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사' 고아인처럼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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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토일드라마 '대행사', 무수저 을들의 통괘한 연대

JTBC 토일드라마 '대행사'
JTBC 토일드라마 '대행사'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일을 참 여장부처럼 하시네?” JTBC 토일드라마 <대행사>에서 다짜고짜 들이닥쳐 달콤한 제안과 함께 협업을 요구하는 고아인(이보영)에게 법무팀장 배정현(김민상)은 그렇게 비꼬듯이 말한다.

‘여장부’라는 표현은 성차별적 의미를 담고 있다. ‘장부는 남성’이라는 성별 고정관념이 그 앞에 굳이 ‘여’라는 접두어를 붙여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고아인은 그 말을 이렇게 받아친다. “‘여장부처럼’이 아니라 그냥 나처럼 하는 겁니다.” 8회 만에 11.9%(닐슨 코리아)의 파죽지세 최고 시청률을 낸 <대행사>에 등장하는 이 대사는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판타지가 어떤 것인가를 잘 드러낸다. 그건 바로 나 스스로 서는 주체적 삶의 당당함에 대한 판타지가 아닐까. 

지방대 출신에 사내 인맥도 없고 게다가 부모도 없어 흙수저도 아닌 무수저인 데다 그것도 유리천장이 분명한 회사의 여성인 고아인이라는 인물은 이러한 스펙에서 밀려나 결코 성공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모든 ‘을’의 대변자가 된다.

이 스펙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고아인이 한 건 오로지 실력으로 거둔 실적, 수치들이다. 이를 통해 그는 결국 제작본부장이라는 VC그룹 최초의 여성임원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그것이 일종의 기만술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데는 단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회장 딸 강한나(손나은)를 낙하산으로 임원 자리에 앉히기 위한 일종의 사전 포석이고, 이를 통해 여성 친화적인 그룹이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쇼를 벌인 것. ‘1년 짜리 시한부 임원’이라는 통보를 받은 후 절망하던 고아인은 늘 그래왔듯이 무너지기보다는 저들과 싸워 버텨내기로 마음먹는다.

마침 강한나가 낙하산으로 이 광고회사의 임원으로 들어오고 모두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만, 고아인 만큼은 고개를 들고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하지만 사실인)을 던진다. “모르는 거 많으실 테니까 앞으론 물어보면서 일하세요. 아무 것도 모르면서 시키지 않은 일 하다가 괜히 사고치지 마시고.”

또 갑중의 갑이라고 할 수 있는 광고주 PT에서도 “너 나가!”라고 일갈한다. 돈과 권력을 쥔 갑들 앞에서 고아인은 결코 무릎 꿇지 않는다. 대신 할 말을 하는 시원시원한 사이다를 보여준다. 

JTBC 토일드라마 '대행사'
JTBC 토일드라마 '대행사'

물론 이건 전혀 현실적일 수 없는 이야기다. 어디 광고주 앞에서 이렇게 대놓고 할 말을 다하는 대행사가 존재할까. 하지만 이러한 비현실은 오히려 더 강력한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몰상식과 폭력적인 언사들을 받아내는 수모를 겪었던 을들이라면 왜 그렇지 않을까. 고아인이라는 판타지는 그래서 더 비현실적일수록 이를 보는 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고아인의 뒤에는 이제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며 돕는 든든한 을들의 연대가 있다. 은근히 퇴사를 종용받는 '워킹맘' 조은정(전혜진)이나, 다른 사내의 인맥들을 거부하고 늘 고아인 밑에서 그를 든든하게 지지해왔던 한병수(이창훈), 뛰어난 카피라이터지만 역시 실력 없이 윗자리에 앉은 상사 때문에 늘 갑질을 당했던 배원희(정운선) 그리고 팀의 막내인 서장우(이경민)가 그들이다.

이들은 같은 을의 위치에서 기득권자들이 만들어낸 어떤 선들을 고아인이라는 리더를 따라 넘어서려 한다. 스펙이나 연줄이 아니라, 저마다 자기 위치에서 ‘나’ 스스로의 능력을 발휘하는 그런 방식을 통해서다. 

자본화된 세상에서 자본가들이 아닌 대다수는 누군가를 ‘대행’하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행사>는 광고대행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고아인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것이 주체적인 선택이고, 그렇기 때문에 저들의 갑질은 온당한 일이 아니며, 나아가 주체적인 삶의 당당함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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