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법률·절차 무시”...수신료 분리징수 강행에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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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의결...현업언론단체 “미디어 생태계 혼란 불가피”

[PD저널=엄재희 기자] TV수신료를 전기요금에서 분리해 징수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5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통과해 반발이 거세다. 방통위의 절차적 문제 등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통위 김효재 권한대행이 안건 상정을 밀어붙여 앞으로 법정 공방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방통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방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수신료를 징수할 때 자기 고유업무와 관련된 고지 행위와 결합하여 행할 수 있다’는 시행령 문구를 ‘결합하여 행해서는 아니 된다’로 수정하는 내용이다. 

정부·여당 측 위원인 김효재 위원장 직무대행과 이상인 위원이 찬성했고, 야당 측 위원인 김현 상임위원은 표결 전 퇴장했다. 지난 3월 9일 대통령실이 '국민제안' 토론을 붙인 지 118일, 권고안 발표된 지 한 달 만에 '속도전'으로 이뤄졌다.

김현 위원은 의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의결은 헌법과 법률 위반"이라며 반발했다. 그는 "지난 30년간 유지되어 온 통합고지 징수를 하지 말라는 것은, KBS와 그 지정을 받은 자의 영업 방법을 제한하는 것으로 이는 법률에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그러나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위 개정령안은 방송법은 물론이고 어떤 다른 법률에도 근거하지 않은 것으로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한 위헌이다"고 주장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간사를 비롯한 위원들이 5일 경기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관련 전체회의에 앞서 김현 상임위원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간사를 비롯한 위원들이 5일 경기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관련 전체회의에 앞서 김현 상임위원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5인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가 2인 결원 상태에서 중요 안건을 의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김 위원은 "현재 대통령이 야당 측 추천위원에 대한 임명을 미루고, 한상혁 위원장 면직 상태로 3인 위원만 남아 있서 방통위의 의사결정 구조는 왜곡되어 있다"며 "위원장 공석 상태에서 연장자가 위원장을 대항하고 이렇게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문제를 결정하고 강행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짚었다. 

헌법소원 및 가처분신청 등 법적 대응에 나선 KBS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방통위는 일반적인 입법예고기간 40일의 4분의 1에 불과한 10일의 예고만으로 통과시켰다"며 "행정입법에 필요한 사전영향평가나 규제심사, 법제처장의 협의 등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알려진 바도 없다"고 했다. 이어 "당사자인 KBS의 의견진술 요청은 이유 없이 거부됐고, 징수비용 급증과 현장의 혼란을 우려하는 한전의 의견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KBS는 입장문에서 징수 과정에서의 시청자 혼란 등 문제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KBS는 "방송법에 따라 수신료 납부 의무는 여전한데, 금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납부 선택권을 부여한 것으로 오도하여 수 많은 국민으로 하여금 체납자가 될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 정부가 바라는 '국민 불편 해소'인가"라며 "여전히 납부 의무가 있는 수신료를 직접 수납하러 온 징수요원과, 이를 안 내도 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전국 곳곳에서 부딪치고 갈등하는 실풍경이 정부가 그리는 청사진인가"라고 했다.

언론단체도 방통위의 TV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개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방송기자연합회·한국기자협회·한국영상기자협회·한국PD연합회는 "오늘 의결이 공영방송 수신료 분리고지를 넘어, 공영방송 전체와 한국 미디어 생태계의 대혼란을 일으킬 엄중한 상태로 받아들인다"며 "이제 전국언론노동조합 1만 5000 조합원과 현업단체 모든 회원들은 방통위뿐 아니라 윤석열 정권에 맞서 전면적 대응을 선언한다. 5년의 정권은 35년 투쟁의 역사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언론노조 KBS본부가 3일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을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PD저널

야권도 '언론탄압'이라며 반발에 가세했다. 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 4당으로 구성된 '윤석열 정권 언론장악저지 야4당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용산 대통령실 지시에 따라 '반쪽 방통위'가 공영방송의 근간을 허무는 데 앞장섰다"며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한다면 더 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분리징수 의결에 대한 의원들의 의견을 모을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방송사노동조합협의회가 주최한 '공영방송 수신료 분리징수의 법제도적 쟁점과 진단' 토론회는 향후 이어질 여러 법적인 쟁점이 불가피 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수신료를 내지 않을 경우 법률에 따라 3%의 연체료가 붙는다"며 "연체가 쌓이면 국세청을 통해 급여 압류 등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데, 수신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오인한 국민들은 어느 날 빨간색의 연체료 납부 고지서를 받게 될 수도 있다. 국민을 '불량한 사람'으로 만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KBS와 수신료 통합징수 위탁계약을 맺은 한전과의 법적 공방도 변수로 남아 있다. 김성순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는 "헌법재판소 등은 위탁 여부나 방법에 대해 사업자의 재량이라는 판시를 해왔고, 시행령이 시행된다고 해서 KBS와 한전이 따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KBS가 계약을 위반한 것도 아니고, 계약서상 '법률 변경 등'이 발생할 때 폐기변경이 가능하다고 되어있어서 만약 한전이 계약을 폐기변경하면 효력 유지 가처분 등 민사소송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한전도 한 해 400억원 이상의 위탁수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배임 문제도 있다"고 꼬집었다.

방통위가 시행령을 의결함에 따라, 이후 차관회의와 국무회의 의결, 대통령 재가를 거쳐 7월 중순 개정안이 시행될 전망이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유예 기간을 정하지 않아 공포 즉시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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