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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특파원 근무 마치고 돌아온 조대현 PD
EBS 신임 협회장 이상범 PD
방송대상 우수작품상 수상한 BBS 안희경 PD
방송사상 최초로 방북 취재한 김승규 씨

|contsmark0|자신에게 철저히 엄혹한 다큐멘터리스트 도쿄 특파원 근무 마치고 돌아온 조대현 pd
|contsmark1|기억에 남는 제작후기 하나가 있다. 91년 연합회보에 실렸던 「도시의 새」 제작후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의 자연다큐멘터리에 하나의 전기(轉機)를 이룬 걸작이었다. 당시까지 자연다큐멘터리는 그냥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자연의 생태 현상에 대한 심층 분석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까지 분명하게 담았다. 그런데 제작기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pd가 나름대로의 몇가지 이유를 들어 그 작품을 ‘실패작’으로 결론내린 부분이었다. 자신의 프로그램에 대해 스스로 문제점을 적시하고 ‘실패작’이라고 표현하는 제작후기, 나는 자신의 프로그램에 대해 그렇듯 혹독한 자기비평을 하는 글을 그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읽은 적이 없다. 자신의 프로그램을 대하는 pd의 자세는 매우 인상깊은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엄혹함이었다. 조대현 선배는 95년 8월부터 3년간 일본 특파원 근무를 했다. 그동안 pd의 특파원제도는 소위 구조조정 논란이 있을 때마다 폐지론이 거론됐지만 imf로 인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없어지지 않았다. 나는 pd특파원의 존재가치를 분명하게 확립한 자리에 다른 pd특파원들과 함께 조대현 선배 특유의 엄혹함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월 두편의 「세계는 지금」 제작이라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일요스페셜」 60분 다큐멘터리를 직접 여러편 제작했다. 그 프로그램들은 나름대로 한국 사회에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하는 조 선배 특유의 다큐멘터리 정신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보다도 ‘작은 일’에 대한 조 선배의 자세일 것이다. 특파원 시절 그는 본사의 후배들이 ‘자질구레한’ 일들을 부탁할 때마다 한번도 귀찮아하지 않았다. 작은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 - 프로그램을 대하는 pd의 엄혹함을 보여준 조 선배의 일관된 모습이었다.조 선배는 요즘의 다큐멘터리 범람과 그 일탈에 깊은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eng로 촬영한 프로그램에는 모두 다큐멘터리라고 부르는 혼란, 귀신이야기에 재연까지 들어가도 다큐멘터리라고 이름 붙이는 일탈, 다큐멘터리의 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최근 많이 사용하는 컴퓨터 그래픽도 다큐멘터리의 표현장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조 선배의 우려 뒤에는 바로 이 시대 다큐멘터리가 갖는 정직함의 위기가 있는 것이다. 3년의 일본 특파원 근무를 끝내고 최근 돌아온 조대현 선배를 보며, 다시 ‘정직함’과 ‘자신에 대한 엄혹함’이라는 말들을 되새켜 보게 된다.
|contsmark2|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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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초정력가 ebs 신임 협회장 이상범 pd
|contsmark6|이상범 pd는 만나면 즐거운 사람이다. 개그맨 이홍렬을 닮아서가 아니라 매사에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다.그는 초정력가다. 그는 교육방송의 다큐제작팀장을 맡기전까지 8년 반 동안 3백여편의 드라마를 연출하였다. 아마 단기간에 최다편수 연출이 아닐까 싶다. 그는 저예산의 드라마 불모지대에서 어린이드라마와 청소년드라마를 일궈온 개척자다. 교육방송의 pd로서 그것도 드라마 pd로서 당연히 1인 다역이 요구되던 시절, 분장에서 직접 출연까지 그의 손이 안가는 영역이 없었다. 그는 모래시계 세대는 아니지만 모래시계와 인연이 깊다. 한 프로그램의 제작비가 교육방송의 전체 제작비를 상회하던 시절이라 의외였지만 1995년 pd상 시상식 때 모래시계를 만난적이 있다.평소에 건강 체질이라고 장담하던 그도 쓰러진 적이 있다. 영험한 ‘배암’의 효과(?)를 보고서 살아 돌아 왔을 때 그는 아예 자신을 재충전하는 법을 깨우치고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 산천의 웬만한 민물고기 이름은 다 안다. 그가 민물고기협회의 명예직 이사라서가 아니다. 그는 시간만 나면 가족과 함께 개울가를 찾는다.이상범 pd는 유행에 민감하다. 불혹을 넘긴 나이지만 나이 먹었다고 뒤에서 에헴하는 그런 ‘꼰대’들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는 노래방을 들어설 때마다 중늙은이 후배들을 놀래킨다.그는 자신과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늘 노력한다. 그에게 가장 완벽한 조력자는 그의 아내다. 존경받는 가장으로서 그가 하는 일은 당연히 최고인 줄 아는 그의 가족들에게 열악한 제작 환경에 시달려온 교육방송 pd로서의 항변은 오히려 변명에 불과하다.그는 아이들을 좋아한다. 그가 두 아이(태희, 재희)의 아빠라서가 아니라 그 자신이 어린아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곧잘 말한다. 그는 경처가다.이상범 pd는 메모광이다. 그는 자신이 무식하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순진한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이 잘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그 사람이 어린아이일지라도 묻고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는 모르는 것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알아내고야 마는 근성의 소유자다. 드라마 연출로 바빠 정보화시대를 저만치 떨어져 지켜보던 그가 드디어 노트북 컴퓨터를 장만했다. 그가 컴퓨터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그의 메모들을 컴퓨터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전, 이상범 그가 거듭나는 교육방송의 새로운 pd협회장이 되었다.강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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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9|늘 한결같은 스타일리스트 방송대상 우수작품상 수상한 bbs 안희경 pd
|contsmark10| 사람들은 다 변한다. 세월에도 변하고 경험에 의해서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가끔은 언제 봐도 늘 한결같은 사람이 있다. 내가 안희경 pd를 만난 건 3년쯤 전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안희경 pd는 일에 대해 늘 긴장해 있고, 생활에서도 에너지를 잃지 않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그녀는 스타일리스트다. 망토나 숄을 멋지게 두를 줄도 알고, 스카프를 제대로 맬 줄 아는 몇 안되는 여성중의 한 명이며, 자판기에서 빼낸 종이컵을 들고 있을 때조차도 우아해보인다.방송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진행자의 단어 하나, 그 사이의 호흡 하나도 놓치지 않으며 프로그램의 전체 색깔을 만들어낸다. 요구사항이 있거나 관철시켜야 할 일이 있을 때는 강철처럼 강인해진다. 같은 동료이자 선배인 이영준 pd는 그녀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지는 것을 싫어하고, 일을 맡으면 의욕과잉일 정도로 완벽해지려고 노력하지만 아주 가끔 애교 있는 실수를 해 더욱 인간적이고 매력적이다.”이렇게 ‘강한’ 안 pd지만 사실 그녀처럼 쉽게 상처받는 사람도 없다. 약한 마음을 가진 pd는 많은 일을 해낼 수 없으므로 그녀는 자신의 연약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녀 안에 감춰진 연두빛 속살처럼 여린 마음을….안희경 pd는 또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모른다.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와 늘 공부하고 연구하는 자세는 친구들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을 담금질하는 모습을 보면 도무지 ‘안주’라는 것도, ‘나태’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 같다.안 pd가 2년전부터 맡고 있는 「거룩한 만남」은 보람도 큰 만큼 마음고생도 많은 프로그램이다. 우리 사회에서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소개하고 이웃의 작은 정성을 모으는 성금모금 프로그램이자 불교방송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거룩한 만남」은 치밀한 현장 취재와 자원봉사자의 체험 소개 등 수많은 사람을 대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 pd는 힘들 때면 고개를 숙이고 호흡을 고를 뿐, 잠시 후 씩씩하게 웃으며 다시 시작한다. 그런 희경 씨를 보면서 ‘저 여자는 참 열심히 사는구나’, ‘격려가 될만한 일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곤 했는데 이번에 기쁜 소식(방송대상 라디오 교양부문 우수작품상)이 들려와 내 일처럼 기뻤다.그녀에 대해서 적어도 한가지만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녀는 참 열심히 일하는 pd라는 것이다. 참, 그녀는 아직 생생한 ‘미혼’이다.조현경<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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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3|“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방송사상 최초로 방북 취재한 김승규 씨
|contsmark14|“제가 무슨 세뇌라도 당해 온 것처럼 그러는데 50년만에 이루어진 취재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비하하고 비난해야 되겠습니까?”그는 ‘핏대를 올렸다’고 써달라고 했다. 최근에 그는 그가 제작한 프로그램 덕분에 여러가지로 골머리를 썩히고 있다.한국방송사상 최초로 남북한 당국의 공식적인 허가를 받아 북녘 땅을 촬영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독립프로덕션 ‘스포츠 아트’의 김승규 대표(57). 농구인 출신의 방송인으로 알려져 있던 그가 sbs 「김승규의 평양리포트」로 돌아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5부작으로 이 프로그램이 나간 후 영향력이 상당한 모 일간지로부터 ‘비판의식이 없다’, ‘북한당국을 지나치게 의식한 것 아닌가’ 등의 지적이 잇따르자 전체 제작물을 2회분으로 편집해 내보내기로 했던 ‘종합편’의 방영을 결국 연기했다. 자체심의를 강화한다는 취지다.“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입니다. 북한 홍보용 프로그램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도 자신이 없습니까?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그정도밖에 안된다고 생각합니까?”그로서도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매도하는 것 같아 몹시 속이 상한단다.그동안 조선(북한)관련 프로그램들이 보여주었던 자료 중심의 화면들이 아니라 남한의 방송인이 직접 찍고 직접 만나고 직접 대화하면서 평양과 묘향산 일대를 소개한 이 프로그램은 북한이 아니라 마치 흔히 접하는 ‘세계풍물기행’류의 프로그램에서 어느 나라의 문화와 풍물을 소개하는 듯 했다.리포터로서 그는 그의 표현을 빌자면 ‘호들갑을 떨어야’ 했다.“북한은 남한의 신문과 방송을 부정하고 신뢰하지 않고 있습니다. 방송인으로서 남북방송교류의 물꼬를 튼다는 의의를 가지고 시작한 일인데 생각처럼 취재가 용이하지 않더군요. 언제 적당한 시점에 준비과정과 취재과정에서 겪었던 힘든 점들, 노하우들을 모두 공개할 생각입니다. 또 하나 어려운 점은 국내 최초인 만큼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국내에서 방영하는데 기준이 없다는 점입니다.”4차례 취재에 총 60만달러의 사업비를 예정하고 있는 이번 기획의 두 번째는 「내가 살던 고향은」이다. 북한의 고향마을들을 돌아볼 생각이다.애초에 그는 판문점을 통해서 가고 싶었다고 했다. 이렇게라도 왔다갔다 하다보면 언젠가는 첫 장면을 ‘고려항공 기내’가 아니라 판문점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강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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