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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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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박재철 CBS PD] 어머니가 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거동이 불편할 정도라 근심이 적잖았다. 예전, 병실과 사무실을 분주히 오가던 몇몇 선배의 모습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곁에서 온전히 돌봐야 하는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인내심은 동짓날 햇살마냥 짧아질듯 싶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어머니와 함께하는 기회가 잦을수록 그간 안 보이던 것들을 하나둘 확인하게 됐다. 

식성이며 습관, 기호와 기질 등이 평소보다 훨씬 더 또렷이 다가왔다. 불행을 맞이하는 당신의 태도 역시 다소 생경했는데, 수술 소식에도 남의 일인 양 “며칠이나 있어야 한다디?”하시니 그 무덤덤함 때문인지 오히려 신선하기까지 했다. 한번은 병실에서 TV 뉴스를 보다 문득 물으신다. 아마도 아들이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해서일 것이다. 

“지금 나라꼴이 제대로 인 거 맞냐?” 느닷없는 질문에 답할 말을 못 찾다가 “우리 여사님, 요즘 뉴스를 너무 많이 보는 거 아니셔?” 동문서답으로 얼버무렸다. 내일 날씨나 장바구니 물가 정도만을 챙기시는 줄 알았는데, 어머니에 대한 관심의 사각지대가 생각보다 꽤 넓었다. 가장 가까운 이들은, 그 가까움이 되려 시야의 장막이 되곤 한다.
 
십여 년 전, 존엄사를 주제로 특집 취재를 다닌 적이 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가 있다. 사형 선고를 받고 감형됐다가 석방된 이다. 교도소에서는 사형 집행일이 언제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니 배식 메뉴만 달라져도 무척 민감했었다고.

매일 매일, 살얼음판 위를 걷는 심정 속에서 하루는 본인이 ‘그날(?)’ 꼭 가져가고픈 기억을 떠올려봤다고 한다. 자신이 학생 운동에 투신하다 그로 인해 잉여의 몸이 된 터라, 가슴 속에 금과옥조로 품고 있는 문구나 격렬했던 시위현장 분위기, 뜨거운 동지애를 나눴던 사람들의 얼굴이 서서히 인화되는 사진처럼 떠오르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단다.  

“그 순간 처음으로 머릿속에 또렷이 자리 잡은 형상은 ‘어머니’였어요. 햇볕이 따뜻하게 깃든 집 마당에서 내가 어머니의 어깨에 숄을 둘러 드리던 때, 그리고 외풍에 헐거워진 창문 틈을 뭘로 막을지, 이번 김장에는 굴을 넣을지 말지, 월동용 연탄은 몇 장이나 들여놓을지, 겨울 채비에 관해 둘이 나눴던 담소의 순간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는 회상했다. 당시 어머니의 미소와 음성, 자신의 등을 보듬던 그때 햇살의 감촉 그리고 숄의 무늬까지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고. ‘사무친다’라는 말의 뜻을 온몸으로 이해한 순간이었다고. 루프에 빠진 것처럼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이란 무한 반복의 가정법이 그때만큼 자신을 괴롭혔던 적은 없었다고 조용히 토로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원더플 라이프' 스틸사진.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원더풀 라이프' 스틸사진.

이승에서 간절했던 기억 하나를 선택해 영화로 남기고 저승으로 떠나는 이야기,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의 스토리처럼 그는 엄혹한 교도소 수감방에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선택한 셈이다. 마지막이라는 절박함 속에서 그가 간직하고픈 것은 가장 가까웠던 이와 나눴던 평범한 한 때의 시간이었다. 

병실에서 뭉툭하게 사과껍질을 벗겨내다가 오래전 한 인터뷰이의 말이 떠올랐던 건 무슨 까닭이었을까? 내 안에 어떤 버튼이 눌려져 스윽 열린 자동 현관문으로 그때 그 기억이 성큼 내게 걸어 들어온 것일까? 아마도 어머니라는 매개성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한편, 어쩌면 지금 난 그때 그 분이 몹시도 사무쳐했던 어떤 한순간을 ‘무심히’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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