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유족’ 이라는 조선일보의 악의적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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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소 철거' 논란 보도, 서울시·유족 갈등 구도에 정부 책임 사라져
관성적 보도에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로 몰린 유족들

이태원 참사 유가족 및 시민대책회의, 더불어민주당·정의당 국회의원들이 지난 6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희생자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분향소 철거 예고를 규탄하고 있다. ©뉴시스
이태원 참사 유가족 및 시민대책회의, 더불어민주당·정의당 국회의원들이 지난 6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희생자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분향소 철거 예고를 규탄하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추모의 자유가 다시 통제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후 9년만이다. 10·29 참사 직후 유족이 아직 사태를 받아들이기도 전에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한 정부 방침에 따라 서울광장에 합동 분향소를 설치했던 서울시는, 참사 100일을 맞아 유가족이 요청한 시민 합동분향소는 거부했다. 

정부 뜻에 따른 ‘관제 분향소’는 ‘참사’와 ‘희생자’라는 말도 없이, 위패와 영정도 없이, 리본의 ‘근조’ 표시도 없이 치러져 유가족의 분노를 샀고, 유족이 설치한 분향소는 ‘시민들의 자유로운 광장 사용’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철거 2주 연기’이라는 ‘아량’을 베푼 지난 7일에는 “유가족이 녹사평역 공간을 검토하겠다더니 갑자기 참사 100일 추모제 직전 아무 소통 없이 서울광장에 기습적으로 무단 설치했다”며 유족을 탓했다. 서울시가 제안한 녹사평역 ‘지하 4층’에 유가족은 이미 “숨이 막혀 죽은 아이들을 지하로 보내란 말이냐”며 거부한 바 있다.  

유족을 향한 권력의 ‘거부’는 행정의 탈을 쓴 폭력에 가깝다. ‘지하철역 지하 4층’까지 숨어 들어간 분향소는 ‘시민의 자유로운 사용’에도 문제가 없고, ‘상징성’도 있으며 심지어 ‘안온하다’던 서울시는 유독 지상에서 많은 시민들과 만날 수 있는 서울광장 작은 공간은 그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어깃장을 놓고 있다. 시민들과 유족은 서울시보다 더 완고한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데 바로 언론이다. 

언론은 이 명백한 억압 앞에 너무 태연하다. 관조적 수준의 태도는 지난 4일 진행된 참사 100일 추모제부터 만연했다. <이태원유족, 서울광장 기습 추모제…경찰, 해산절차 돌입(종합)>(연합뉴스)와 같은 보도가 쏟아졌다. 유족과 시민들이 광화문광장까지 가지도 못해 임기응변으로 택한 서울광장 집회 및 분향소는 ‘기습 시위’ ‘기습 분향소 설치’가 됐다. “유족들이 기습적으로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광장 옆 세종대로에서 추모대회를 열었다”와 같은 문장에 애초 광화문광장 접근을 막으려 경찰 기동대를 무려 10개나 요청해 배치한 서울시의 행보를 은폐했다. 

서울시가 판례와 규정을 앞세워 분향소 철거를 예고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보도는 서울시와 유족 간 대등한 힘의 대결로 사태를 전했다. 연합뉴스는 지난 5일 <이태원 유족·서울시 대치…'대한문 분향소' 갈등 재현되나>에서 서울시가 제안한 ‘녹사평역 지하4층 분향소’에 대해 “찾아가기도 힘든 공간에서 조문을 받을 수 있겠나”라는 시민대책위 입장과 “상징성 있고 안온한 공간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하셨다. 그래서 녹사평역 내에 우천 시에도 불편함이 없고 충분한 크기의 장소를 제안드린 것”이라는 서울시 입장을 나열하기만 했다. 

급기야 “서울시가 예고한 대로 행정대집행을 강행해 분향소 철거에 나선다면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라며 “양측이 물러서지 않으면서 과거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희생자 분향소를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압도적인 행정력과 규정의 냉담한 논리로 무장한 서울시를, 시민과 함께 하는 추모를 호소한 유족과 동등한 ‘양측’으로 전제한 것이다. 

조선일보 2월 7일자 10면 보도.
조선일보 2월 7일자 10면 보도.

그래도 연합뉴스와 같은 보도들은 대체로 현실을 그대로 옮겼다는 점에서 핑계가 있다. 매체의 가치 판단, 유족을 터부시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판단이 가미된 것으로 보이는 보도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는 느닷없이 ‘10·29 참사 유가족’들을 ‘핼러윈 유가족’이라 명명하기 시작한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참사 100일 추모제가 열린 2월 4일부터 갑자기 그간 보이지도 않던 용어를 썼다. ‘핼러윈 유가족’이라는 신조어를 쓴 기사들의 취지 역시 유가족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씌우는 경향이 강하다. <분향소 기습 설치에 서울시 ‘계고장’...핼러윈 유가족 “오세훈 직접 와라” 거부>는 “‘핼러윈 참사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희생자 추모 합동분향소를 기습 설치한 가운데, 서울시에서 분향소 철거를 요구하는 계고장 집행에 나섰으나 유가족과 추모객 반발로 무산됐다”며 서울시 공무원을 향해 “고성” “욕설”을 내뱉으며 “강하게 반발”한 “핼러윈 유가족”의 모습을 전했다. 

<‘시속 0km’ 세종대로...핼러윈 유가족·민주당 등 집회로 오후 내내 꽉 막혀>는 ‘핼러윈 유가족’의 ‘기습적인 집회와 분향소 설치’로 한 때 “시속 0km를 기록”할 정도로 극심했던 교통체증과 “혼란”을 집중 조명했다. 대표적인 ‘집회 민폐 보도’다. 

<조선일보>는 지난 6일 <법원 “핼러윈 유족 측, 이태원 광장 독점 권리 없어”>에선 혐오와 모욕을 퍼붓는 극우단체에 유가족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기각했다면서 법원은 쓰지도 않은 “핼러윈 유족”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이해하기 힘든 보도 행태다. 국회 국정조사특위, 시민대책위, 유가족협의회 모두 공식 명칭에 ‘10·29 이태원 참사’를 쓰고 있다. 2월 5일 국회 추모제 역시 공식 명칭은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국회 추모제’였다. 여기서 ‘핼러윈 유가족’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올 당위와 이유를 찾기 어렵다. 기사의 의도와 무관하게 유가족과 고인을 탓하는 2차 가해의 악의적 프레임을 투영할 위험이 큰 용어다. 

참사 직후부터 일부 쓰이다 지금은 관성적으로 대부분의 매체에서 보이는 ‘핼러윈 참사’라는 명명도 비슷한 우려점이 있다. 100일 추모제 보도에서도 ‘핼러윈 참사’라는 명칭을 다수 매체가 쓰고 있으며 그 중에는 <핼러윈 참사 분향소 '철거 예고' 서울시 규탄>(노컷뉴스, 2.6)와 같이 유가족협의회 입장에 초점을 맞춘 보도들도 있다.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당사자가 정한 참사의 명칭을 쓰지 않으면 악의적 프레임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차마 여기서 정확히 옮기기도 부끄러운 그 ‘2차 가해 프레임’을 이미 확대재생산하는 주요 매체들도 있다. <시청앞 ‘핼러윈 분향소’ 긴장대치…“세월호화 우려”>(문화일보, 2.6)는 시민 합동 분향소를 향한 서울시의 압박에 “핼러윈 참사 시민 분향소가 국민 분열과 갈등, 정치적 이슈로 이용됐던 세월호 참사 광화문 분향소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며 추모 시민과 유족을 ‘국민 분열과 갈등’의 축으로 삼았다. 9년 전 또 다른 피해자인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족을 동원하기도 했다. 심지어 “즉각적인 행정대집행이 이뤄지지 않으면, 광화문광장 세월호 분향소 사례가 또 생길 수 있다”며 엄포를 놓았다. 

지난 8일 오전 서울시청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분향을 하고 있다.©뉴시스
지난 8일 오전 서울시청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분향을 하고 있다.©뉴시스

일부 언론이 ‘즉각적인 철거’를 종용하는 분향소 갈등의 출발점은 처음부터 광화문광장에 대한 유족의 접근조차 막은 서울시, ‘녹사평역 지하 4층’이라는 폭력적인 제안을 내놓은 서울시에서 시작됐다. 일부 언론은 ‘녹사평역 지하 4층 분향소’의 폭력성 대신 ‘핼러윈 유가족의 분향소 무단 기습 설치’라는 극단적인 프레임을 일사분란하게 퍼뜨렸다. 

‘서울시와 유가족의 대결’로 치환된 현실에서 원래 추모와 유가족 소통에 책임이 있는 정부는 사라졌다. 이러한 보도 양상에는 일정한 의도가 의심되기도 하지만 다수의 보도에서는 관성적으로 사태를 전하는 무심함, 나태함이 엿보인다. 일부의 악의와 다수의 게으름이 얽혀 유가족은 어느덧 ‘불편하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런 왜곡과 패악을 멈출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스피커 역시 언론이다. 참사 100일, 용어 하나부터 다시 유가족과 희생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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