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지만 괜찮아’, 현실 닮은 잔혹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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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사이코지만 괜찮아', 서로의 상처를 끌어안은 문영과 강태
결핍과 상처투성인 이들을 치유하는 것은

tvN 토일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tvN
tvN 토일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tvN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어느 숲속의 대저택에서 한 가족에게 벌어진 끔찍한 비극. 어떤 사건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엄마는 죽었고 아빠는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거기서 살아남은 아이는 커서 잔혹동화로 베스트셀러가 작가가 된다. 그가 바로 고문영(서예지)이다.

tvN 토일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고문영이라는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들은 마치 팀 버튼의 세계가 가진 어두침침하지만 동화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때때로 잔혹하지만 유머가 더해진 연출들은 <스위니토드>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어린 시절 끔찍한 일을 겪은 고문영이 평범할 리 만무다.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하는 말과 행동들은 수시로 상식의 선을 넘어선다. 사회가 그런 그를 내버려둘 리 없다. 수시로 사고를 치는 그를 출판사 상상이상의 이상인 대표(김주헌)가 나서 (돈이 든)꿀물 박스로 막아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평범하지 않은 문영의 눈에 문강태(김수현)가 들어온다. 자폐인 형 상태(오정세)를 부양하며 정신병동 보호사로 살고 있는 강태 역시 만만찮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형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존재가 되라는 엄마의 강요를 받고 자란 강태는 한때 ‘형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결코 형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껏 그의 옆에서 살아간다. 그는 형만이 자신의 전부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삶이 지워져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고문영이나 문강태는 모두 부모 세대에게 상처를 입은 인물들이다. 그들은 차별받았고 심지어 학대의 흔적까지 엿보인다. 그들은 원하지 않았던 상처들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강태는 여전히 형 상태를 부양하고 지켜야 한다는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마음을 닫고 살아가고, 문영은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까지 모두 죽일 거라는 엄마의 악몽 속에 살아간다. 

고문영이 쓴 잔혹동화의 내용들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첫 번째 동화 ‘죽음의 그림자를 끌고 다니는 괴물’은 다르다는 이유로 그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는 소녀의 이야기이고, 두 번째 동화 ‘좀비아이’는 괴물이라 치부되어 식욕만 채워주면 될 거라 여겼던 좀비아이가 실은 엄마의 온기를 필요로 했다는 이야기다.

세 번째 동화 ‘푸른수염의 비밀’은 푸른수염을 가진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모든 걸 주지만 단 하나 지하실 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한 걸 어겨 죽음을 맞는 여자의 이야기다. 첫 번째 동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존재에 대한 화두를 꺼낸 거라면, 두 번째 동화는 그렇게 다른 존재들도 똑같이 ‘온기’를 원하는 존재라는 것이며, 세 번째 동화는 조금 다른 존재라도 사랑이 가능할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 ⓒtvN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 ⓒtvN

동화의 내용처럼 본인들이 원한 게 아니었지만 문영도 강태도 어쩌다 다른 존재가 되어 차별당하며 온기조차 허락되지 않는(혹은 허락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이런 존재들을 세상은 ‘사이코’라고 부르며 손가락질하고 차별한다. 하지만 드라마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강태가 일하는 정신병원의 이름이 ‘괜찮은 정신병원’이라는 점이 그걸 잘 말해준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조금 달리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름이 아닌가. 

물론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하나의 잔혹동화가 그려낸 현실에 대한 은유로 읽는 편이 나을 게다. 정신질환에 대한 정보들이 담겨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사이코라고도 불리는 이들을 통해 현실이 얼마나 잔혹한가를 드러내고, 그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어떻게 버텨내고 살아갈 수 있는가를 말하고 있다.

지금의 청춘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듯이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잔혹한 세상에서 평범한 삶,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조차 쉽지 않은 문영과 강태의 멜로는 그래서 달달하기보다는 처절하게 다가온다. 그들을 뒤덮고 있는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그 온기로나마 버텨내려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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