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더랜드, '자본주의 미소'에 날리는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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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토일드라마 ‘킹더랜드’, 웃음도 사고 파는 시대의 단상

JTBC 토일드라마 '킹더랜드'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오직 고객을 위해 내 감정은 필요 없어요. 자신 없는 사람은 지금 나가면 됩니다. 없어요? 모두들 왕을 모실 준비가 됐나요? 고객 감동은 미소로 시작합니다. 우리 킹호텔에서만 볼 수 있는 하이엔드 명품 스마일. 헤르메스! 미소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방패예요. 아름답게 헤르메스!”

JTBC 토일드라마 <킹더랜드>에서 킹호텔 매니저인 김수미(공예지)는 새로 들어온 직원들을 교육하며 미소를 강조한다. 한껏 "헤르메스”를 외치며 과장되게 입꼬리를 올려 웃는 표정을 지으라고 한다.

호텔 리어, 승무원, 면세점 직원. <킹더랜드>에 등장하는 천사랑(임윤아)과 그의 친구들인 오평화(고원희) 그리고 강다을(김가은)은 모두가 ‘감정 노동’이 많은 직종에서 일하고 있다. 이른바 ‘JS(진상)’ 고객들이 이들이 일하는 곳에는 일상적으로 등장한다. 호텔에서 일하게 된 천사랑은 헬스클럽에서 운동은 안 하고 직원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성이나, 스타 유튜버라며 디럭스룸을 무상으로 업그레이드해 줄 걸 요구하는 손님을 마주하고, 승무원으로 일하는 오평화나 면세점 직원인 강다을은 기강을 잡겠다며 일상이 갑질인 선배들을 응대해야 한다. 물론 진상 손님들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생떼를 부리며 요구하는 그들 앞에서 이들은 애써 웃음 짓는 표정을 잃지 않고 “죄송합니다”를 연발해야 한다. 이른바 ‘감정노동자’들의 현실이 이들이 몸담고 있는 일의 세계에서는 느껴진다.

돈을 지불했고, 그 지불한 돈에는 ‘웃음’ 같은 감정 노동의 대가까지 포함되어 있는 사회. 그래서 이들은 웃는 대가로 돈을 벌지만, 그 속이 제대로 된 속일 리 없다. 호텔 리어에 대한 꿈을 갖고 킹 호텔에 들어온 천사랑이지만, 이런 진상 고객들을 마주할 때마다 꿈과는 너무 다른 현실 앞에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의 앞에 이러한 거짓 웃음을 경멸하는 신입 본부장 구원(이준호)이 나타난다. 그는 킹그룹 회장인 구일훈(손병호)의 아들로, 갑자기 엄마가 사라진 후 큰 충격을 받은 후로 외국에서 살며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그에게 누군가 보낸 우편물에 엄마의 인사기록 카드를 본 후, 엄마와 얽힌 진실을 찾아내려 킹 호텔로 돌아가려 한다. 그가 웃음을 경멸하게 된 건, 그토록 사라진 엄마를 찾았지만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고 자신이 처한 비극에는 아랑곳없이 모두가 웃는 얼굴로 그를 대했기 때문이었다.

JTBC 토일드라마 '킹더랜드'

거짓 웃음은 이처럼 양면성을 지닌다. 웃기 싫어도 돈을 지불한 고객들 앞에서 억지로 웃어야 하는 ‘감정 노동’의 측면이 있다면, 그 진심을 담지 않은 거짓 웃음이나 혹은 무표정함이 비극을 겪은 이들에게는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천사랑과 구원은 웃음에 대한 양극단에 선 인물들로 만난다. 고객인 구원 앞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배운 대로 ‘헤르메스’ 웃음을 짓는 게 천사랑의 일이지만, 구원은 그런 웃음을 짓지 말라는 고객이자 상사다. 그러니 두 사람은 만날 때부터 티격태격하는 갈등이 생겨난다.

그런데 이들의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감정노동 사회의 작동 시스템이다. 그래서 킹호텔 본부장으로 부임한 구원은 임직원들이 모인 식사자리에서 자신 앞에서도 ‘자본주의 미소’를 던지는 천사랑을 보며 이렇게 건배사를 한다. “우리 킹호텔을 앞으로 거짓웃음이 없는 호텔로 만들겠습니다.” 하지만 일터에서조차 노동으로 사고 팔리는 감정은 지극히 사적인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진짜 좋아하는 감정이 보여주는 웃음만큼 행복한 게 있을까.

<킹더랜드>라는 로맨틱 코미디가 그리고 있는 세계는 그래서 그저 회장 아들이라는 현대판 왕자님과 신입사원의 신데렐라 스토리에만 머무는 건 아니다. 거기에는 자본의 힘에 의해 갑과 을이 나뉘고, 심지어 웃음 같은 사적 감정조차 생존하기 위해 거짓으로 지어야 하는 사회에 대한 일침이 담겨 있다. 거짓이 아닌 진짜 미소를 짓게 되는 천사랑과 웃음 혐오를 극복해가는 구원의 멜로는 그래서 사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사회적 의미를 더하게 된다. 언뜻 뻔해 보이는 멜로가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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