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파업' 갈등 중계 몰두한 언론...공론장 역할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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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휴진 14일째 이어지고 있지만...정부-의협 대립 부각 보도 대부분
파업에 혐오 드러냈던 보수언론 이번엔 '정부 탓'
"갈등 첨예한 파업 이슈, 공공의료 논의로 이끌어오지 못해"

전국의사 2차 총파업 첫날인 지난 8월 26일 경기 수원시 아주대학교 병원에 전공의들이 벗은 가운이 바닥에 놓여져 있다.ⓒ뉴시스
전국의사 2차 총파업 첫날인 지난 8월 26일 경기 수원시 아주대학교 병원에 전공의들이 벗은 가운이 바닥에 놓여져 있다.ⓒ뉴시스

[PD저널=이준엽 기자]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추진에 반발한 의료계의 집단휴진과 관련한 보도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보도가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 중계에 치우쳐있어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공공의료 논의에서 언론이 공론장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4일째 이어지고 있는 의료계 집단휴진은 코로나19 재확산세와 맞물려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 등으로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20일부터 9월 2일까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의료계 파업' 키워드로 검색된 기사는 7631건에 달한다.

하지만 의료계의 집단 반발 배경과 갈등의 쟁점을 제대로 짚은 보도는 찾기 어렵다.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2주간 이어지고 있는데도 온라인 커뮤니티와 카페에는 '뉴스를 봐도 의사들이 반발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의료계 파업 이유가 무엇이냐'는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다. 

의료계의 반발로 정부가 추진을 중단한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 방안'은 지역간 의사 인력 불균형, 특수분야 의사 수 부족 문제의 대책으로 나온 것이다. 10년간 의무적으로 공공의료와 중증 필수 의료기능을 수행하는 '지역의사'를 공공의대를 통해 육성하겠다는 게 방안의 뼈대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취약지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근무환경 개선과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 개선 등을 우선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3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용산임시회관 회의실에서 열린 범의료계 4대악 저지투쟁 특별위원회 3차회의 참석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3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용산임시회관 회의실에서 열린 범의료계 4대악 저지투쟁 특별위원회 3차회의 참석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공공의료와 의료 격차 문제라는 화두가 던져졌지만, 언론은 '정부-의료계 대립' 프레임을 부각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강대강 대치' '치킨게임' 등의 표현을 써가며 단체행동에 나선 의협와 엄정 대응으로 맞선 정부의 대립 구도에 집중한 보도가 대부분이다.

<젊은 의료인 10명 이야기 들어보니...“의사·환자 만족하는 지역 공공병원 확충이 먼저”>(<경향신문> 8월24일자), '의사 집단휴진 Q&A'(<한겨레>9월 3일자) 등 의료계의 목소리와 쟁점을 짚는 보도도 있지만, 논란을 다룬 자극적인 보도에 묻히기 일쑤다. '공공의대 시민단체 추천' 가짜뉴스와 정부의 전공의 전문의 고발, '문재인 대통령 간호사 격려 메시지' 등의 주변적인 논란에 주목한 보도가 상대적으로 많아서다.

이는 지난 2주 동안 5개의 종합일간지(조선·중앙·동아·경향·한겨레) 가운데 관련 보도를 가장 많이 내놓은 <조선일보>에서 두드러진다. <조선일보>는 36건으로 의료계 파업 관련 보도가 가장 많았는데, 갈등의 책임을 정부에 돌리는 보도가 주를 이뤘다. 노조 파업에 뿌리깊은 혐오를 드러내왔던 <조선일보>는 이번 의료계 파업에선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7일엔 사설에서 "정부가 이 와중에 의사들의 반발을 부를 것이 뻔한 의대 증원 방침을 밝혔다. 코로나 사태가 잡힌 뒤에 추진할 수는 없었나"면서 "굳이 평지풍파를 만든 경솔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정부를 질책했다. 

3일자 사설에서도 문 대통령이 간호사를 격려한 글을 올린 것을 놓고 "간호사를 위로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을 공격하는 것"이라며 "국정을 생각하는 대통령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갈등이 봉합되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의사들에 대한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자극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9월 3일자 사설.
조선일보 9월 3일자 사설.

 

이익집단이나 노조의 단체행동과 상반된 보도 태도에는 정부의 실책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채린 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는 “지난 7월 28일 의협이 의사 파업을 예고한 이후 관련 보도가 쏟아졌지만 공공의료 논의보다 갈등만 부각되고 있다"며 "이전에 철도노조 파업 등에서 언론이 시민의 불편함을 강조한 것과 달리 이번 의료계 파업에서 상당수의 언론은 시민의 불편함을 축소하려는 경향도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주영기 한림대 미디어스쿨 학장은 “의료계 파업은 단순한 찬성, 반대를 떠나 의료서비스 접근성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며 “언론은 다양한 의견을 들어 갈등이 촉발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하고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사회 갈등 이슈의 본질을 파고들지 못하는 언론의 문제가 이번 의료계 파업에서도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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