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살', 멀티버스 필요 없는 무한 환생 세계
상태바
'불가살', 멀티버스 필요 없는 무한 환생 세계
한 시대 비극에 머물렀을 '불가살', 불교적 세계관으로 확장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2.01.07 15: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tvN 토일드라마 '불가살'
tvN 토일드라마 '불가살'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최근 개봉해 펜데믹 이후 최고의 흥행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이른바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내세우고 있다. 마치 평행우주 이론처럼 저 편에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내가 있다는 세계관을 차용함으로써,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각기 다른 우주에 존재하는 다른 스파이더맨, 악당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일종의 ‘동창회’가 가능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열광해온 마니아들이라면,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저마다 각각의 우주(사실은 다른 작품)에서 겪었던 트라우마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그 과정 자체가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왔을 수 있다. 여러모로 이 영화의 성공을 통해 슈퍼히어로 콘텐츠들은 이제 본격적인 멀티버스의 시대를 열 것이라고 예견되고 있다. 

멀티버스 같은 독특한 세계관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이야기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시공을 훌쩍 뛰어넘는 서사를 가능케 해주는 세계관이 있다. 바로 죽음 후에 다시 환생을 거듭한다는 불교적 세계관이다. 전생에서 어떤 인연을 쌓는가에 따라 후생에서의 인연이 선연(善緣)이 될지 악연(惡緣)이 될지가 결정된다는 이 세계관을 가져오면 시공간의 제약에 묶여 있는 이야기를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 

tvN 토일드라마 <불가살>은 바로 이 불교적 세계관을 가져와 무려 600년에 걸쳐 인연으로 얽힌 이들의 치열한 복수극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고려말 귀물 잡는 장수였던 단활(이진욱)은 불가살인 민상운(권나라)에게 혼을 빼앗김으로써 죽지도 죽일 수도 없는 존재 불가살이 된다. 대신 혼을 빼앗아 인간이 된 민상운은 단활의 칼에 죽음을 맞이한 후 환생을 거듭한다.

민상운에 의해 아내인 단솔(공승연)과 아이까지 모두 잃은 불가살 단활은 복수를 꿈꾸며 민상운을 찾아다닌다. 그를 죽여 자신의 혼을 되찾고, 그를 불가살로 만들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우물 속에 빠뜨리려 한다. 하지만 600년 만에 드디어 찾아낸 민상운을 죽이려는 순간 과거 단활의 아내였던 단솔이 환생한 민시호가 등장한다. 단솔은 다름 아닌 민상운의 동생으로 환생한 것. 여기에 또 다른 불가살인 옥을태(이준)가 등장하면서 이 모든 비극에 그가 관련되어 있을 거라는 의구심을 만든다. 

tvN 토일드라마 '불가살'
tvN 토일드라마 '불가살'

불교적 세계관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불가살>은 단순한 한 시대의 비극에 머물렀을 이야기다. 하지만 선연과 악연에 의해 환생하는 불교적 세계관이 더해지면서, 전생의 관계로 빚어지는 후생의 관계라는 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능해졌다. 이 드라마를 더욱 쫄깃하게 만드는 건 600년 전 단활이 제거했던 귀물들이 계속 환생해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는 괴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단활의 혼을 가져가버린 민상운에게 몰려 드는 귀물들을 단활은 자신의 복수를 위해 지켜내야 하는 아이러니한 위치에 서게 됐다. 앙상하게 끝날 수 있는 이야기가 환생이라는 설정을 가능하게 하는 세계관을 가져와 무한히 이어질 수 있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러한 불교적 세계관은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라는 역시 시대를 훌쩍 뛰어넘는 멜로판타지에서도 활용된 바 있다. 김신(공유)은 전생에 무신이었지만 간신 박중헌(김병철)의 농간으로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김신은 도깨비로 환생하고 박중헌은 귀신으로 수백 년을 떠돈다. 또 전생에 왕은 저승사자(이동욱)로 환생하고, 도깨비 신부 지은탁(김고은) 역시 환생한 인물이다. 전생의 인연이 만들어낸 후생이라는 환생 개념은 동양인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세계관으로서, <스파이더맨> 같은 슈퍼히어로물이 열고 있는 멀티버스만큼 다양한 스토리들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가 아닐까 싶다. 

<불가살>이 본격적으로 차용하고 있는 불교적 세계관이 의미 있게 여겨지는 건 최근 들어 K드라마라고 불릴 정도로 위상을 갖게 된 우리 드라마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확실한 로컬 색깔을 더할 수 있는 괜찮은 장치가 아닐까 싶어서다. 사극과 현대극이 넘나들 수 있는 그 거대한 세계관에, 특유의 삶과 우주를 바라보는 철학적 시선들까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또 다른 K콘텐츠의 상상력이 확장되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