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왕', 폭력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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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 폭력의 딜레마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 돼지와 개의 삶을 누가 구분했나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22.04.12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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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티빙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우리가 힘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착하게 살면 될까? 아니야. 힘을 가지려면 우린 악해져야 돼. 계속 병신처럼 살지 않으려면 괴물이 돼야 돼. 알겠냐?”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에서 철이는 학교폭력에 내몰려 매일 같이 괴롭힘을 당해온 황경민과 정종석에게 칼을 들이밀며 그렇게 말한다. 그는 살을 내주는 것으로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것도 모른 채 살아가는 돼지의 삶과, 그저 태생적으로 사랑받는 개의 삶이 다르다고 하며, 황경민과 정종석이 돼지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칼을 쥔 괴물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 악과 폭력을 동원해야만 태생적으로 계급이 나눠지는 현실을 넘어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절망의 끝에 내몰려 살인까지 저지른 황경민이 정종석을 찾아와 학창시절 있었던 일들을 회고하고, 그 때 그들 앞에 나타났던 철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2011년에 제작된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지만, 만일 이대로 드라마화되었다면 성공 가능성을 말하기가 어려운 작품이다. 사회성 가득한 문제작이지만 드라마의 시리즈로는 너무 동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상호 감독은 드라마 리메이크에 참여한 탁재영 작가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을 찾아낸다. 학창시절 학교폭력의 스토리에 집중되어 있는 애니메이션과 달리, 드라마에서는 그 때 폭력을 당했던 황경민과 정종석의 현재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자는 거였다. 아이디어는 복수극이었다. 사업이 망하고 극한에 몰린 황경민(김동욱)이 학창시절 자신에게 폭력을 가했던 이들을 하나하나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하는 연쇄살인이 복수극의 서사로 더해졌다. 철이가 말했던 것처럼 칼을 들고 스스로 괴물이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복수극은 장르적으로만 보면 그 자체로 카타르시스를 주는 서사다. 심지어 성추행까지 당했던 황경민의 끔찍했던 학창시절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피를 끓게 만든다. 인간이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폭력들이 저질러지고, 그걸 알고 있는 선생님조차 폭력을 눈감아준다.

최근 들어 거의 대부분의 범죄 스릴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학교폭력이라는 사실은 이 소재가 얼마나 충격적이며 시청자들이 주목하는 문제인가를 잘 말해준다. 그래서 황경민이 강민을 따르던 무리 중 한 명인 안정희(최광제)를 마취제로 쓰러지게 한 후, 벽에 묶어놓고 잔인하게 칼로 난자해 결국 성기를 잘라 죽이는 광경은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하지만 묘한 폭력의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저런 놈들은 저렇게 죽어도 싸. 그런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 포스터.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 포스터.

하지만 폭력은 이유가 무엇이든 정당화될 수 없다. 특히 드라마가 제아무리 복수극의 카타르시스를 준다고 해도, 가해자의 감정을 따라가며 그 시선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을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담는 건 그 자체로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돼지의 왕>은 리메이크에 황경민의 복수극 서사를 넣으면서 동시에 정종석(김성규)을 강력계 형사로 설정해 균형을 잡는다. 정종석은 끔찍한 살인을 벌이는 연쇄살인범 황경민을 추적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왜 그런 일을 벌이는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감정적 딜레마에 봉착한다. 정종석을 형사로 세움으로써 드라마는 황경민의 시선이 아니라 그를 추적하는 정종석의 딜레마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 

<돼지의 왕>이 보여주는 폭력의 딜레마는 우리 정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철이가 황경민과 정종석에게 “병신처럼 살지 않으려면 괴물이 돼야 한다”는 그 근거로서 돼지와 개로 분류하고 갈라치기 하는 방식을 쓴 부분이 그렇다.

지난 대선부터 가장 위태롭게 봤던 지점이 표를 얻고 정치적 힘을 갖기 위해 성별을 가르고 나아가 장애와 비장애를 나눴던 갈라치기 정치가 아닌가. 주먹과 칼을 휘두르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정치인의 말 역시 칼이 되기도 한다. <돼지의 왕>이 보여주는 폭력의 딜레마는, 마치 복수극 서사처럼 대선을 기점으로 치고받는 우리 정치에도 생각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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