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메시지’로 공표된 영부인 입장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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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클럽 통한 사진 공개 이어 김건희 여사 지인 문자메시지까지 '단독보도'
무너진 대통령실 공보 시스템, 언론도 공범

대통령실이 3일 공개한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순방 사진.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30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에서 공군 1호기로 향하는 모습. (사진=대통령실 제공)©뉴시스
대통령실이 3일 공개한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순방 사진.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30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에서 공군 1호기로 향하는 모습. (사진=대통령실 제공)©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취임 후 2개월 내내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은 ‘권력 사유화’ 논란에 허덕이고 있다. 대통령 부부가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에게 ‘나토 순방 행사 기획’ 등 중요한 일을 맡기고 대통령실 직원으로 채용까지 했다는 논란들이다. ‘비선’에 트라우마를 가진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까지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는데 마땅한 관심을 못 받는 부분이 있다. 바로 대통령실 공보 시스템의 파괴다.

사실 이 지면을 통해 이미 한 차례 다룬 바 있다. 대통령실이 비공개 일정 사진을 김건희 여사 팬클럽에 흘리고 ‘대통령의 5·18민주화운동 기념사 자필 메모’를 특정 언론에 흘리는 등 홍보대행사 수준의 언론관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번엔 ‘영부인 공식 입장’이 ‘문자메시지 전언’ 보도로 공표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12일 <세계일보>의 '단독보도' <김건희, ‘팬클럽 회장’ 강신업 정치적 발언에 “제 의사와 무관”>은 ‘본지 취재 종합’이라는 ‘불명의 출처’를 통해 ‘김건희 여사가 김건희 팬클럽 회장 강신업 변호사의 정치적 견해가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지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고 전했다.

영부인은 부속실을 통해 밝혀도 될 공식 입장을 팬클럽 회장에게 사진 흘리듯 ‘문자메시지’로 한 번 걸러서 언론에 흘렸다. 언론은 이걸 ‘문자메시지 전언 보도’라는 전례 없이 기막힌 형태로 공표했다. 권력기관의 왜곡된 공보 시스템이 무너진 저널리즘과 맞물린 이 악순환은 현 정권에서 유독 적나라하게 반복되고 있다. 

<세계일보> 보도가 나온 직후, 내용과 제목이 비슷한 받아쓰기 보도들이 줄을 이었다. 포털 네이버 기준, 12일 하루에만 <김건희 "팬클럽 회장과 전혀 교류 안해…제 의사와 무관">과 같은 보도가 50건이나 쏟아졌다. 내용은 ‘짧고 명료한 받아쓰기’로서 <세계일보>와 동일한데, 그 모양새가 보도자료 받아쓰기와 다를 게 없다. 보도자료를 뿌린 게 기관이나 대통령실이 아닌, ‘영부인이 보도자료(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세계일보>가 인용한 지인’일 따름이다.

지난 12일 세계일보의 단독보도 이후 다수 언론이 받아쓴 '김건희 문자메시지 전언보도'
지난 12일 세계일보의 단독보도 이후 다수 언론이 받아쓴 '김건희 문자메시지 전언보도'

또 하나 흥미로운 건 ‘강신업 변호사와 무관하다’는 영부인 입장을 공표해준 언론들이 그 직전까지 강신업 변호사를 적극 인용했다는 사실이다. 6월 10일부터 7월 11일까지 1달 간 강신업 변호사 언급 보도가 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기준으로만 146건, 포털 네이버에서는 수백 건이다. “이준석 구속하라” “박지원은 천하의 요물” 등 정치 평론(?)부터 “김건희는 다이아몬드” “윤석열은 소금” 등 민망한 찬양까지, 급기야 ‘그와 무관하다’는 영부인 입장이 나온 12일 이후에도 “개가 짖어도 팬클럽 해체는 없다” 등의 ‘의견’이 인용 보도됐다. 대통령실 비공개 사진을 ‘단독 입수’하자 언론은 김건희 팬클럽을 주목하게 되고 덩달아 그 회장의 발언까지 무분별하게 공론장에 올려준 것이다. 

체계 파괴의 여지를 준 언론의 책임이 더 두드러지는 사례들도 많다. <중앙일보>는 지난 7일 ‘김건희 패션정보 흘린 건 친오빠’라고 폭로했는데 정작 <중앙일보>도 ‘5만원 치마, 32만원 발찌 패션’을 보도한 당사자였다. 7월 9일 터져나온 ‘김건희 명품매장 목격담’에 대통령실이 “허위사실”이라 격분하자 주요 매체가 일제히 ‘목격담은 허위사실’이라 보도했는데 그 근거는 목격담을 직접 검증 취재한 게 아니라 그냥 대통령실 입장을 인용한 것이었다. 심지어 대통령실 입장을 ‘팩트체크’라고 보도한 사례도 있다.(한국경제 <"김건희, 경호원 데리고 버버리서 3000만원 쇼핑" 팩트체크해 보니>7.12) 이쯤되면 무너진 대통령실 공보 체계의 공범은 언론이다.

 그래도 답은 언론에 있다. 권력기관을 바꾸는 건 국민을 등 뒤에 둔 언론이다. 대통령을 다시 ‘도어스테핑’으로 끌고 온 것도 결국은 여론 눈치를 보게 만든 언론이다. 다만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다시 제자리로 온 대통령에 ‘오~’ 탄성만 내지를 게 아니라 조목조목 따져야 한다. 지지율만 경고할 게 아니라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창구로서 언론은 대하는 태도와 시스템이 망가졌다고, 따끔하게 경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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