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짜리 변호사’, 개연성 이긴 통쾌한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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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 판타지 캐릭터에 담긴 의미

SBS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
SBS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단돈 천원의 수임료를 받고 의뢰를 맡아주는 변호사. 과연 이런 변호사가 현실에 있을까. SBS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는 제목에 이 드라마가 지향하고 있는 것이 개연성이나 현실성이 아니라 서민 영웅 판타지라는 걸 담아놨다.

‘천원짜리’라고 수식어를 붙인 건 수백, 수천만 원의 수임료를 받고 전관예우까지 동원해 ‘유전무죄’를 실현해 보이기도 하는 현실 법 정의의 부조리를 꼬집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전유죄’인 서민들은 돈 없고 빽 없어서 죄가 없는데도 누명을 쓰고 심지어 수십 년을 교도소에 갇혀 지내다 나와 뒤늦게 진범이 잡혀 무죄라는 게 밝혀지기도 하는 안타까운 현실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천원짜리 변호사>는 대놓고 판타지를 이야기한다. 드라마를 소개하는 문구에서는 ‘통쾌한 변호 활극’이라는 표현을 썼다. 법정에서도 현실감 있는 변론 대결을 보여준다기보다는 ‘활극’에 가까운 시원한 판타지가 펼쳐질 거라는 귀띔이다. 

실제로 드라마 속 ‘천원짜리’ 변호사인 천지훈(남궁민)이 약자 의뢰인들을 위해 펼치는 법정 대결은 한마디로 기상천외하다. 예를 들어 취객을 돕다가 전과4범이라는 이유로 소매치기범으로 몰린 의뢰인을 변호하는 대목에서, 그가 그렇게 쉽게 들킬 리가 없는 프로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 법정에서 소매치기를 시연하는 장면이 그렇다. 이런 퍼포먼스(?)가 법정에서 허용될 리도 없고, 그것이 의뢰인에게 도움이 될 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천지훈의 이런 기상천외한 변호는 여지없이 먹힌다. 그래서 억울한 누명을 썼던 의뢰인은 무죄로 풀려나게 되고, 의뢰인의 딸이 받은 심장병 수술의 비용 또한 한 달 간 구금됐던 의뢰인이 형사보상금을 받아 처리하는 해피엔딩을 보여준다.

<천원짜리 변호사>가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 변호 과정의 개연성보다는 활극에 가까운 변호로 얻게 되는 사이다 결과다. 이것은 소송 내용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곤 하던 법정드라마와는 사뭇 다른 선택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성소수자나 자폐인, 외국인 근로자, 여성, 어린이는 물론이고 소외된 지역까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메시지를 일관되게 담았다. <소년심판> 경우에는 주로 촉법소년 범죄에 대한 사건들이 다뤄져 이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SBS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
SBS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

<천원짜리 변호사>는 이러한 소송 내용이 생각보다 중요하게 보이진 않는다. 첫 등장과 함께 천지훈 변호사가 의뢰를 맡은 빚 독촉에 시달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려는 의뢰인의 사건은 전형적인 고리대금업자를 소재로 다뤘다. 말도 안 되는 명목으로 이자를 붙여 빚 독촉을 하는 고리대금업자가 압수수색을 당하게 생겼고 그걸 막아주는 조건으로 역시 말도 안 되는 수임료를 청구해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천지훈 변호사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사건이 주는 메시지보다 천지훈이라는 서민 영웅 변호사의 사이다 활약이 강조되고 있는 것. 또 세 번째 사건으로 등장한 아파트 경비아저씨에게 갑질 하는 진상 주민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런 사건들이 사회적인 논란을 일으켰던 소재들인 건 맞지만 드라마는 현실의 시스템적인 문제를 개연성 있게 그리기보다는 이러한 빌런을 소환해 시원한 사이다를 전해주는 영웅의 활약상으로 그리고 있다. 

과거 법정드라마들은 법이 해결하지 못한 부조리한 정의의 문제들을 보다 현실적으로 재현해내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경향을 보이는 법정드라마도 여전히 있지만, 최근에는 법망 바깥으로 빠져나와 사이다 전개를 그려나가는 <천원짜리 변호사> 같은 법정드라마들도 등장하고 있고 이것이 여지없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시청자의 호응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어차피 드라마가 개연성을 부여해 애써 그려내는 정의의 승리가 더 이상 믿을 수 있는 현실이 아니라는 뜻은 아닐까. 드라마를 '사이다냐 고구마냐'로 양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드라마를 보는 동안만이라도 시원시원한 사이다를 맛보는 게 낫다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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