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으른이들의 학교 '딩대' 1년...당근을 흔들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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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회 이달의 PD상 수상작 EBS '딩대' 제작기

EBS '딩대'에 다나카가 출연한 편.
EBS '딩대'에 교환학생으로 방문한 다나카 선배. 

[PD저널=황세연 EBS PD] 2022년 2월, 한 대학교에 정식으로 스카우트되었다. 타이틀은 대학원생도 전임강사도 아닌 ‘방송반 리더’. 요즘은 MT에서도 만나기 힘들다는 ‘전설의 포켓몬’같은 09학번이지만 나는 뻔뻔하게 제안을 받아들였다. 왜냐면 그 학교가 <딩대>였으니까.

‘모든 2030 으른이들을 위한 학교’ <딩대>를 맡아 운영해온 지 어느덧 꼭 1년이 됐다. 글쓰기를 빌미 삼아 돌이켜 보니 유의미한 성과가 많은 한 해였다. 구독자 수 10만을 갓 넘겼을 때 이어받은 채널은 어느덧 25만 딩대생과 함께하게 됐다. 낄희 교수님과 붱철 조교를 모델로 삼은 “딩대 우유”가 개발·출시되었으며, 모바일 게임·로봇청소기·샴푸의 광고모델이 되기도 했다. ‘이게 왜 진짜냐’싶지만 유명 패션지와 시계 화보를 촬영했고, 대규모 커머셜 행사의 MC로 활약했고, 청년을 위한 여러 정책을 알리는 얼굴이 되었다. MBC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같은 타사 방송, 침착맨·꼰대희·다나카 등의 유튜브에 출연해 매력을 떨치기도 했다.

다양한 대외 협업과 본방송 제작을 병행하며 지난 한 해를 무척 바쁘게 보냈다. 덕분에(?) 건강은 조금 잃었지만, 프로듀서로서 느껴왔던 갈증은 많이 해소할 수 있었다. EBS에서 콘텐츠를 기획·제작하며 늘 ‘뻔한 교육방송’을 피하려 애써왔다. 교육 콘텐츠라 해서 반드시 일방적인 강연형에 ‘엄근진’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각 세대에 맞는 교육 콘텐츠들이 입체적으로 존재해야 회사 차원에서도 좋은 포트폴리오가 되리라고 믿었다. ‘어린이를 위한 음악 예능’ <뭐든지 뮤직박스>와 ‘국내 최초 채식 요리 대결’ <채소가지구>가 그렇게 탄생했다. 대내외의 호응을 받았지만 예능형 콘텐츠는 사내에서 조금 더 쉽게 폐지와 맞닥뜨려야 했다. 그렇지만 나의 경험과 취향이 <딩대>에서는 장기가 되었다. 당시 CP였던 이슬예나 PD가 이를 알아봐 주었다.

이후 <딩대>에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스태프와 출연진의 공이다. 나보다 더 오랜 시간 <딩대>를 지키며 프로그램을 성장세로 이끌어 준 안혜진 작가와 박재현 감독, 팀에서 신선함과 귀여움을 담당하는 이규빈 PD와 고희나 작가 외 연출진·작가진이 나를 기꺼이 믿어 주었다. 온 팀원이 신뢰와 ‘유우머’를 바탕으로 아이템을 고민하고, 선배를 선정하고, 수많은 결정을 함께 해나갔다. 가족보다 더 많이 만나며 회의를 해도 간혹 뾰족하게 풀리지 않은 디테일은 촬영장에서 출연진들이 기막히게 해결해 주었다.

낄희 교수님과 붱철 조교가 ‘불맛 애드립’과 ‘잔망스러운 몸짓’으로 텐션을 올려주고, MC와 게스트가 이에 호응해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을 드러낼 때의 쾌감은 무척 짜릿하다. 내가 할 일은 그저 웃으며 당근을 흔드는 것뿐. 좀 더 풀어 말하자면 총책임자로서 회사를 최대한 설득하며 온에어 수위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이다. 회의와 촬영장에서의 광기를 아직은 여러 이유로 오롯이 전할 수 없으니, 눈물을 머금고 누그러뜨리거나 오려내야 한다.

그래서 종종 “편집된 부분 다 올려주세요”라는 댓글을 볼 때면 안타까운 동시에 흐뭇해진다. 교육방송산 웹예능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영역과 범위를 넓혀 나가고 있는 이 실험이 딩대생들에게 잘 가닿고 있구나. 시청자들 역시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주고 있구나. 방송반이 나서서 설명할 수 없는 고충을 때론 대신 설명하고 응원해 주는 댓글들에 ‘압도적 감사’를 전하고 싶다.

EBS가 제작하는 유튜브 콘텐츠 '딩대' 영상 갈무리.
EBS가 제작하는 디지털 콘텐츠 '딩대'.

콘텐츠 제작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딩대>에 고마운 게 있다면 ‘사람은 정말 다 다르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케 해준 점이다. 매주 딩대생이 보내오는 고민과 사연을 두고 친구나 가족, 때론 나 자신의 일인 양 해결책을 궁리하는데, 각자 생각해온 바를 회의에서 공유할 때면 ‘이 주제를 이렇게 바라본다고?’ 싶어 놀랄 때가 많다. ‘MZ 세대’라는 단어 안에 묶여있지만 팀원들의 연령도 캐릭터도 다양하니 당연한 노릇이다. 덕분에(??) 회의는 길어지지만, 한편으로는 그 ‘다름’이 큰 위안이 된다.

우리가 살면서 겪을 어떤 종류의 문제는 절대 ‘악의’나 ‘잘못’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다. 곁에 있는 사람과 태도나 시선이 살짝 다른 게 전부일 수 있으니, 조금만 더 터놓고 대화를 해보면 어떨까. 아님 ‘생각보다 별일 아니네’ 하고 넘겨보는 건? <딩대>가 모두에게 절대적인 해결책을 주진 못하더라도, 고민을 털어놓는 것만으로 기분이 나아지는 곳이자 힘든 일상을 발랄하게 ‘존버’하는 데 보탬이 되는 동산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면 이 김에 나의 고민도 슬쩍 나눠볼까. 넉넉지 않은 제작 여건에서 딩대생이 보내주는 성원에 보답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낄희 교수님과 붱철 조교의 인형이 잘 제작될 수 있을까? 새로운 선배와 함께 더 많은 사람들의 애정을 어떻게 얻어내야(win) 할까? 딩대의 ‘매운맛’이 꽤 건강하단 걸 내부에 어떻게 설득하지? 붱철 조교의 차은우 흉내는 어떻게 관두게 해야 할ㄲ... 아니다. 덕분에(???) <딩대>가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우선 더 생산적인 고민에 집중해 열심히 달려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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