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초대석11 주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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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초대석11 주철환
해피 투게더(HAPPY TOGETHER)
  • 승인 1998.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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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pd연합회 박종성 사무처장이 진행하는 마지막 여의도 초대석에는 일반인들에게 pd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주철환 pd가 초대됐다. pd이면서 전문가적 글솜씨를 보여온 주철환 pd는 또한 여의도 초대석의 필자이기도 했다.박종성 사무처장이 화두로 꺼냈던 ‘무명 pd’와 ‘유명 pd’, 그들이 만났다.<편집자>
|contsmark1|여름 한낮의 강한 햇빛은 노출된 모든 풍경의 입체감을 지워버린다. 사물의 개성은 밋밋한 전면의 배후로 숨어버리고 ‘특기’할 수 없는 단조로움과 지루함이 끈적거리며 달라붙는다. 빛이 강하면 그늘도 깊으리라는 믿음이 없다면 그 어떤 위안도 없다.주철환 프로듀서, 대중적인 표현을 쓰자면 ‘스타 pd’이고 좀 현학적으로 과장되게 말하자면 ‘pd의 환유’가 되는 그. 이제 알려질 만큼 알려진 그에 대해서는 어떠한 얘기를 하던지 간에 지겨운 동어반복이 될 터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나야 하는 이유는 그의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만큼 유명한 pd가 없었고 없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를 오늘날 ‘pd 주철환’으로 만든 것이 주철환 신화의 빛이라면 모든 pd가 주철환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은 그 그늘이다. 그늘에 대해서는 별로 말해진 바가 없다. 말해진 것보다는 말해지지 않은 것이 더 중요하다. 진실이 그곳에 있다.
|contsmark2|…pd를 처음 시작하던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잘난 체만 하려고 pd가 된 것이 아니었으니.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그렇게 초심(初心)으로 돌아가고 싶다.
|contsmark3|그의 저서 ‘pd는 마지막에 웃는다’ 책머리말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예지자가 광야에서 외친 소리는 그냥 소리로 남지 않고 역사로 구현되었으나 명동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는 지나가는 몇몇의 시선만을 모을 수 있었을 뿐이다. 그 차이는 그들이 어디서 외쳤느냐는 것보다, 무엇을 위해 외쳤느냐는 데서 기인할 터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외치는가… 나는 감히 그것을 인간과 세계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contsmark4|…나는 어렸을 적부터 선생님을 하고 싶어했다. 또 실제로 중·고교에서 교사생활도 했다. pd가 되면서 가졌던 최초의 생각은 방송과 교육의 연대였다. 교육이라는 것은 행복하게 사는 터전을 마련해 주자는 것이고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방송에서 그런 것을 구현하고 싶었다. ‘happy together’ 그게 내가 항상 품고있는 생각이었다.
|contsmark5|‘의미’와 ‘재미’를 씨줄과 날줄로 하여 직조한 그의 프로그램들이 거둔 성공을 다시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프로그램과 함께 그를 유명인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그의 글쓰기였다.
|contsmark6|…글쓰기는 나에게 있어서 일종의 반성행위이다. 그것은 내가 빠질 수 있는 자만심과 안일함의 함정으로부터 나를 구해준다.
|contsmark7|프로그램만으로 말할 수 없을 때, 프로그램에 나타난 진정이 그릇되게 받아들여질 때 pd는 방송사 담장을 넘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현실로서의 프로그램과 이상으로서의 pd의 의식, 그 둘 사이 간격의 개연성을 그는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글쓰기로서 충분히 그 틈을 메울 수 있는가. 글은 주체가 품은 또다른 욕망이며 세계를 향한 의지이다. pd가 쓰는 글은 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기여하기보다는 pd 개인에게 복무한다. 프로그램이 처해있는 현실을 끌어올리기보다는 pd만을 전면으로 부각시킨다.
|contsmark8|…유명해지는 것. 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좋은 말들을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에 편리하다. 내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하고 싶어도 그럴만한 위치에 있어야하고 어떤 통로를 확보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책임감이 물론 절대적으로 뒤따라야겠지만.
|contsmark9|만나서 얘기하는 내내 어떤 질문에도 막힘 없고 거침없는 답변을 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것과 관련해서는 놀라울 정도의 기억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대학원 입학일, 입사시험, 입봉한 날짜같은 것까지도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삶이 어떤 흐름을 타고 있는 듯이 느껴졌고 아주 구성이 치밀한 한 편의 프로그램을 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언제부터인가 그의 프로그램들은 그의 이름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감이 있다. 지금까지 많은 글쓰기를 통하여 그는 방송환경의 봉건성, 전근대성에 대한 질타를 가해왔다. 프로그램만을 가지고 직접 부딪치기는 다소 벅차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신 그 자신을 단기로 출정시킨다. 글이라는 무기를 들려서.
|contsmark10|…말(글)이란 하면 할수록 허무해진다. 프로그램은 하면 할수록 덜 허무해지는데. 그러나 여건상 (말에 비해) 프로그램은 많이 앞서 갈 수가 없는 것 같다. 방송에서 본질적인 어떤 것을 보여주진 못한다 하더라도 그 근처에까지는 가보자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이를테면 유토피아를 보여 주지 못한다면 일단은 그 비슷한 무엇이라도 보여주자는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어차피 대중성이라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contsmark11|프로그램이 성공하는 경우는 당대 대중의 주류적인 감각에서 한 발짝 정도 앞서나갔을 때라고 생각한다. 대중의 감각에 지나치게 영합하려할 때 대중은 오히려 프로그램을 경멸하고 너무 앞서 나가면 대중은 프로그램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대중성과 진보성의 사이에서 pd는 이카루스의 비행을 계속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있다. 글쓰기는 그 긴장을 해소시키며 비행의 지향점을 설정해주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주 pd가 글쓰기를 반성행위로 보는 것도 이같은 이유가 아닐는지. 그러나 pd의 글쓰기가 궁극적으로 공허해진다면 그것이 자신의 무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방송은 아직까지 자신의 독자적인 메타언어를 갖고 있지 못하다. 스스로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에게 친절할 수 없는 아카데미즘의 영역으로부터 숱한 용어와 개념을 차입해야하는 문화적 신탁통치 아래에 있다.
|contsmark12|…나는 옴부즈맨 프로그램인 「tv속의 tv」의 확대판 같은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 어떤 프로그램의 제작진·출연진·모니터 단체·방송학자·방송기자·평범한 시청자들이 한 데 모여 그 프로그램이 어디가 좋고 어디가 나쁜지 왜 그런지 얘기해보고 나아갈 방향도 모색해보는.
|contsmark13|그는 대부분의 성취동기가 높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자기애가 대단하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조금이라도 싫어하는 것 같으면 견디질 못한다고 한다. 기어이 자기편을 만들고야 만다. 그를 공격할 마음을 품었다 하더라도 웬만한 사람은 그와 몇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고 만다. 놀라운 아니마여. 지금껏 방송조직 내에서 상당한 수준의 비판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애교전술’이라고 부르는 천부의 친화력공세 덕분에 우군이 다수라고 한다.
|contsmark14|…나는 지금까지 인간관계에 있어서 운이 좋았다. 어느 곳을 가든지 나를 지켜주는 사람, 나에게 우호적인 친구를 많이 만났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감사’하며 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많이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혹시 내 프로그램을 통해 상처받는 사람은 없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 프로그램에 노랗게 머리를 물들이고 나온 연예인이 있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그런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할 수가 있다. 나는 그런 분들의 감정도 존중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contsmark15|“철조망 통과하는 방법이 절단이나 폭파뿐이겠는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마니를 구해서 그 위로 통과하거나 아니면 우회할 수도 있다.” 그가 방송 아이템을 둘러싸고 데스크와 마찰을 겪으면서 쓴 글이다. 숙달된 병사에게 철조망 통과 정도는 어떤 방법을 통하든지간에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걸려 넘어지는 ‘고문관’들에게 있다. 다같이 통과할 수 있는 방법, 더 나아가 철조망 자체의 철거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해줄 것을 부탁해본다. happy together!앞으로 스타pd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상업주의의 수압은 계속 올라갈 것이며 그 아래서 개개의 pd들은 힘없는 방송노동자로 파편화되어갈 것이다. ‘의미’와 ‘재미’ 혹은 ‘교양’과 ‘유머’의 동시구사를 그나마 가능하게 한 자유공간은 모두 시청률, 광고시장으로 재개발되어질 것이다.
|contsmark16|…나에게 있어 명예는 곧 멍에이다. 나에 대한 기대, 또 내가 해왔던 말과 글을 실천해야 될 때라고 생각한다.
|contsmark17|- 굶주린 한 아이의 눈물이 있어서 4천의 낮의 사랑과 4천의 밤의 연민을 우리들은 암살했다- - 다무라 류우이찌, ‘4천의 낮과 밤’ 중에서 바슐라르가 그랬던가. 촛불의 불꽃이 끝나는 지점에서 빛이 태어난다고. 불꽃은 빛을 만들어내지만 결코 빛에 이르지 못한다. 엄격히 말해 주철환 pd의 성공은 다른 pd의 실패를 의미한다. 주 pd의 프로그램이 다른pd의 그것보다 시청률이 높다는 얘기가 아니다. 스타 pd적 가치 - 좋은pd의 자질·능력·성실성·인격·친화력·행운·여론의 주목 등 이 모든 것을 주철환의 이름으로 선점했기 때문이다. 그 외의 자들에겐 기회와 오리지낼러티의 박탈일 뿐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한 아이의 눈물 못지 않게 그 뒤에 가려진 수많은 감정들도 절절한 법. 빛이여 영원히 빛으로 남고 싶다면 항상 그대 발밑에서 연소되는 불꽃을 생각하라.|contsmark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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