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선곡이 어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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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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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박재철 CBS PD]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에 서투르다는 것은, 그것이 무슨 일이든지 
설령 도둑질이라고 할지라도 서투르다는 것은 보기에 딱하고 
보는 사람을 신경질 나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미끈하게 일을 처리해버린다는 건 우선 우리를 안심시켜준다. 

-김승옥 <무진기행>

나는 클래식 선곡에 서투르다. 그렇다고 팝이나 가요에 능숙하단 건 아니지만 유독 클래식은 버거워 프로그램 배당에서도 은근히 기피해왔다. 그러다 며칠 전 클래식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동료가 휴가를 내며 대타 제작을 부탁했다. 

그간 이래저래 고생한 걸 잘 알지만, 호기롭게 “내가 대신해줄 테니 다녀와!” 이 말이 선뜻 나오지 못하고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결국, 나는 동료를 ‘안심’시켜주는 데 실패했다.

친해지기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연을 맺으면 평생 가는 친구가 클래식이라고 하던데, 
그 한번이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내 딴에는 친해 보려 건넨 손을 멋쩍게 거둬들였던 몇 번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가장 먼저는 대학 과동기와 관련된 기억이다. 화창한 봄날, 교내에서는 흩날리는 벚꽃을 맘껏 즐기라는 듯 클래식 선율이 흘러나왔고 같이 걷던 동기가 슬쩍 물었다. 

“클래식 음악 좋아해?”
“응. 가끔 들어”
“그렇구나, 누구 좋아해?”
“어, 난 바흐가 좋던데”
“아니, 작곡가 말고 연주자”
“....” 

음악 좀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누가 연주하는 어떤 곡이 좋더라” 이렇게 말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작곡가나 곡을 아는 것보다도 그 곡을 누가 더 풍부하고 섬세하게 해석해 뛰어나게 연주하느냐를 아는 것, 그것이 향유자의 수준을 보여준다는 것도. 그때는 문화적 밑천이 드러난 것이 살짝 부끄러워서 그리고 그렇게까지 음악을 들어야 하나 싶어서, 왠지 모를 반발심이 일었다.     

파블로 카잘스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좋았다면 안너 빌스마의 버전을 들어보고, 조성진의 쇼팽 발라드가 뭉클했다면 라파우 블레하츠의 연주도 한번 찾아보는 것에 그리 인색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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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가는 연주회마저 매번 박수치는 타이밍을 몰라 곁눈질하는 그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이 싫어 발길이 더 뜸해지곤 했다. 박수는 일종의 호응인데 호응도 내 맘대로 못하는 관람이 뭐람? 안정과 쉼을 찾아온 곳에서까지 눈치를 봐야하나 싶었다. 

나중에 들어 알게 된 것이지만 협주곡은 대부분 3악장, 교향곡은 4악장으로 이뤄지고, 
전곡을 연주하는 공연장에서는 악장 사이에 박수는 보통 생략한다고 한다. 첫 악장은 대체로 빠른 템포로 시작하고, 두 번째 악장은 느리게, 그리고 마지막 악장은 약간 몰아가는 듯 빠르게 마무리한다는 것도. 클래식이 만만치 않은 건 여러 이유가 있어서겠지만 청중으로서 알아야 할 사전학습이 어느 정도 필요해서도 일 것이다. 
 
‘차별이 아니라 차이일 뿐’이라고 대중 장르의 공격을 받아내면서도 클래식은 연주자나 향유자에게 문화적 우월감을 은밀히 선사한다. 클래식에 대한 사랑은 취향에 있어 남과 다른 ‘티내기 전략’으로서도 유효하다. 다수가 아닌 소수라서, 그 소수성이 오히려 고급문화를 고수하게끔 한다. 

살펴보니, 클래식(classic)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귀족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클래식의 어원이 라틴어 ‘클라시쿠스(classicus)’인데 이는 로마 시대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부류, 즉 최고 계급을 일컫는다. ‘함대의 군단’을 의미하기도 하는 이 단어는 배를 만드는 데 거액을 기부할 정도의 재력과 권력을 가진 존재이기도 했다.

돈이 많고 명예를 귀히 여기는 사람들인 클라시쿠스, 거기서 파생해서 문화적으로 탁월하고 월등한 것들이 후대에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고 보면 클래식은 태생적으로 귀족적이고 소수의 문화였던 셈이다. 

한때 선택된 이들에게만 허용됐던 그 양질의 문화 콘텐츠가 이제는 큰 수고로움 없이도 접근이 가능해졌다.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다면 누구나 즐기고 가까이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클래식은 움푹 파인 홈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건너뛰고 피해 가고픈 홈. 그런데 이제 그 홈을 천천히 메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하루에 한두 시간씩은 클래식에 노출되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내심 마음을 먹어본다.

흘려들어도 무작정 틀어놓고 클래식이 만드는 분위기 속에 스스로를 놓아두어야겠다. 그러다 보면 콩나물시루에 고이지 못하고 속절없이 빠져나가지만 어느새 콩나물을 자라게 하는 한 바가지의 물처럼, 클래식에 대한 애호도 시나브로 커나가지 않을까. 머잖아 동료에게 이런 말을 먼저 건넬 수 있길 바라본다.

“대타 못 구해서 휴가 가기 힘들었지? 가서 편히 쉬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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