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쏘공' 시대, 정물처럼 남은 고난과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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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큐시트]

서울 개포동에 있는 판자촌 구룡마을의 모습.  ©뉴시스
서울 개포동에 있는 판자촌 구룡마을의 모습. ©뉴시스

[PD저널=박재철 CBS PD]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한때 허공 높이 솟구쳤다. 우리 모두는 그 공의 행로에 이목을 집중했다. 겹겹이 짓눌린, 딱딱한 마분지 같은 세상의 공기를 가르며 힘껏 올라간 그 작은 공이, 이제는 지상으로 내려와 안착했을까? 

조세희 작가가 지난달 25일, 향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책으로 묶여 나온 지 45년 만이다. 그의 부고는 단순히 한 작가의 별세 소식으로만 다가오진 않았다. 그가 혹은 그의 작품이 거느린 한 시대의 거대한 장막이 순간, 무대 아래로 둔중하게 툭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21세기에 작가 조세희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20세기 그가 작품에 담은 약자의 고난과 고통은 마치 정물처럼 미동도 없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학창 시절, 신입생이 되면 선배들이 꼭 읽으라고 강권하는 필독서 목록이 있었다. 그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책이 <난쏘공>이었다. 그동안 우린 소설만 열심히 읽었지, 정작 그 소설이 그린 절규하는 현실은 제대로 읽지 못했다. 세련되고 휘황찬란한, 새로 들어선 것에 눈이 팔린 나머지 오래전에 터 잡은 것이 어떻게 제 자리를 내줬는지에는 눈을 감았다.

예나 지금이나 철거와 주거, 생존권과 소유권이 한 치의 양보 없이 날 서게 대치하고 있다. 무엇보다, 2009년 용산 참사의 화상(火傷)이 짙은 흉터로 남아 있다. 

고인이 된 조세희 작가의 대표작 '난장이가 쏘아 올린 공'
고인이 된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공'

우리의 시대는 ‘난쏘공’의 시대에서 몇 발자국이나 앞으로 걸어 나온 것일까? 부끄러운 치부, 도려내야 할 환부를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우리는 얼마나 감추고 살았던 걸까? 프로그램에 출연한 빈곤사회연대 이원호 활동가의 말을 옮겨본다. 

“재개발 지역은 주로 지가가 싼 산동네나 다가구 주택밀집이다 보니 세입자분들이 그곳에 오래 살고 계신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 ‘재개발이 된다’고 하면 ‘우리 동네가 좋아진다’라고 생각하세요. 그래서 어르신들은 재개발 소식을 좋아하십니다.  그 마음 이면에는 당연히 정부가 이주대책을 세워 줄 거라는 기대가 있죠. 그 기대는 쫓겨날 때까지 남아 있어요. 철거가 바로 들어가는 관리처분인가 전까지도 모르고 계세요. 세입자는 아무 보상도 없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요.”

70년대 이후 도시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개발의 속도와 강도, 규모와 범위는 점점 난폭해졌다. 강한 물살에 몸을 의지할 뗏목 하나 없이 표류하는 사람들이 바로 <난쏘공>에 등장하는 가족이었다. 주거권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면 도시의 난민이 된다. 지금까지 난민의 수는 결코 줄지 않았다. 

반면, 쪽방촌 반지하 고시원 옥탑방 등 주거의 형태는 다양하게 늘어났다. 아현 뉴타운 재개발 때 보상도 대책도 없이 쫓겨난 박준경 씨는 찜질방을 전전하다 닥쳐오는 생활고를 못 이겨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회적 약자들의 주거환경은 언제나 제자리걸음이었던 셈이다. 

“재개발 사업이라는 게 일종의 공익사업이잖아요. 집 한 채 허물고 새로 짓는 개별 건축 행위가 아니죠. 주택 단지를 만들고, 도로를 놓고, 공원을 조성하는, 본질적으로 국가가 직간접으로 관여해야 하는 공익적 사업입니다. 근데 민간 재개발 조합들이 그걸 할 수 있도록 국가권력을 넘겨준 겁니다. 조합이 나빠서가 아니라, 민간 조합은 개발이익을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개발이익에 방해되는 세입자 대책은 당연히 비용이고 소홀할 수밖에 없고요.”

흔들리면 고리는 약한 곳부터 떨어져 나간다. 삶이 흔들릴수록 ‘난쏘공의 주인공’들이 먼저 떨어져 나간다. 주거는 이제 생존의 문제이고, 오르내리는 부동산 가격은 그 등락에 따라 사망자 수가 겹쳐지는 무시무시한 통계치가 됐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지만, 주택소유 비율은 60% 전후다. 즉, 다주택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정부는 올해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깎았다. 저소득층 입주 가구 수가 13만호나 줄어든다. 더디지만 세상은 좋은 쪽으로 간다는 믿음은 아직 유효한가?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

신판 <난쏘공> 서문에 故 조세희 작가가 남긴 글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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