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라이밍', 서늘한 임신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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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개봉한 애니매이션 '클라이밍', 임신에 대한 두려움 인상적인 작화에 담아

지난 16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클라이밍' 스틸컷.
지난 16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클라이밍' 스틸컷.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 <신지혜의 영화음악>] 세현은 꿈 속을 헤매다 눈을 떴다. 암벽 등반 선수인 세현은 3개월 전의 교통사고 이후 자기자신에게서 뭔가 모를 기묘함을 느낀다. 대회를 앞두고 긴장해서일까, 사고 이전의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일까, 늘 다정한 마음으로 세현을 우선으로 하지만 어딘가 불편해진 우인 때문일까.

세현은 눈을 뜬다. 3개월 전의 교통사고 이후 아직 휠체어에서 일어날 수 없다. 돌이키고 싶지만 돌이킬 수 없는 그 사고는 아직 세현을 암벽으로 돌려보내주지 않고 있고 뱃속의 아기와 세현은 우인 어머니의 크고 화려한 집에서 정성스러운 보호를 받고 있지만 어딘가 이상하고 불편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게다가 우인과는 연락이 닿질 않아 세현의 마음은 더욱 불안하다. 

나, 세현의 우주는 그렇게 분리되었다. 이 쪽의 세현은 교통사고의 기억을 딛고 암벽에 오른다. 치고 올라오는 후배 아인이 눈에 거슬리고 코치가 대회에 내보내 줄 것인가 하는 긴장과 걱정이 교차한다. 반복되는 꿈은 꿀 때마다 조금씩 다른 내용이 전개된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걸까.

다른 쪽의 세현은 점점 자신의 아기에게 집착하는 우인의 어머니가 공포스럽다. 휠체어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자신도 싫고 긴 출장에서 돌아올 기미 없이 연락 조차 없는 우인이 원망스럽다. 어머니와는 가끔 통화하는 같은데 바꿔달라고 하면 막 전화를 끊었다며 쉬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딱딱한 미소는 세현을 주눅 들게 한다. 

그러다가 나와 마주친다. 스마트폰을 통해서. 사고 당시의 폰이 왜 여기 있을까, 생각하던 차에 벨이 울리고 세현은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상대방이 자기자신임을 알게 된다. 이것은 현실일까 아니면 환상의 세계로 들어선 걸까.

그렇게 두 우주에 존재하는 나와 나, 세현과 세현은 한 번의 통화로 연결된다. 두 우주는 점점 더 벌어지지만 나와 나, 세현과 세현은 점점 더 서로에게 아니, 스스로에게 얽혀든다. 

김혜미 감독의 애니메이션 <클라이밍>. 강하고 진한 외곽선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굵은 선과 가는 몸은 단단하고 강인한 느낌을 주지만 그와 더불어 차갑고 건조하며 비현실적인 기묘함을 함께 던져 준다. 그것은 감독의 의도이다. 이런 의도는 창의적이고 강렬한 작품에 더없이 어울린다. 카툰 렌더링 방식이 애니메이션이지만 마치 실사영화의 공기를 구현해 낸 듯 세현의 암장과 우인 어머니의 집에 인상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반복되는 꿈의 확장, 그 확장에 말려 들어가는 세현의 내면, 두 우주의 분기점과 접점이 교차하면서 빚어내는 공포와 세현의 자각이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최근 들어 과학적인 이론과 가설을 토대로 한 평행우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 평행우주론이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지만 김혜미 감독의 <클라이밍>은 독특한 분위기와 내용으로 자기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애니메이션 영화 '클라이밍' 스틸컷.
애니메이션 영화 '클라이밍' 스틸컷.

<클라이밍>은 평행우주 아래 또 하나의 층을 깔고 있다. 감독 자신이 임신했을 때 느꼈던 경험을 토대로 클라이밍과 임신, 로프와 탯줄을 대립항으로 놓아 현실과 비현실을 뒤틀어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클라이밍>은 두 가지 오브제에 주목하게 된다. 하나는 거울이다. 거울은 공포영화나 심리 스릴러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실제로 영화문법에서는 다면거울이나 깨진 거울, 거울에 비친 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주인공의 상황이나 심리상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보여주는데, 공포영화 속에서 거울을 보는 주인공의 모습은 언제나 긴장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또 하나는 물이다. 정원의 분수, 머리를 감는 장면 등에서 물은 어딘가 불온하게 느껴진다.  무언가를 씻어내는 역할을 하는 물은 실제로 인간의 심리적인 부분에 관여한다. 손을 씻는다거나 몸을 씻을 때 실제로 긴장이나 불안, 죄책감이 완화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손을 씻었다’는 표현이 그 일을 그만 두었다는 것의 완곡한 표현임을 떠올린다면 고개가 끄덕여 질 것이다. 

게다가 동심원처럼 반복되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세현의 꿈은 자신이 속한 이 우주가, 우주에 속한 나라는 주체가 현실성을 얼마나 띠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이 세계를 어떻게 규정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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