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정부 옹호 보도의 섬뜩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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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경찰 배치·인재 등 안전의무 다룬 기사 4건 중 1건
"책임 있는 추모 위해 정부 책임 물어야 할 때"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와 관련, 대국민 사과 입장 표명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뉴시스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와 관련, 대국민 사과 입장 표명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이태원 참사 발생 3일이 지나서야 당국의 사과가 나왔다. 10월 31일까지 ‘주최자가 없는 행사를 통제할 법적 책임도 권한도 없다’던 정부는, 지난 1일 “주최자 여부를 따지지 말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를 시작으로 행정안전부 장관부터 경찰청장까지 일사분란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갑작스럽고 어색한 태도 변화의 배경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당국의 사과 전후로 참사 직전의 정황을 추측할 수 있는 112 신고 녹취록 내용이 잇따라 보도됐다. <[단독] 참사 골든타임 지운 '경찰의 오판'…소방협조 요청에도 안일대응>(서울경제, 11.1)과 같은 중대한 내용의 단독 보도도 이어졌다. 같은 날 SBS가 단독 보도한 경찰청의 ‘정책 참고 자료’ 대외비 문건에는 “MBC <PD수첩> 등 시사 프로그램들도 심층 보도를 준비 중이어서 정부책임론 부각 소지”라는 대목도 있다. 정부의 태도를 바꾼 ‘언론의 쾌거’로 봐야할까?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를 기준으로 참사 이후부터 지난 2일까지 ‘이태원 압사’를 언급한 보도는 6201건에 이른다. 그러나 보도량과 ‘112 신고 녹취록’ 보도만으로 언론에 박수를 보내긴 어렵다. 신고 녹취록은 경찰 스스로 공개했고, 국회는 자료를 요청한 상태였다. 

오히려 진보와 보수로 시민단체를 갈라 동향을 파악한 경찰청의 대외비 문건에서 MBC <PD수첩>을 콕 집어 긴장감을 표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MBC와 같이 비판적이었던 소수 언론에 국한된 ‘정부 책임론’이 어차피 공개될 112 신고 내용으로 인해 언론 전반에 확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직감한 건 아닐까? 당국의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언론 보도 양상은 그랬다.

앞서 언급했던 6201건의 보도 중 ‘예방’을 언급한 사례는 764건(12%)에 불과했다. ‘경찰 배치’ 문제를 거론한 보도는 715건(11%)에 그쳤다. 그 흔한 ‘인재’라는 표현조차 230건(4%)의 기사에만 등장했다. 참사 초기의 보도 형태가 사태의 경위와 현황을 담은 속보성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도 터무니없는 수치다. ‘주최자 없는 행사’라는 이유로 통제 권한과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 정부 입장은 잘 다루지도 않았다. 비슷한 언급을 한 기사는 179건에 불과했다.

보도의 초점이 정부와 경찰의 기본적인 안전 관리 의무에 맞춰진 게 아니라면 그 많은 보도는 다 어느 곳을 향한 것일까? 급박한 사태 전개를 시시각각 전한 대다수 보도들을 제외하면 최근 두 가지 특이한 경향이 눈에 띈다. 

지난달 30일 새벽 취재진들이 '이태원 참사' 피해 상황과 관련 최성범 용산소방서 서장의 현장 브리핑을 듣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30일 새벽 취재진들이 '이태원 참사' 피해 상황과 관련 최성범 용산소방서 서장의 현장 브리핑을 듣고 있다. ⓒ뉴시스

언론 보도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는 지난달 31일부터 감지됐다.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며 생긴 공백을 ‘원인제공자 색출’로 채우려는 보도들이다. 경찰은 이날부터 CCTV 영상 52개를 입수해 사건 원인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고 밝혔다. 언론은 이보다 하루 전부터 ‘뒤에서 민 사람들이 있다’, ‘토끼 머리띠 남성이 밀었다’는 식의 목격담을 집중 보도해 원인 제공자가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예컨대 <"뒤에서 '밀어 밀어' 고함"...책임 물을 수 있을까?>(YTN, 10.31), <이태원 압사 비극, 어떻게 시작됐나…"밀어" 구호 나왔다>(SBS, 10.30), <고의로 민 사람 있었을까...경찰, 이태원 일대 CCTV 확보 분석>(매일경제, 10.30)과 같은 기사가 쏟아졌다. 

온라인상 갑론을박을 그대로 옮긴 기사들도 많다. (<'이태원 토끼머리띠' 지목된 男 "나 아니다"…꺼낸 증거 보니> 중앙일보, 11.1) 수사가 진행 중이라 명확히 밝혀진 사항이 없음에도 ‘누군가 밀었다’는 것을 사건의 원인으로 전제한 채 그를 찾는 ‘마녀사냥’을 중계한 것이다.

다른 의미의 ‘마녀사냥’도 있다. 참사 직후 SNS에는 ‘예년엔 경찰이 더 많이 투입되어 교통 통제도 하고 일방통행 유도도 했다’는 식의 글이 다수 게재되어 정부 책임을 묻는 여론이 가중됐다. 그러자 경찰과 대통령실은 ‘예년엔 30~90명 수준의 경찰이 투입됐으나 이번엔 137명이었고, 2020년의 800명이라는 수치는 이태원과 강남 일대 전체에 방역 단속으로 투입된 경찰과 공무원 전체 인원이며, 일방통행 유도를 한 적이 없다’는 식의 해명을 연이어 내놓았다.

해명에 천착한 ‘팩트체크’ 보도도 있다. <일방통행 없애서 이태원 참사? 루머 팩트체크 해보니>(조선일보, 10.31)는 당국 입장과 같은 내용을 지자체와 경찰이나 지난해 이태원 핼러윈 축제 현장을 담은 유튜브·트위터·방송뉴스 영상 10건을 통해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나 지자체가 일방통행로 운영 등과 같은 군중 관리를 한 적은 없었고, 사고 위험도 늘 잠복돼 있었던 셈”이므로 “올해는 투입 경찰 인력 숫자를 크게 늘렸지만, 군중 관리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결국 역부족”이라 결론지었다. ‘작년 영상 10건’을 통한 팩트 체크 여부도 의문이지만 ‘팩트체크’의 결론은 허무한 수준이다. 

정부당국의 해명에 따르면 결국 무슨 수를 써도 참사를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일까? ‘시스템이 없다’고 전제했으나 ‘시스템’이 없을 순 없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 법에도 경찰과 당국의 기본적 ‘안전 관리’ 책무가 명시되어 있으며 일방통행이나 교통 통제는 상식 수준의 조치다.

지난해 핼러윈 축제는 방역 단속을 위해 배치됐다는 공무원과 경찰들이 인파를 관리했다. (<알고보니> MBC, 11.1) 방역이든 질서 유지든 위험한 상황에서는 인력 배치만으로 자연스럽게 안전 관리가 이뤄질 수 있다. 이러한 상식을 환기하기 위해 “과거엔 달랐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짜뉴스 생산자’로 낙인찍으려는 보도다. 

<[사설]참사유족 상처 덧내는 가짜뉴스·2차 가해 엄단해야>(문화일보, 11.1), <이태원 참사 수습 방해하는 가짜뉴스·혐오·정략 발언>(중앙일보, 11.1) 등 유사한 보도들도 많다. <중앙일보>는 “이번 사태가 유가족의 슬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온갖 음모론으로 사회 갈등을 부추겼던 세월호 참사처럼 흘러가선 안 된다”라며 ‘세월호’까지 동원했다. 

‘민 사람 색출’로 선회한 보도 양상과 ‘과거에도 일방통행 유도는 안 했다’는 정부 옹호론은 섬뜩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과거에도 안전 관리 안 했으니 올해도 어쩔 수 없었다. 따라서 뒤에서 민 사람만 처벌하면 된다’는 지적도 무책임한 논리다. 과연 그것이 ‘추궁보다는 추모해야 할 때’라는 현 정부·여당이 원하는 결과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언론은 정부·여당의 책임 있는 ‘추모’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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