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돈과 서스펜스를 둘러싼 대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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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수의 방송인문학 ⑪]

<오징어게임>의 성공으로 한국 영상시장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콘텐츠 시장은 누가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킬러콘텐츠를 만드느냐에 따라 '빅 머니'가 결정되는 게임장이다. 독창적인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창의적인 콘텐츠를 분석하는 작업도 의미가 적지 않다. 방송 콘텐츠 전문가인 홍경수 아주대 교수가 2~3주에 한 번 꼴로 인문학적 관점으로 콘텐츠를 분석·비평한다. -편집자 주
tvN 금토드라마 '작은 아씨들' 포스터 이미지.
지난 9일 종영한 tvN 금토드라마 '작은 아씨들' 포스터 이미지.

[PD저널=홍경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OTT 드라마의 수요가 폭증하면서 드라마 제작에 영화와 드라마 인력이 구분 없이 투입되고 있다. 영화계와 방송계 인력이 함께 만들다 보니, 콘텐츠의 성격이 명료하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화학적 결합이 잘 된 경우에는 미장센이 뛰어나고 영상 연출이 독특한 영상이 만들어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성격이 모호해진다. 결국 개성이 뚜렷한 제작인력을 아우르는 과정이 필수적이라 하겠다.

tvN과 OTT에서 동시에 공개된 <작은 아씨들>은 박찬욱 감독과 함께 오래 작업해온 정서경 씨가 대본을 썼고, 방송사 출신 김희원 PD가 연출을 맡았다. 두 장르적 속성이 부딪치기 마련이다.

영화와 드라마는 어떤 점이 다를까? 영화는 비일상적인 장르이고, 드라마는 일상적인 장르다. 어쩌다 극장이라는 공간에 가서 보는 영화는 삶과 동떨어진 상상의 이야기와 세계관만으로도 완성될 수 있다. 90분에서 120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1화로 이야기를 완결하는 매체적 속성 때문일 수도 있다.

반면에 드라마는 시청자의 삶의 공간과 스토리 사이의 격차가 상당히 좁은 편이다. 시청자의 일상의 리듬에 드라마의 공개가 호흡을 맞추면서 삶과 스토리의 간극이 지나치게 멀어지면 어색해진다. 두 달 가량 지속적으로 방영되고 공개되는 편성 특성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드라마의 핵심은 플롯과 캐릭터의 개연성이다. 보는 사람의 인식과 감성 구조에 습윤되어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스토리텔링, 그것이 드라마다.   

tvN 금토드라마 '작은 아씨들'
tvN 금토드라마 '작은 아씨들'

스토리 전개의 빈약한 개연성

제작진은 기획의도에서 “젊은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듣길 원할까? 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돈에 대한 우리들의 욕망은 어디에서 왔을까? 오늘도 우리는 돈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꿈을 꾸었나? 그런 것들을 쓰려고 했다...... 자매들의 작고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들 아래에 우리 사회의 거대하고 어두운 이야기가 동시에 흐르게 하고 싶었다”라고 썼다.

종합하면, 한국 사회의 돈에 대한 열망과 그 근원과 구조를 드러내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처음부터 종말까지 돈에 대한 욕망은 물론이고, 근원과 구조에 대해서 제대로 파헤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돈에 대한 욕망은 회사 조직의 가장 낮은 지위를 차지하는 경리를 통해, 수학여행갈 돈을 훔치고 도망간 엄마를 통해, 그리고 통장에 20억이 들어오고, 700억 원이 들어왔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인주를 통해 묘사된다.

이러한 돈에 대한 욕망에 과도한 집착은 마지막 회에 ‘우주 미아’가 된 인혜가 100억 300억씩 송금한 문자메시지를 받는 언니들의 모습을 통해, 그리고 고모할머니가 남긴 강변 아파트에 들어가 ‘이곳이 영혼이 쉴 곳’이라고 안도하는 인주를 통해 드러난다.

하지만, 이러한 욕망들은 ‘전개’라는 과정이 누락된 채 언표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함으로써 욕망의 조각들만 연결한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한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생겨났다가 흔들리기도 하고, 억압되기도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단단하게 유지되는 지를 ‘전개’라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스토리의 개연성은 허약해 보이기 십상이다.

돈의 근원과 구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전에서 죽을 뻔하다가 난초를 발견하고 귀국한 원기선 장군과 정란회가 부동산으로 치부했다는 펑퍼짐한 암시는 구체적이지 못하다. 사람이 죽을 때마다 놓이는 마취성 난초 잎은 단순한 상징일 뿐인가?, 수사의 단서로 잡을 만한 물증을 남겼는데도, 왜 경찰은 수사를 하지 않고 프리랜서 기자에게 모든 걸 떠넘겼나?

마찬가지로 세 자매의 가정은 어쩌다 그토록 혐오할 만한 수준의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충분하지 않다. 수십 명의 사람들을 암살하고도 서울시장 후보로 뽑히고, 정란회 구성원들이 하나둘 교통사고 등으로 죽음을 당하고, 염산 샤워가 등장하는 등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이 어느 시기인지 종잡을 수 없는 사건들도 반복된다. 

tvN 금토드라마 '작은 아씨들'
tvN 금토드라마 '작은 아씨들'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의 개연성 

드라마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신공을 보이다가 결국 캐릭터의 성격을 뒤흔들었다. 박재상은 아내를 닫힌 방에 가두고 억압한 악역으로 보이다가, 아내의 명령에 복종하고 결국 목숨까지 버리는 연약한 남자임이 드러난다. 최도일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매회 알쏭달쏭한 태도를 보이다가 결국 인주에게 호감을 드러내며 법원에 등장해 변론한다.

하지만, 돈세탁의 달인이자, 개인신상자료의 세탁을 통해 사람을 문서상으로 죽이고 살리는 악역은 만능 치트키나 키다리 아저씨처럼 어디든 등장하고, 교통사고에서도 살아남는다. 

가난 때문에 이혼한 오인주가 갑자기 주어진 수십억 수백억의 돈에 당황하고, 고민하고, 결국 다짐하는 과정이 누락된 채, 갑자기 돈의 의미를 득도했다는 듯이 “판사님, 살아남은 저를 처벌해주시고 애초에 검은 돈을 만든 이들을 처벌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방송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일하는 오인경은 호감을 품은 남친 조력자의 도움으로 사건을 고발하는 과정도 현실감이 크지 않다. 프리랜서 기자가 HTN 방송사에서 생방송으로 거대한 권력자의 비리를 방송하도록 내버려 둘 만큼 원령가의 힘은 미미했을까? 많은 것이 뒤틀린 드라마 속에서 유독 언론만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설정이야말로 ‘돈이 중심이 된 세계’에서 있기 어려운 일 아닐까?   

세 자매 사이의 핵심 정서인 우애의 묘사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세 자매의 이야기는 각각 따로 노는 느낌을 풍긴다. 세 자매는 수학여행을 보내기 위해 언니들이 돈을 전달하는 애틋함에서 신변이 위험해진 언니 동생을 염려하는 모습, 동생에게 거액의 돈을 챙겨달라는 인주의 부탁 등에서 우애가 드러나기는 한다.

하지만 이들의 우애를 묶어내는 감정적 유대 혹은 유착이 표현되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세 자매의 세 줄기의 이야기들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심지어 죽은 것으로 표현됐던 진화영마저 극 후반에 ‘점찍고 나타난 듯’ 살아 돌아왔다.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이런 식으로 하기로 했으니, 그리 아시라’고 통고한 뒤에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그럴듯함이 사라진 캐릭터가 매력을 가질 리도 없고, 미움도 얻기 어렵다. 그저 작가가 만든 캐릭터들이 마치 ‘인형처럼’ 움직이는 것을 하염없이 지켜보아야 할뿐. 제작진들 역시 허수아비 같은 캐릭터들을 꾸역꾸역 끌고가느라 무척 힘들어보였다.  

지난 9일 종영한 tvN '작은 아씨들'
지난 9일 종영한 tvN '작은 아씨들'

서스펜스 빛깔을 띤 대소동 

<작은 아씨들>은 서스펜스라는 목표를 향해 출연진들이 돈을 들고 뛰어다니다가 죽이고 죽고 버성기는 대소동극처럼 보인다. 엎치락 뒤치락거리며 반전의 반전이 반복되는 소동극. 세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페투루치오는 말괄량이 카트리나를 길들이기 위해, 정반대로 말하고 심지어 미친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말괄량이의 기를 꺾기 위해 여러 소동을 펼친다.

이 시대의 가장 큰 화두가 돈이라며, 700억 원을 미끼로 던지고,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고 믿는 대중들에게 한강변 아파트가 ‘내 영혼이 살 집이고, 이 집이 나를 받아줬다고 느끼는 순간 모든 것이 괜찮아졌’으며, 문자로 100억, 300억 원 입금됐다는 소동과도 같은 일화들을 통해 돈이 삶의 거의 전부라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하나?

“영화건 드라마건 보는 사람이 스토리와 스토리텔링으로부터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방해받지 않는 꿈의 체험이다. 만약 스토리가 보는 사람과 스토리의 세계, 그리고 캐릭터를 하나로 묶어줄 수만 있다면 자신들이 얻고 싶은 것을 얻은 것이다(시나리오 마스터, 52쪽).” 돈과 서스펜스를 둘러싼 소동이 적어도 나에게는 방해받지 않는 꿈의 체험을 주었는지 심대한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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