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의자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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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의자는 무엇입니까
[비필독도서 43] '오늘의 의자'
  • 오학준 SBS PD
  • 승인 2021.05.05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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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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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오학준 SBS PD] 공장 지붕, 혹은 톱날을 연상시키는 백색의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건물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 보면 한 의자를 만나게 된다. 앙상하고 차가운 금속의 뼈대, 그리고 그것들을 가로지르는 직물 시트로 이루어진 안락 의자.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다. 예술과 기술의 새로운 통합이라는 독일 바우하우스의 목표를 체현하는 사물이다.

몇 년 전 베를린에서 마주한 그 의자엔 새로운 소재, 새로운 기술, 새로운 사상과 시대가 교차하고 있었다. 단단한 강관, 그리고 그 강관을 구부릴 수 있는 기술, 대량생산에 용이하도록 구성된 부품들, 온 몸을 감싸는 대신 최소한의 부분만 직물로 지탱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장식 없이 기능만으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유 가운데 하나라도 없다면 이 작은 가구는 없었을 것이니까.

이지은의 <오늘의 의자>는 20세기 문제적 의자들 가운데 다섯 개를 골라 그 안에 담긴 사회문화적 맥락을 짚는다. 하나의 의자가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소재, 기술, 사상의 풍경을 그려낸다. 저자의 의자 선택 기준은 1차적으로는 신소재다. 오랫동안 의자의 재료였던 원목 대신에 합판, 금속, 플라스틱을 처음 사용했던 의자들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바실리 체어는 물론 포함되어 있다.

저자가 첫번째로 꼽은 미하엘 토네트의 14번 의자엔 산업혁명이 바꿔놓은 풍경이 얽혀있다. 원목과 합판을 휨 가공하여 프레임을 일체화한 토네트는 의자의 부품 숫자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덕분에 조립이 쉬워서 분해한 채로도 판매할 수 있었다. 의자는 이제 더 이상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유럽, 남미 어느 곳에서도 그의 의자를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설명할 수 없는 장식들이 없는 토네트의 의자가 인기를 얻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세계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재료의 본성과 용도에 충실한 것을 아름답다 말하는 시대였다. 의자에 따라다니던 권위가 사라지니 장식은 범죄가 되고, 대량생산에 용이한 재료들을 찾다 보니 기성 제품들을 활용하는 경우들이 등장했다.

자전거용 강관을 그대로 사용한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 합판을 가공해 결핵 환자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한 알바 알토의 파이미오 암체어, 찰스 임스가 전후 미국의 서민들을 위한 저가 가구로서 개발한 플라스틱 체어는 이렇게 하나로 묶인다. 저자가 짚은 의자들이 어떤 질문들을 던지고 있으며, 어떤 소재와 기술을 경유하는지 따라가보는 재미가 있다.

이지은의 '오늘의 의자'
이지은의 '오늘의 의자'

이 책에서 짚은 책들 말고도 문제적 의자들은 여럿 존재한다. 모더니즘의 경향에 반대하여, 독창적인 표현이자 대화 수단으로서 의자에 집중한 이들의 작품도 있다. 이것이 의자인지 혹은 장식품인지 알기 어려운 수준의 의자들을 보고 단지 작품과 작가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렸다는 비판도 있지만, 의자가 꼭 다른 가구의 부속품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

확실한 것은 당신이 집에 들여놓은 의자가 당신이 선호하는 경향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는 것뿐이다. 고리타분하지만, 나는 ‘모두를 위한 의자’를 선호한다. 파이미오 암체어에 담긴 배려심만큼, 캄파나 형제가 만든 파벨라 의자에 담긴 연대의 시선을 사랑한다. 자투리 나무 조각을 이어 만든 이 의자엔 조각난 국가, 빈부격차로 나뉘어진 브라질의 현실에 대한 대답이 들어있다. 

누구든 사랑하는 의자들의 목록을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모아둔 의자들의 목록에서 지워진 이름들을 찾아내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의자의 직물을 만든 이가 군터 슈퇼츨이라는 여성 마이스터라는 사실을 경유한다면 문제적 의자들에 담겨있는 문제의식을 더욱 다양한 방향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길잡이는 필요하겠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구를 휩쓰는 동안, 의자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집 안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의자를 골똘히 바라볼 틈도 생겨나고 있지 않나. 덩그러니 놓여 있는 의자들을 돌아보며, 의자를 사랑하는 이들의 책을 펼쳐들고, 자기가 사랑하는 의자들의 목록을 만들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당신, 왜 하필 저 의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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