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김창룡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 '국민과의 소통 강화'를 내세우며 대통령실 이전까지 강행한 윤석열 대통령이 정작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은 갖지 않았다.
대신 윤 대통령은 국무위원들과 함께 10일 기자실을 깜짝 방문했다. <미디어 오늘>은 윤대통령이 기자실에서 15분만에 자리를 떴다며 “정작 신년에 이어 1주년 기자회견도 없이, 기자실에 얼굴만 비추는 이벤트성 자리를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 1년 동안 국내 언론 무시, 언론 편가르기, 맘에 안드는 방송사 기자 대통령 전용기 안 태우기, 대통령의 모두 발언만 일방 방송하기, 비판언론 소송으로 재갈물리기 등 기자와 언론의 수난시대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언론사가 당연히 해야 할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취임1주년 기자회견, 국민과의 대화, 정례 브리핑 등 자리를 갖지 못하면 그 자체가 스스로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이다. 국내 기자가 질문을 못하고 외신 보도를 보고 국내 사정을 전달해야 할 상황이라면 언론의 위기는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 주요부처에서 논란이 많은 기자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부작용이 많음에도 기자단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되물어야 할 때다.
첫째, 기자단의 존재 이유는 권력 견제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정치 권력이든 경제권력이든 권력은 속성상 언론의 감시와 견제를 싫어한다. 한 두 언론사가 아닌 통신사, 방송사, 신문사 등 주요매체들로 구성된 기자단의 힘은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을 마이크 앞에 세울 수 있다. 기자단의 뭉친 목소리는 국민을 대변하고 국민주권의 대표자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을 제4부로 부르는 것은 입법, 사법, 행정부를 견제·감시하여 3권 분립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거부할 때 '해야 한다'고 요청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서다. 이를 할 수 없다면 기자단이 고장났다는 소리다.
둘째, 기자단은 스스로의 배타적 특권집단을 경계해야 한다. 한국의 기자단은 일본의 기자구락부에서 유래한다. 일본은 전후 세 차례에 걸쳐 총리를 지낸 가쓰라 타로 정치인이 기자들을 '술, 돈, 여자'로 내편을 만들기 위해 기자구락부(기자단)를 만들었다.
기자들의 타락은 권력자, 정치인들과의 결탁으로 이어졌고 그 전통은 해방 이후 한국에도 전달됐다. 일본의 기자구락부는 시대의 변화속에 유물이 됐지만 한국의 기자단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갖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있다.
정작 권력자들을 불러내야 할 상황에서 기자들이 아무 말도 못한다면 기자단은 존재 이유가 없다. 권력 감시·견제라는 본분을 잃어버린 기자들이 권력자들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파이팅을 연발하는 것은 권력의 한 부분으로 스스로 착각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기자직은 치어리더가 아니라 시대가 변해도 워치독(Watch dog)이다.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기자단이 만들어졌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셋째, 언론의 자유와 진실 추구는 모든 언론사의 존립 가치이며 이를 수행할 힘은 기자단의 한목소리에서 나온다.
권력자가 거짓말을 할 때, '바이든'을 '날리면'이라고 전 국민을 향해 납득하기 어려운 소리를 할 때, 특정 방송사만 콕 찝어 탄압할 때, 기자단은 한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특정 언론사의 성향이나 이념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진실에 대한 권력의 도전은 부당하기 때문이다.
한 명의 기자는 힘이 약하지만 기자단은 힘이 세다. 한 명의 기자는 대통령을 부를 수 없지만 기자단은 대통령을 기자회견장에 부를 수 있다. 이를 하지 못한다면 대통령의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실 기자단 모두의 문제다. 국민은 일방적 연설, 홍보가 아닌 진실에 목마르다. 논란이 많은 외교안보 문제는 물론 이태원 참사에 따른 책임자 처벌문제 등 궁금한 것은 많은데 일방적 주장만 외신 보도만 봐야 하는 곤궁한 국민의 처지를 기자단은 헤아리고 있는가.
대통령의 기자회견 생략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기자단에서 이를 지적할 수 없고 질문할 수 없다면 대통령도 기자단도 직무유기를 하는 셈이다. 권력자의 일방독주를 바라만 보는 출입기자단이라면 해체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