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다큐 지평 넓힌 MBC경남 '어른 김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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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원에 힘쓴 김장하 선생 조명한 다큐멘터리
새로운 접근 방식과 발굴 의미 돋보여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출신인 김주완 기자가 취재를 하고 MBC경남이 제작한 '어른 김장하' 1부 화면 갈무리.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출신인 김주완 기자가 취재를 하고 MBC경남이 제작한 '어른 김장하' 1부 화면 갈무리.

[PD저널=방연주 대중문화평론가] 하루에 수만 건의 기사들이 쏟아진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2022 신문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신문을 발행하거나 배포한 신문사는 5397개사(2021년 12월 기준), 기자는 2만 8686명이다. 이중 인터넷 신문 사업체 수는 4084개사. 평일 하루 자체 생산하는 기사 건수는 평균 9.6건이다. 대략 계산해도 매일 4만여 개 기사가 나온다.

권력과 비리를 감시하거나 사건‧사고를 다룬 기사부터 홍보성 기사나 베껴 쓴 기사들이 넘쳐나는 것이다. 과연 그만큼 우리 사회는 나아지고 있을까. 은퇴한 기자의 취재기인 MBC경남 <어른 김장하>는 ‘발굴’의 의미를 되새긴다. 

MBC경남 <어른 김장하>는 지난해 12월 31일과 새해 1월 1일 2부작으로 공개된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 타이틀로 내세운 이름 김장하. 진주에서는 유명인사이지만, 대중에게는 낯선 사람이다. 김장하 선생은 19세 한약사 시험을 통과해 진주‧사천 등에서 60년 동안 남성당한약방을 개원해 운영했다. 한약방에서 번 돈으로 평생 지역의 역사, 인권, 교육, 언론, 문화예술, 장학사업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하는 등 사회 환원에 헌신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30여 년간 지역신문 기자로 활동하고,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은퇴한 김주완 기자와 MBC경남의 김현지PD가 김장하 선생의 궤적을 톺아보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어째 다큐멘터리치고 주연보다 조연들의 등장이 잦다. 김 선생은 장학금을 누구에게 얼마나, 몇 명에게 줬는지 등 본인의 자랑일 수밖에 없는 질문에 입을 꾹 닫고 먼 곳을 바라보니 인터뷰의 진전이 없다. 이에 기자와 PD는 김 선생의 외곽을 맴돌며 주변 사람들을 만난다.

진주, 창원, 사천, 함양, 산청 등 여러 지역에서 장학금을 지원받았던 수많은 사람, 한약방에서 일했던 직원들, 한약방 건물의 세입자, 물심양면 지원을 받았던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을 만난다. 그리고 김 선생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신기한 건 김 기자가 김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만난 단체 관계자뿐 아니라 우연히 만난 택시기사도, 길에서 마주친 이웃도 말을 보탠다는 점이다. “한 덩이의 깨끗한 빙하”, “깊은 호수 같다”, “좋은 일 많이 하신 분.”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MBC경남 '어른 김장하' 1부.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MBC경남 '어른 김장하' 1부.

기자가 김 선생의 인생을 한 페이지씩 들춰볼수록 시대의 초상이 겹쳐진다. 김 기자는 약자의 목소리를 전하고, 지역신문의 역할에 힘을 보태기 위해 지역신문 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가진 자에 반감이 크고, 투쟁적인 사람”이라고 자평하면서도, 기자 생활을 할수록 “회의와 좌절감이 느껴졌다”라고 회고한다. 이후 김 기자는 초대 이사장으로서 형평운동기념사업회 기념식에서 만난 김 선생에게 형평운동의 오늘에 관해 묻는다.

긴 세월을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헌신한 김 선생도 “차별이 현존해 안타깝다”라고 답한다. 김 선생과 지역사회에서 저널리즘을 통해 변화를 일구고자 했던 김 기자의 세상을 향한 열망과 고민이 묘하게 닮아있다. 

이처럼 취재하는 자와 취재를 당하는 자는 다큐멘터리라는 ‘기록’으로 연결된다. 김 선생의 기록은 사람이다. 사회 환원에 관해 일관되게 ‘침묵’을 지키지만, 곁에 선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증언한다. 김 선생의 존재가 인생의 갈림길에서 “최악의 선택”을 막게 해줬다거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끔 만드는 이정표와 같은 분”이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학창시절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김 선생을 중심으로 모였지만, 각자 서 있는 위치에서 선한 영향력을 이어가고자 한다. 경쟁과 불안, 각자도생이 각인된 시대에서 이들은 ‘무언의 공동체’처럼 보인다. 

김주완 기자 등 제작진의 기록은 기억이다. 김 기자는 “유리한 기억만 남고 불리한 기억은 사라진다”라며 취재에 나선 배경을 서두에 밝힌다. 김 선생을 기록한다고 해서 우상화하지 않는다. 김 선생의 생애를 집요하게 파고들면서도 선행의 빛과 그림자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예컨대 김 선생을 “빨갱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를 그대로 전하는가 하면 <진주신문> 폐간을 둘러싸고 지속적인 후원이 오히려 독이 된 게 아니냐고 의문을 품는다.

그럼에도 “(기사를 통해) 고발하는 것만큼 선한 사람을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라는 말한 것처럼 <어른 김장하>는 우리 사회가 지닌 결핍과 희망을 발굴했다는 점에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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