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주적 이란' 논란 덮은 순방 성과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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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언론 앞세워 '외교 실패' 정당화...'용바어천가' 꼬리표 못 떼나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지난 17일(현지시간) 취리히에 마련된 프레스센터 중앙기자실에서 스위스 동포간담회 및 순방 일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뉴시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지난 17일(현지시간) 취리히에 마련된 프레스센터 중앙기자실에서 스위스 동포간담회 및 순방 일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윤석열 대통령의 “UAE 적은 이란” 발언 파문이 여전한 가운데 대통령보다 앞서 경제성과를 가져올 다음 행보와 ‘한일관계 개선 기대감’까지 내다보는 보도들이 늘어나고 있다. 논란의 발언이 나온 지 고작 일주일 만이다. 

대통령의 실수를 서둘러 덮어주고 다독이는 보도들은 1월 20일 윤 대통령의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를 기점으로 터져 나왔다.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북핵 위협에 대한 미국 확장억제에 상당한 신뢰 가지고 있다” “정부는 NPT(핵확산금지조약) 시스템 매우 존중한다”며 지난 11일 ‘자체 핵무장’ 발언을 수습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한국 대통령이 꺼낸 ‘핵무장론’이 미국 내에서도 ‘미국을 향한 불신’으로 주목받은 상황이 이례적인 ‘톤다운’의 배경으로 꼽힌다. 

또한 윤 대통령은 “한미일 간 북핵 위협에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공동 대처 해나가기 때문에 (일본의 재무장은) 크게 문제가 안 된다”며 재차 일본의 ‘반격 가능 국가’ 선언을 두둔했다. 이란을 향한 ‘적’ 발언과 직접 관련된 인터뷰는 아니었으나 ‘적국’ 발언으로 우리 대사를 초치한 이란이 ‘NPT 협정 위반’을 지적한 다음날 나온 인터뷰라는 점에서 한국 언론도 관심을 보였는데 그 양상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아주경제>는 지난 23일 <'1호 영업사원' 尹대통령의 차기 출장지...일본‧폴란드 유력>에서 “윤 대통령은 올해 첫 해외 순방지인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6박 8일 기간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며 경제 외교 행보를 이어갔다”면서 “300억 달러 투자 유치” “100여개 기업으로 구성된 경제사절단은 48건의 양해각서 체결” 등 ‘경제성과’를 앞세웠다. 윤 대통령이 ‘일본의 군사력 강화 움직임’을 “문제 되지 않는다”고 평한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를 두고는 “최대 현안인 '일제 강제동원 배상 판결 문제'가 가닥이 잡히는 대로 한·일 정상회담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했다. 

‘이란 적국’ 발언 파문에 대해선 “'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발언으로 외교적 후폭풍을 자초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경제 외교' 성과는 확실하다는 것이 대통령실 안팎의 평가”라고 간단히 매조지면서 “윤 대통령이 올해 안에 일본, 폴란드 등을 방문해 경제 외교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UAE의 적은 이란’ 발언 논란은 “아쉬움” 정도로 축소하고 전체적 순방 평가는 ‘경제성과’로 포장하면서 ‘한일관계 개선 급물살’을 앞으로의 기대로 삼은 것이다. 전쟁 범죄인 강제동원마저 ‘한일 정상회담 급물살’을 위해 ‘가닥’이 잡혀야 할 수단 정도로 취급했다. 

‘핵무장’ 발언과 NPT 관련 발언에는 더 극단적인 사례도 많다. <‘핵무장’서 톤다운한 윤 대통령… 북핵 환기하고 확장억제 강화 이끌어내>(문화일보 1.20.)는 대통령의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의 ‘핵무장론 톤다운’ 발언에 “한·미 동맹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미국 확장억제 수준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 “전술핵 배치, 자체 핵 보유 가능성을 미·중과의 협상 지렛대로 쓰되, 동맹국과의 상호 신뢰를 깨뜨리지 않는 적정선을 찾았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전례 없는 수준에 달했는데도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미국을 압박할 필요가 있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 워싱턴 조야에서도 한국의 자체 핵무장 필요성이 거론된다”며 ‘워싱턴 조야’라는 정체불명의 출처로 미국의 입장까지 ‘핵무장론’에 동원했다. 미국 ‘조야’가 ‘한국 핵무장론’에 정말 동의하는지 의문이지만 ‘북핵 위협이 심각하고 미국이 핵을 안 주니 우리가 핵무장을 하겠다’는 논리가 한국 보수언론과 현재 여당이 그토록 북한, 이란에 쏘아붙였던 ‘깡패국가’ 논리라는 사실이 더 섬뜩하다. 

아크부대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의 'UAE의 적은 이란' 발언을 보도한 채널A 라이브 보도 화면 갈무리.
아크부대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의 'UAE의 적은 이란' 발언을 보도한 채널A 라이브 보도 화면 갈무리.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 보도가 아니더라도 대통령 귀국 즈음하여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UAE 적은 이란’ 발언의 심각성을 지우려는 갖가지 프레임이 횡행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9일  <“尹 핵 관련 발언은 NPT 위배”... 핵개발 의혹 이란의 적반하장>에서 “이란이 동결자금, 핵무장 발언을 문제 삼는 것 보니 초점이 흐려졌다. 오히려 오해라는 게 증명되어서 우리도 주한이란대사를 초치해 설명했다”는 대통령실 입장에 맞춰 “외교적 결례를 넘어 외교 당국의 대응이 필요하다”며 ‘역공’을 주문했다.

지난 21일 <한국경제>는 <"미국의 종" "단교할 것" 이란의 말폭탄…尹 발언 전 4번 초치 있었다>에서 2018년 미국의 이란 제재 이후 호르무즈해협 ‘한국케미호 나포 사건’ 등으로 발생한 4번의 이란 대사 초치를 나열하고 이란의 히잡 시위 탄압까지 동원해 “이란이 윤 대통령 발언을 문제 삼는 데”에는 이번 실언이 아니라 다른 억하심정이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나흘간 5차례 정상회동…UAE, 尹 첫 국빈방문에 전례없는 환대>(조선일보 1.22) 등 윤 대통령이 UAE에서 받은 ‘환대’와 ‘경제성과’를 앞세운 보도들도 ‘UAE 적은 이란’ 발언의 문제점을 뒤덮고 있다. 

자연스럽게 대통령 실언에 따른 현재진행형인 근본적 우려들은 보도에서 사라졌다. 우리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선 호르무즈해협 항행 선박들의 안전문제, 한국과 이란 관계의 뇌관인 ‘석유 수출 대금’이나 ‘UAE 파병 시 비밀군사협정 의혹’ 등은 이제 보도에서 찾아보기도 어렵다. UAE와 이란이 정말 ‘적’인지 자세히 따져보는 보도는 사태가 발생한 1월 15일부터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일부 언론의 재빠른 봉합과 달리 이란 외무부는 23일에도 “한국 정부의 조치는 충분하지 않다”며 재차 ‘동결 자금 상환’을 촉구했다. 대통령 발언이 이란과의 외교적 불화를 야기한 점은 명백하다. 하지만 25일에도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UAE의 주적이 이란이라며 그 근거로 이란을 주적으로 명시한 과거 언론 보도들을 나열했다.

최근 대통령 발언의 외교적 문제점과 UAE-이란-한국 관계의 현황을 면밀히 따져본 소수 언론은 억울하겠으나 집권여당 원내대표가 명백한 외교 실패 사안을 ‘언론’을 앞세워 정당화한다는 현실에 언론은 화가 나고 부끄러워야 한다. 반복되는 대통령의 ‘외교 리스크’는 비단 대통령실의 실책만은 아니다. 오랫동안 언론에 가해진 ‘용비어천가’라는 비판도 이젠 철이 한참 지났다. 언론 스스로 꼬리표를 떼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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