제 표현을 사용한 기사들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통계 자료를 제공한다. ⓒ 언론이또
'언론이또' 사이트는 성차별 조장 등 문제 표현을 사용한 기사들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통계 자료를 제공한다. ⓒ 언론이또

분석 대상인 부적절한 보도의 유형은 △ 성범죄를 축소·은폐하는 표현 △ 범죄 가해자의 악마화·비일상화 △ 범죄 행위의 부정확한 표현(‘몰카’ ‘미투’ ‘리벤지 포르노’ ‘아동·청소년 음란물’) △ 관행적인 성차별 표현(‘저출산’, 전문직 등 여성 성별 대상화) 등으로 나눴다.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 ‘성폭력 사건 보도 수첩’ 등 보도준칙을 참고해 기준을 정했다.

특정 용어 사용이 부적절하다는 사회 공감대도 반영했다. 시민단체 ‘디지털성폭력아웃(DSO)’ 등에서 ‘아동 음란물’이란 표현이 성범죄 본질을 가리기에 ‘아동 성착취물’ 등으로 명시하자는 제안 등이 대표적이다. ‘여교사’ ‘여기자’ '여직원' 등 여성을 강조하는 표현도 ‘인간의 기본 성별을 남성’으로 전제하는 시각이 깔린 보도라고 이들은 본다. 또 '저출산' 용어도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해 부적절하다는 판단이다. 

“선정 기준과 제안이 주관적이지 않도록 이수정 교수 같은 전문가 의견과 기존 보도지침 등을 참고하고 팀에서 끊임없이 논의한다”고 팀원들은 전했다.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한 정도에 따라 언론사 순위도 매긴다. 최근 6개월 이내에 수집된 기사 7506건 중에서 부적절한 표현이 담긴 기사의 비율이 가장 높은 언론사는 <문화일보>(135건)였다. 

김뉴스팀은 “날이 갈수록 성인지 감수성이 변화하는데 언론은 여전히 성차별적 보도 행태를 계속한다"며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맥락 없이 여성 확진자의 성별만 표기한 기사가 많았는데, 성차별적 언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독자의 무의식에 이를 주입하는 ‘나쁜 기사’들을 바로잡고 싶다”고 했다.

내용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문제 보도로 분류하는 기술적인 한계는 보완해 나갈 계획이다. 김뉴스팀은 “앞으로 ‘자연어 처리’ 기술을 통해 기사 전체 맥락을 읽고 오분류 확률을 낮출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앞으로 이용자들의 관심을 독려하기 위해 ‘뉴스레터’나 ‘시민 제보’ ‘댓글’ 기능 등을 도입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실시간 수집한 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많이 사용되는 성차별 언어를 따로 모아 보여주는 ‘워드클라우드(특정 단어 사용 빈도를 계산해 크기를 달리 표기하는 시각화 기술)’ 등도 기획하고 있다.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해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과의 협업도 고려할 예정이다. 이들은 “‘언론이 또’ 사이트가 미디어 이용자뿐 아니라 기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보도 변화에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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