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피해자·유족도 평범한 시민...내 일로 생각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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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6회 이달의 PD상 수상자 인터뷰] KBS대구 '대구 지하철 참사 20주기 추모 다큐' 연출한 이채영 PD

KBS대구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 추모 다큐멘터리-,아직도' ⓒKBS대구
KBS대구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 추모 다큐멘터리-,아직도' ⓒKBS대구

[PD저널=이영광 객원기자] 276회 ‘이달의 PD상’ TV 지역 부문 수상작에 지난 3월 8일 KBS 1TV에서 방송된 대구 지하철 참사 20주기 추모 다큐멘터리 <,아직도>가 선정되었다. 독일 언론인인 안톤 숄츠 기자를 프리젠터로 내세운 다큐멘터리 <,아직도>는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을 통해 참사의 현재적 의미를 조명했다.

<,아직도>는 어떻게 기획된 프로그램인지 궁금해 지난 15일 다큐를 연출한 이채영 KBS대구총국 PD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이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지난 3월 8일 KBS 1TV에서 방송된 대구 지하철 참사 20주기 추모 다큐멘터리 <,아직도>로 ‘이달의 PD상’을 수상하셨잖아요. 수상 소감 부탁드립니다.

“먼저 어려운 얘기를 나눠주신 희생자 가족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고요. 참사는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보시는 분들께서 20년이 지난 대구 지하철 참사를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잠깐이라도 희생자 가족분들과 마음을 함께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수상 연락 받았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이 상을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는 참사가 발생하지 않고, 그래서 참사를 주제로 프로그램도 안 만들어도 되면 좋겠어요.”

-<,아직도>는 어떤 작품인지 소개 부탁드려요.

“참사는 발생한 직후에만 반짝 이슈가 되고 한 달 두 달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것처럼 세상이 흘러가잖아요. 그 이후에 남겨진 가족들에 대해서 알려진 부분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들이 지난 20년 동안 경험했던 감정들을 따라가며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했습니다.”

-처음에 뭐부터 시작했나요?

“유족분들 만나 뵙고 관련 연구하신 분들도 만나 뵀습니다. 중앙로역 기억 공간에도 가보고요. 사실 저도 제작하기 전에는 한 번도 안 가봤었거든요. ‘참사에 관해 더 적극적으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참사라는 게 아픈 역사라서 알아가는 게 어렵지 않았나요?

“맞아요. 어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요. 그런데 유족들은 제가 힘든 것보다 더 아프고 힘든 세월을 살아오셨을 거잖아요. 제작을 맡은 이상 최대한 유족들께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던 것 같습니다.”

-독일 언론인인 안톤 숄츠 기자가 프리젠터 했잖아요. 이유가 있을까요?

“오랫동안 한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주류와 다른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냐하면 그 사회의 문화나 관습 같은 걸 무의식적으로 이미 다 받아들인 상태이기 때문에요. 그래서 조금은 다른 시선을 가진 사람의 눈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가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다큐 프리젠터로 나선 안톤 숄츠 기자.
다큐 프리젠터로 나선 안톤 숄츠 기자.

-제목이 ‘아직도’인데 앞에 쉼표가 있잖아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중앙로역 기억 공간에 가보면 참사 당시에 불에 타고 남아 있는 벽이 있어요. 거기에 ‘보고 싶다. 지은아’라는 글씨가 있고요. 흔히 시간이 약이라며 ‘20년이 지났으니 잊을 때도 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겐 시간이 얼마나 지나더라도 감정이 달라지진 않는 거예요.”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인 윤지은 씨 아버지인 윤근 씨 이야기로 시작하셨는데 왜 그렇게 구성하셨어요?

“'보고 싶다. 지은아' 글씨를 보고 지은이가 누구인지 궁금증을 갖고 있었던 차에 저희와 연락이 닿았던 유족 중 한 분이 윤근 선생님이었고, 그분의 따님이 지은 씨였어요. 그래서 윤근 선생님의 이야기로 시작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윤근 씨 처음 만났을 때 어떠셨어요?

“선생님은 어려운 얘기인데도 따님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하나하나 다 알려주셨고 선생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따님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어요.”

-아픈 기억이니까 물어보는 게 미안하잖아요.

“저도 괜히 죄송해서 ‘이런 기억을 또 떠올리게 해서 죄송합니다만’ 하고 말문을 열면 가족분들은 기꺼이 얘기를 해주셨어요. 하루는 유족 중 한 분께서 ‘물어보지 않는 사람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일 것이니 먼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대부분 유족께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는 어려워하셨지만, 제가 여쭤봤을 땐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주셨거든요. 누군가 질문을 하건 안 하건 유족들은 늘 그 기억을 갖고 살고 계세요. 아픈 기억을 묻는 게 죄송하다는 생각도 어쩌면 지극히 제 입장일 수 있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참사 현장이 많이 훼손됐었는데요.

“사고 당일 밤에 바로 전동차를 현장에서 기지로 이동시켰고, 그다음 날에는 군부대를 동원해서 현장을 물청소했으니까요. 당시에는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과정을 공유하는 것보다는 빠른 수습이 목표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 지금 생각하면 그런데 그때는 ‘지하철은 멈추면 안 된다’는 생각들이 팽배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민들이 평소처럼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게끔 현장을 복구하고 하는 것이 목표였던 것 같아요. 다시 보면서도 놀랐어요.”

-그 당시 진상조사는 제대로 안 된 건가요?

“그때 불을 지른 방화범과 마스콘키를 두고 간 기관사가 지목이 됐었고, 그 둘을 향한 기사가 많이 쏟아졌어요. 이면에는 전동차를 불에 잘 타는 소재로 제작하게 했던 시스템이 있었는데 근본적인 원인이 주요하게 분석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화재가 난 전동차보다 맞은편에서 중앙로역으로 들어오던 전동차에서 희생자가 더 많이 나왔다고 해요. 왜 그랬는지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잖아요.

“당시 유족들과 시민들이 그에 대해 조사했어요. 불이 잘 옮겨붙는 소재로 전동차를 제작한 것, 부실한 방재시설, 기관사 한 명이 열차 전체를 관리해야 했던 1인 승무제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는데요. 처벌은 이러한 구조를 만든 책임자들이 아닌 방화범과 현장 직원들 위주로 내려졌어요.”

-참사 당시 자극적인 보도도 많은 거 같은데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는 건가요?

“더 심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만 해도 SNS나 인터넷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거든요. 이제는 더 쉽게 참사 내용을 접할 수 있으니 시청률과 조회수를 늘리기 위한 자극적인 보도들이 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4개월 만에 수습했다고 나오던데 빠른 것 아닌가요?

“빠르죠. 2003년 2월 18일에 참사가 발생했고 6월 말에 합동 장례를 다 치렀으니까 4개월 만에 수습한 거거든요. 그해 여름에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대구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어요. 대구시에서는 큰 국제행사 개최를 앞두고 차질이 생길까 더 빨리 수습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일본 JAL기 추락 사고 참사 유가족들 이야기도 담으셨던데.

“일본 JAL기 추락 사고가 1985년에 발생했던 일이니까 벌써 40년이 다 되어 가거든요. 그래서 이제 20주기를 맞은 대구 지하철 참사의 미래를 어쩌면 JAL기 추락사고 사례를 통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JAL기 추락 사고 같은 경우에는 사고가 발생했던 인근 마을의 주민들이 나서서 추모한다는 게 인상 깊었어요. 본인의 가족이 연관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 근처에서 사고가 발생했으니 우리가 함께 추모해야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게 지금 우리나라에서 ‘추모시설은 혐오시설이야. 우리 집 앞에 오면 안 돼’ 이런 우리나라의 모습과는 다르다고 느껴져서 담고 싶었습니다.”

-안톤 숄츠 기자가 찍은 윤근 씨 사진에 나온 “그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 땅의 이방인 같았다”는 자막이 와닿던데.

“참사는 계속 발생하고 있어요. 그 말은 우리 사회에서 유가족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보이지 않아요. 소외되는 거죠. 외국인인 안톤 기자가 보기에도 참사 유족들이 한국 사회의 이방인처럼 느껴졌나 봅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참사 피해자들은 나와는 다르다, 내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분들도 우리랑 똑같은 평범한 시민들이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을 저희가 계속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20주기 행사하는데 주변에서는 반대가 많았나 봐요?

“해마다 추모식 날이면 인근 상인들이 반대 시위를 합니다. 유족들의 바람은 하나예요. 추모 공간을 추모 공간이라고 부르는 것.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겨둔 탑이 있지만, 공식 명칭은 ‘안전상징 조형물’이에요. 추모탑이라 부르지 못하는 거예요. 인근 상인들은 추모 공간이 들어서면 관광객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반대를 합니다. 중간에서 대구시가 조율을 잘했으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거예요.”

대구 지하철 참사 20주기 추모 다큐멘터리 ',아직도' 스틸컷.
대구 지하철 참사 20주기 추모 다큐멘터리 ',아직도' 스틸컷.

-엔딩에 윤지은 씨 목소리를 담으셨는데 의도가 있을 것 같아요.

“‘딸아이의 목소리를 녹음할 때 윤근 아버님의 심정은 어땠을까, 얼마나 사랑했으면 소중했으면 이런 걸 하나하나 다 남겼을까’ 등 따님에 대한 애정이 너무나 느껴졌어요.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지은 씨지만 이제 윤근 선생님 통해 지은 씨를 알게 되었잖아요. 마찬가지로 지은 씨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연출을 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많이 어려웠습니다. 유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리겠다는 생각부터가 욕심이고 저의 자만이기 때문에 들려주시는 얘기를 잘 듣고 잘 전달해야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뭐가 가장 어려웠어요?

“참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직접 경험자들과 간접 경험자들의 시선이 다르고, 참사 피해 가족들 내에서도 의견이 다양합니다. 이건 당연한 거예요. 살아온 배경, 현재 처한 환경 등이 다 다르니까요. 그걸 인정하고, 어디까지를 어떻게 담을 것인지 고민을 많이 해야 했습니다.”

-시청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을까요?

“참사를 내 일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돼요.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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