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실존주의 드라마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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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수의 방송 인문학 ⑤] JTBC 나의 해방일지‘

<오징어게임>의 성공으로 한국 영상시장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콘텐츠 시장은 누가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킬러콘텐츠를 만드느냐에 따라 '빅 머니'가 결정되는 게임장이다. 독창적인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창의적인 콘텐츠를 분석하는 작업도 의미가 적지 않다. 방송 콘텐츠 전문가인 홍경수 아주대 교수가 2~3주에 한 번 꼴로 인문학적 관점으로 콘텐츠를 분석·비평한다. -편집자 주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PD저널=홍경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서울에 일터가 있지만, 그곳에 거주하지 못하고 경기도 산포에서 통근하는 세 남매의 초상을 담은 <나의 해방일지> 방송이 끝났다. 유튜브에는 명장면을 분석하거나 다소 난해한 영상을 해설하는 클립이 가득하다. 해석할 여지가 많은 내용이어서인지 드라마가 끝났음에도 논의할 부분은 풍요롭다.     

쳇바퀴 같이 반복하는 실존

박해영 작가가 쓴 드라마여서 기대가 컸지만, 1화 2.9%로 시작해서 9화까지 3%대의 낮은 시청률을 보였다(닐슨코리아). 다소 어두운 이야기와 느린 전개에 답답함을 호소한 시청자들이 필자 주변에 꽤 있었다. 경기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였지만, 수원에 살고 있는 대학생들 중 상당수가 시청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대중성을 포기하고서라도 무언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제작자의 강렬한 열망이 느껴졌다. 그것은 실존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실존이란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 채 이 세계에 유기되어 있는 인간’을 가리키며, ‘자기의 존재의미를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창조해내도록 운명 지어져 있는 인간’을 지칭한다(하코이시 마사유키). 

거칠고 야만적인 세태에 마냥 휘둘리는 등장인물들은 제각각 다른 이유로 실존적 고민에 빠져있다. 요령 없는 가부장적 아버지(천호진)는 한 치의 빈틈없는 성실함으로 하루하루를 싱크대를 만들며 시곗바늘처럼 살아간다. 싱크대 공장과 함께 농사일을 하며 다섯 가족의 식사와 일꾼을 뒷바라지하는 엄마 곽혜숙(이경성)은 평생 죽도록 일하다 세상을 떠났다. 큰딸 염기정(이엘)은 여론조사 회사에서 일하지만, 제대로 된 사랑을 못하고 허송세월한 삶이 안타까워 아무나 한 번만 뜨겁게 사랑하고 싶어 한다.

둘째 염찬희(이민기)는 편의점 본사에서 점주들을 상대하는 말단 직원. 또래들 욕망에 끌려 자동차와 여자를 갈구하다 목표를 잃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막내 염미정(김지원)은 카드회사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지만, 상사로부터 배반당하고 허방 딛듯 살아간다. 그녀에겐 모든 관계가 노동이고,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이며, 아무도 좋아해주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형제들은 서울에 거처를 얻지 못하고 1시간 30분은 족히 걸릴 출근을 반복한다. 여기에 갑작스럽게 외부자 구씨(손석구)가 끼어든다. 호스트바 관리사장으로 일하다 산포로 숨어들어온 구씨는 말없이 일하고, 밥 먹고, 밤에는 소주를 마신다. 세상의 모든 고뇌를 짊어진 듯한 생활. 

드라마는 실존적 반복을 탁월하게 영상화했는데, 드라마의 주된 장면은 가족들이 함께 아무 말 없이 밥을 먹고, 출근하고, 일하다, 술 먹고, 퇴근하는 일이다. 특히, 퇴근길에 염미정과 구씨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다가 집에 다 올 때쯤 서로 갈라지는 모습이 여러 차례 담겼다. 이러한 반복 장면의 과다는 ‘극적 사건의 발생’을 기대하는 시청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길 기대하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지루한 삶을 잘 표현했다. 

카뮈는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총을 쏘기 직전의 지루하고 나른함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천천히 바위들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쏟아지는 태양의 열기에 이마가 팽창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태양의 엄청난 숨결을 얼굴에 느낄 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었고, 바지 주머니 속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태양과 태양이 쏟아붓는 그 캄캄한 취기를 이겨내려고 전신을 긴장시켰다.”(김화영 역, <이방인> 중) <나의 해방일지>는 <이방인>을 연상케 했다.  

지난달 29일 종영한 JTBC '나의 해방일지'
지난달 29일 종영한 JTBC '나의 해방일지'

피투된 존재의 기투, 결단

드라마의 명장면 중 하나는 4화에서 구씨가 염씨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도랑을 온 힘을 다해 뛰어넘는 장면일 것이다. 끝없이 반복될 것 같았던 삶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향해 도약한 장면은 기투(企投, Entwurf, Projection)라는 개념을 잘 보여주었다. 기투란 이 세상에 던져진 현존재를 틀 짓는 구조로, 우리는 기투라는 존재 양식 속으로 던져져 있다(이선일).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 기투할 뿐 아니라, 삶의 수단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기투한다.

<철학도해사전>을 쓴 페터 쿤츠만 등은 기투를 ‘자신을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내던지며,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행위’로 설명한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쓴 에릭 와이너가 가장 좋아하는 실존주의 용어가 기투이며, 이것은 일상의 환경을 초월하게 해주고 자기 자신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종합하면, 이 세계에 내던져져 있다는 측면에서 인간은 피투된(던져진) 존재이며, 타자와의 소통 속에서 자기의 있어야만 할 인생을 지향하여 기투한다(던진다)는 측면에서 실존은 결단해야 하는 존재다. 구씨가 바람에 날아간 미정의 모자를 가져다주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해 뛰어넘기를 선보인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자기 자신을 내던지며, 자신을 확인한’ 행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기투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추앙이라는 단어다.

JTBC '나의 해방일지'
JTBC '나의 해방일지'

결단의 방법, 추앙과 환대

드라마가 남긴 최고의 단어는 추앙이다. 드라마에서 이 단어가 등장하는 상황은 뜬금없어 보인다. “왜 매일 술 마셔요?.... 할 일 줘요?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나는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당신은 어떤 일이든 해야 돼요.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뜯어놓고 보면 궤변처럼 들리는 대사다. 당신은 할 일 없고, 나는 채워져야 하니 사랑보다 더 높은 개념인 추앙을 하라니 무슨 4차원적인 발화인가? 하지만, 과감하게 선택한 고답적이고 문어체적인 ‘추앙’이라는 단어는 드라마에 대한 팬덤을 만드는 계기가 된 듯하다.

한 학생은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주는 오묘함과 충격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고, 이로 인해 이 드라마 자체를 오래 기억하는 사람 역시 많을 것 같다’(김지현)고 밝혔다. 또 한 학생은 추앙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감을 털어놓았다 “‘사랑’이라는 말은 오염되었다. 더 이상 '사랑'이라는 단어는 진정한 사랑을 담지 못한다. ‘사랑’이라는 말은 물론 좋은 말이지만, 어느샌가 우리는 그냥 입버릇처럼 말한다. 자신의 좋아하는 감정과 애인에 대해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을 그저 표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가장 흔한 단어인  ‘사랑’으로 책임회피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연애에 있어서 직무유기다. 작가는 사랑의 복권을 지향하며 추앙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 같다.’(조재원)

결말에 제시된 환대라는 개념 역시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문어적·철학적 단어다. 앞서 제시된 추앙만큼 생경하다. “형, 환대할게, 환대할 거니까 살아서보자”. 데리다는 환대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관용을 가져온다. 관용이란 제한된 조건부적 환대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 레비나스가 제안한 환대는 타자를 향한 무조건적 수용을 지칭한다. 환대란 결국, 주체의 조건과 상황과 가능성의 영역에서 타자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낯선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김애령).

어디서 굴러왔는지 종잡을 수 없고, 이름도 직업도 알지 못하는 철저한 타자를 상대로 ‘추앙’을 제안하며 소통하는 미정의 태도는 본인이 사회 어디서도 받지 못했던 환대를 실천하는 그것에 다름 아니다. 

<나의 해방일지>와 동시에 방송을 시작한 <우리들의 블루스>는 장애인 연기자를 등장시키며 타자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2022년 상반기에 동시에 방송된 주말드라마가 동시에 ‘환대’라는 시대적 과제를 제안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루카치를 인용한다면, 드라마는 그리스의 서사시, 비극, 철학에 이어 근대의 소설의 권좌를 넘겨받아 현대의 지배적 장르가 되었다. 우리는 운 좋게 그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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