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취임 후 2개월 내내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은 ‘권력 사유화’ 논란에 허덕이고 있다. 대통령 부부가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에게 ‘나토 순방 행사 기획’ 등 중요한 일을 맡기고 대통령실 직원으로 채용까지 했다는 논란들이다. ‘비선’에 트라우마를 가진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까지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는데 마땅한 관심을 못 받는 부분이 있다. 바로 대통령실 공보 시스템의 파괴다.
사실 이 지면을 통해 이미 한 차례 다룬 바 있다. 대통령실이 비공개 일정 사진을 김건희 여사 팬클럽에 흘리고 ‘대통령의 5·18민주화운동 기념사 자필 메모’를 특정 언론에 흘리는 등 홍보대행사 수준의 언론관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번엔 ‘영부인 공식 입장’이 ‘문자메시지 전언’ 보도로 공표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12일 <세계일보>의 '단독보도' <김건희, ‘팬클럽 회장’ 강신업 정치적 발언에 “제 의사와 무관”>은 ‘본지 취재 종합’이라는 ‘불명의 출처’를 통해 ‘김건희 여사가 김건희 팬클럽 회장 강신업 변호사의 정치적 견해가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지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고 전했다.
영부인은 부속실을 통해 밝혀도 될 공식 입장을 팬클럽 회장에게 사진 흘리듯 ‘문자메시지’로 한 번 걸러서 언론에 흘렸다. 언론은 이걸 ‘문자메시지 전언 보도’라는 전례 없이 기막힌 형태로 공표했다. 권력기관의 왜곡된 공보 시스템이 무너진 저널리즘과 맞물린 이 악순환은 현 정권에서 유독 적나라하게 반복되고 있다.
<세계일보> 보도가 나온 직후, 내용과 제목이 비슷한 받아쓰기 보도들이 줄을 이었다. 포털 네이버 기준, 12일 하루에만 <김건희 "팬클럽 회장과 전혀 교류 안해…제 의사와 무관">과 같은 보도가 50건이나 쏟아졌다. 내용은 ‘짧고 명료한 받아쓰기’로서 <세계일보>와 동일한데, 그 모양새가 보도자료 받아쓰기와 다를 게 없다. 보도자료를 뿌린 게 기관이나 대통령실이 아닌, ‘영부인이 보도자료(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세계일보>가 인용한 지인’일 따름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건 ‘강신업 변호사와 무관하다’는 영부인 입장을 공표해준 언론들이 그 직전까지 강신업 변호사를 적극 인용했다는 사실이다. 6월 10일부터 7월 11일까지 1달 간 강신업 변호사 언급 보도가 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기준으로만 146건, 포털 네이버에서는 수백 건이다. “이준석 구속하라” “박지원은 천하의 요물” 등 정치 평론(?)부터 “김건희는 다이아몬드” “윤석열은 소금” 등 민망한 찬양까지, 급기야 ‘그와 무관하다’는 영부인 입장이 나온 12일 이후에도 “개가 짖어도 팬클럽 해체는 없다” 등의 ‘의견’이 인용 보도됐다. 대통령실 비공개 사진을 ‘단독 입수’하자 언론은 김건희 팬클럽을 주목하게 되고 덩달아 그 회장의 발언까지 무분별하게 공론장에 올려준 것이다.
체계 파괴의 여지를 준 언론의 책임이 더 두드러지는 사례들도 많다. <중앙일보>는 지난 7일 ‘김건희 패션정보 흘린 건 친오빠’라고 폭로했는데 정작 <중앙일보>도 ‘5만원 치마, 32만원 발찌 패션’을 보도한 당사자였다. 7월 9일 터져나온 ‘김건희 명품매장 목격담’에 대통령실이 “허위사실”이라 격분하자 주요 매체가 일제히 ‘목격담은 허위사실’이라 보도했는데 그 근거는 목격담을 직접 검증 취재한 게 아니라 그냥 대통령실 입장을 인용한 것이었다. 심지어 대통령실 입장을 ‘팩트체크’라고 보도한 사례도 있다.(한국경제 <"김건희, 경호원 데리고 버버리서 3000만원 쇼핑" 팩트체크해 보니>7.12) 이쯤되면 무너진 대통령실 공보 체계의 공범은 언론이다.
그래도 답은 언론에 있다. 권력기관을 바꾸는 건 국민을 등 뒤에 둔 언론이다. 대통령을 다시 ‘도어스테핑’으로 끌고 온 것도 결국은 여론 눈치를 보게 만든 언론이다. 다만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다시 제자리로 온 대통령에 ‘오~’ 탄성만 내지를 게 아니라 조목조목 따져야 한다. 지지율만 경고할 게 아니라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창구로서 언론은 대하는 태도와 시스템이 망가졌다고, 따끔하게 경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