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달’, 돈의 위치를 바꾼 죗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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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TV 월화드라마 '종이달', 고객 돈을 횡령한 은행 직원 '이화'가 좇는 것은

지나TV '종이달'
지나TV '종이달'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돈은 제자리에서 가치를 발휘하고 있을까. 돈은 마치 물처럼 흘러 다니면서 어떤 곳에 몰려 넘치기도 하지만, 아예 흐름조차 차단되어 있는 곳에는 아예 흐르지 않는다. 따라서 물이 넘치는 곳에는 생명이 과잉될 정도로 피어나지만, 바짝 마른 곳에는 어떤 생명도 살아남지 못한다. 이처럼 물을 닮은 돈의 흐름은 과연 제대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지니TV 월화드라마 <종이달>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한다. 유이화(김서형)는 저축은행에서 VIP 고객관리를 위한 컨시어지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VIP 고객이란 다름 아닌 거액을 예치한 이들을 말하는 것이고, ‘컨시어지 서비스’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사실상 심부름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굳이 은행을 찾지 않아도 은행원이 직접 고객을 방문해 돈을 예금하거나 찾아주는 일을 해주는데, 고객들은 별의 별 심부름을 다 시킨다. 게다가 유이화가 담당한 VIP들을 보면 그들이 가진 돈의 액수가 그들의 가치와는 그리 비례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사채업으로 자기 통장에 얼마가 들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돈이 많은 박병식은 인간의 품격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노인이다. 습관이 된 듯 돈에 집착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손자를 돕기는 커녕 돈을 빌려주고 고리대를 요구하며, 유이화 같은 은행원에게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하는 인물이다. 그가 그렇게 가진 만큼의 가치를 못하는 이유는 돈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많은 돈을 벌려 하고 그것은 더더욱 그를 인간 이하로 만들어버린다. 

지니TV '종이달'
지니TV '종이달'

돈이 많지만 혼자 사는 숙자 할머니는 쓰레기가 나온다는 핑계로 즉석밥에 깻잎 캔 하나를 따서 끼니를 때우는 노인이다. 젊어서 방석집으로 돈을 번 할머니는 가끔씩 유이화를 그때 자신이 데리고 있던 여자들처럼 대한다. 치매가 있어 보이는 이 할머니는 돈을 쓰임새 있게 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는 아마도 방석집에서 데리고 있던 여자들한테 했었을 표현대로 “개처럼 번 돈 개같이 꽉 물고 안 놓는” 삶을 살아왔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결실은 허무하다. 치매로 그 가치조차 모른 채, 돈에만 집착하는 삶이라니. 

이렇게 엉뚱한 곳에 쏠려 있는 돈을 조정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이 잘못된 돈의 위치를 바꾸는 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저들에게는 아무런 쓸모도 가치도 없어 보이는 돈이지만 박병식의 손자 윤민재(이시우) 같은 전도유망한 청년에게는 그들에게 티끌만한 액수의 돈이라도 엄청난 가치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이화는 결심한다. “돈의 위치를 바꾸는 거야. 자신이 얼마를 가졌는지도 모르는 추악한 노인보다 꼭 필요하고 절박한 그 손자에게로.” 

그래서 유이화의 ‘돈의 위치를 바꾸는’ 모험(?)이 시작된다. 저들의 통장에서 얼마 정도 빼내는 건 티도 안날 거라고 생각하며 돈을 인출하고 그 돈을 마치 자기 돈인 양 꾸며 윤민재에게 건넨다. 윤민재는 처음엔 거부하지만 유이화의 설득으로 이를 수락하고 두 사람이 가까워지면서 이들의 욕망은 선을 넘는다. 저들의 통장에서 빼낸 돈의 액수가 점점 늘어나고 그걸로 무언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려했지만 돈은 엉뚱한 욕망들을 자꾸만 생겨나게 만든다. 돈의 위치를 바꾸는 일은 그래서 그저 ‘횡령’이 된다. 

<종이달>은 결국 한 은행의 VIP 고객 담당 직원이 거액을 횡령해 해외로 도망친 사건을 소재로 가져왔다. 하지만 이 범죄로 짤막하게 신문 사회면에 나올 사건에서 이 작품은 제 가치를 하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돈에 대한 문제의식을 꺼내놓는다. 그건 처음엔 그 가치를 모르는 자들에게 위치한 돈의 문제로 시작하지만, 돈이 야기하는 욕망으로 인해 인간의 가치를 잃어가는 자본화된 세상의 문제로 옮겨간다.

어쩌면 돈은 허망한 숫자에 불과하고 삶이라는 실체에 있어 그저 ‘종이에 적힌 약속’에 불과한 게 아닐까. 그럼에도 우리는 행복과 가치를 줄 것이라고 유혹하는 자본이라는 괴물에 포획되어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가짜로 만들어진 ‘종이달’에 가려진 진짜 달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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