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아이돌’ 세계관의 진입장벽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tvN 수목드라마 ‘성스러운 아이돌’, 공고한 세계관 진입장벽 낮추는 'B급 코미디'

tvN '성스러운 아이돌'
tvN '성스러운 아이돌'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이 세계에서 그는 레드린 신을 모시는 23번째 대신관 램브러리(김민규)다. 남다른 ‘신성력’으로 사람들을 치유하는 존재가 어느 화산이 폭발한 날 마왕(이장우)과 싸우다 현 세계로 넘어온다. 이 곳에서 그는 데뷔 5년차 망돌(망한 아이돌) 와일드애니멀의 멤버 우연우(김민규)의 몸으로 들어온다. 노래도 잘 못 부르지만 잘 불러야 한다는 생각도 없는 우연우는 적당히 아이돌을 하다 배우가 되는 게 꿈이다.

하지만 와일드애니멀이 망하면서 램브러리 대신 레드린 신을 모시게 된 대신관의 자리가 그는 더 좋아지고 그래서 본래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어서 돌아가 세계를 파괴하려는 마왕을 막아야 하는 램브러리는 레드린 신상을 통해 이 세계의 우연우와 소통하게 되고, 램브러리는 와일드애니멀이 코리안 뮤직 어워즈에서 올해의 가수상을 타면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겠다는 우연우의 제안을 수락하고 계약을 맺는다.

tvN 수목드라마 <성스러운 아이돌>의 이런 서사는 아이돌 팬들이라면 흥미진진하게 느낄 수 있다. 일종의 세계관을 갖고 있는 아이돌 그룹의 팬들은 그 세계를 실제처럼 받아들이고, 그렇게 세계관을 받아들인 이들끼리의 연대감이 더욱 높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어서다.

이른바 아이돌 덕후들의 세계는 현실감이 없어질 때 오히려 연대감이 높아진다. 바깥에서 보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 환상과 공상의 세계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진입장벽을 넘은 팬들끼리만 통하는 세계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관을 드라마로 가져온 <성스러운 아이돌>은 그런 의미에서 진입장벽이 높다. 흔히들 ‘머글’이라 부르는 보통사람들에게는 그 세계에 진입하려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걸 충분히 감당해낼 수 있는 이른바 ‘항마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첫 회 3%(닐슨 코리아)로 시작해 매회 낮아지고 4회에는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진 건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성스러운 아이돌>은 이렇게 추락하다가 어느 순간 이 세계를 받아들인 마니아들만이 공유하는 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이 드라마는 B급 코미디를 적극 활용한다. 예를 들면 아이돌 생활을 해본 적도 없는 램브러리가 우연우로 무대에 서서 춤을 춰야 하는 순간에 “나는 춤을 모른다”라고 외치는 장면이 짤이 되어 화제가 되는 상황, 현 세계로까지 넘어와 RU E&M 부회장으로 활동하는 마왕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선 램브러리를 괴롭히기 위해 악명 높은 PD에게 ‘악마의 편집’을 시키는 장면 같은 게 그렇다.

또 우연우와 달리 성가를 수백, 수천 번 불렀던 램브러리가 신성력 가득한 노래를 부를 때 관객들이 모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빠져들고 심지어 대머리에서 머리가 자라나는 장면도 그렇다. 과장된 B급 코미디는 이 황당한 세계관을 웃음으로 넘어가는 전략으로 활용된다. 

tvN '성스러운 아이돌' 5화 예고편 갈무리.
tvN '성스러운 아이돌' 5화 예고편 갈무리.

<성스러운 아이돌>에는 마왕이 등장하고 신성력을 가진 대신관이 나오는 황당한 세계관에 B급 코미디가 주는 웃음이 있지만, 그 안에는 아이돌 그룹을 둘러싼 냉혹한 현실과 그럼에도 이들로부터 위로받아 살아갈 힘을 얻는 팬들의 이야기가 은유적으로 담겨있다. 실제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많이 벌어지는 악마의 편집을, 실제 마왕이 그렇게 하게 만든 것이라는 설정으로 주는 웃음에는 현실 공감이 깔려 있다. 또 자신들은 힘겹게 현실을 버텨내며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그 노래에 힘을 얻는 김달(고보결) 같은 팬은 그 아이돌들이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대신관으로서는 못 고칠 수 있어도 아이돌이라면 고칠 수 있어요.” 모든 걸 신성력으로 기적처럼 고치는 램브러리가 ‘마음의 병’은 고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절망하자, 김달이 하는 그 말은 아마도 팬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게다. 팬들에게 아이돌은 때론 ‘성스러운’ 존재처럼 위로와 위안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물론 이건 덕후들처럼 저 세계관 속으로 기꺼이 들어간 이들에게만 공감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머글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저 <성스러운 아이돌> 세계관의 진입장벽이다. 물론 넘어가기만 하면 깔깔 웃다가 때론 뭉클해지는 다채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을 테지만.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