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대령을 인터뷰한 KBS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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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정권 위협속 공영방송 역할
딴지거는 보수언론...긴 싸움의 서막

지난 18일 고 채수근 상병 수사와 관련해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18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해병대사령부에서 열린 징계위원회에 출석하고 있다. ⓒPD저널

[PD저널=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20일이나 시간을 끌었지만 결과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수해 실종자 수중수색 작전 중 순직한 고 채수근 상병 사건 수사 관련 윗선 개입 의혹, 의혹을 부인하는 국방부가 의혹 내용대로 재검토 결과를 내놨다. 원래 경찰에 7월 31일 해병대 수사단의 보고서와 함께 이첩되었어야 할 사건은 31일 당일 갑자기 뒤집힌 지시로 21일이나 지나 이첩될 수 있었다. 이첩 보류 및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혐의 삭제 지시는 지휘계통에서 벗어난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국방부 차관으로부터 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를 통해 개인 의견 일방적 강요 등 간적접으로 전달됐다는 게 수사단장이었던 해병대 박정훈 대령의 입장이다. 개정된 군사법원법상 수사 주체인 경찰에게 기초적 사실관계 보고서를 작성했던 박정훈 대령은 ‘항명’ 혐의 피의자가 됐고 사건을 가져간 국방부는 21일 만에 ‘의혹’의 ‘부당한 지시’ 그대로 임성근 1사단장 등 6명을 혐의 사실에서 빼고 대대장 2명만 남겼다.

방통위원장 임명이 임박한 이동관 후보자와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특정 언론을 ‘가짜뉴스’ ‘반헌법세력’으로 규정하고, 의혹 보도에 수 억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마다하지 않는 척박한 언론 지형의 단면이 이 사태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했다. 박정훈 대령은 ‘항명’ 혐의와 별개로 해병대로부터 ‘견책’ 징계를 받았는데 그 사유가 8월 11일 승인받지 않은 언론 인터뷰에 나섰다는 사실이었다. ‘징계’의 ‘공범’이 KBS라는 점도 공교롭다. 박정훈 대령은 11일 KBS에 출연(<단독 인터뷰/“외압으로 느꼈다” 검찰단 수사 거부>)하여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직접 개별 사건으로 전화를 해서 이렇게 뭐를 빼라 말라 하는 것이 상당히 어떻게 제3자가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나는 일단 굉장히 외압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차관으로부터 온 메시지인데 하면서 쭉 읽어주시는데 거기 보면 똑같은 얘기였습니다. 해병대는 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안 하느냐라는 약간 질책성 문구도 좀 있었고” 등 외압을 증언했다. 문자메시지 발송을 끝내 부인한 신범철 차관은 김계환 사령관과의 통화는 결국 인정했고 그 과정에서 “해병대는 왜 말을 안 듣나”라는 말은 했을 수도 있다고 인정해야 했다.

국방부와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은 일제히 ‘혐의 삭제 지시’를 부인했으나 그와 별개로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된 해병대 수사단의 보고서를 보면 임성근 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 적용의 근거는 충분했다. 투입 당일이 되어서야 뒤늦게 구체적 수중수색 지시를 내린 점, 안전 조치가 아닌 복장과 경례 관련 지시만 내린 점, 장화가 아닌 전투화를 신어야 한다는 요청 등을 거부한 점, 19일 수색 관련 보고를 받고도 조사 과정에서 영결식에서야 수중 수색을 처음 들었다고 허위진술을 한 점 등이 직접적 과실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경찰이 다시 수사해야 함을 감안하면 이 정도 근거를 붙인 군 내 독립적 수사기관의 보고서를 이첩 승인한 후 이첩 당일 뒤집을 이유가 없다. 납득할 수 없는 개입 아래 ‘항명’ 피의자까지 된 박정훈 대령의 폭로가 군 내 공보 절차로 외부에 알려질 가능성도 전혀 없다. 그렇다면 이 ‘공익제보’가 이뤄질 경로는 언론뿐이다. 그 역할을 공영방송 KBS가 했다는 점, 또는 박 대령 측 이 KBS를 선택했다는 점은 정권으로부터 공영방송 지위를 위협받고 있는 KBS에게 특별한 의미다. 어쩌면 향후 몇 년간 볼 수 없는 ‘공영방송’의 역할일지도 모른다.

KBS '뉴스9'
KBS '뉴스9'

KBS의 반대편에서는 어떤 보도가 나오고 있는지 살펴보면 공영방송이 실종된 언론 지형의 황량함이 엿보인다. 공영방송이 궁지에 몰린 공익제보를 인터뷰할 때, 국민일보 <단독/“이종섭 장관, ‘초급간부 과실치사 혐의 적용 맞나’ 질문했다”…엇갈리는 진술>(8.9)은 국방부가 사태 발생 후 일주일이 지나 갑자기 앞세운 ‘임성근 사단장이 아닌 초급간부 혐의를 빼라 지시했다’는 스토리를 국방부발로 단독보도했다. 부당한 외압을 폭로한 이와 부당한 외압의 주체로 지목된 권력 사이에서 매체 간 선택의 갈림길이 돋보인다. 저 스토리는 21일 재검토를 마치고 결국 임성근 사단장의 혐의를 지운 국방부의 결정으로 인해 여론전에 불과했음이 들통났다.

좀 더 노골적으로 박정훈 대령, 즉 공익제보자를 공격한 사례들도 있다. 조선일보 <사설/‘사단장 과실 치사’도, ‘항명 수괴’도 다 지나치다>(8.12)는 “‘과실 치사’가 지나친 만큼이나 ‘항명 수괴’도 지나치다”며 양비론을 내세운 듯하지만 결론은 “박 수사단장의 행태도 옳지 않다. 군 검찰의 소환을 공개 거부하면서 정치인 같은 말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 같다’는 비판의 근거로는 KBS 출연과 국방부 항명 수사 거부를 들었다. 이는 공교롭게도 해병대의 징계 사유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기자수첩/‘채상병 조사’ 前수사단장 주변에... 꾼들이 달라붙었다>(8.16) 역시 “방송국으로 달려가 자기 주장을 펴는 것은 상식 밖”이라며 박 대령을 “정치적 행위”라 몰아세웠고 급기야 박 대령을 돕고 있는 군인권센터와 김정민 변호사를 “과장 선동 당사자” “꾼”으로 매도하며 박 대령의 ‘배후’로 지목했다. 공익제보의 통로인 언론과 시민단체를 ‘배후’ ‘꾼’ ‘선동’ ‘정치’ 등으로 규정하는 건 공익제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아주 오래된 사고방식이다.

이동관 후보자는 방통위원장 임명을 코앞에 두고 YTN을 상대로 2번에 걸쳐 8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나는 방송사고, 다른 하나는 부인의 과거 인사청탁 연루 의혹이다. 과거에 이미 방송 장악을 주도했다는 의혹이 짙은 후보자를 검증하기 위한 YTN 보도의 반대편엔 소송을 휘두르는 권력이 있다. 이는 일종의 신호탄이다. 사정기관이 동원된 초고속 찍어누르기식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와 뒤따른 수순인 경영진 교체, 각종 규제 완화를 예고한 이동관 방통위 체제에서 박정훈 대령이 찾아갈 KBS는 없다. 공직 후보자의 비위를 제보할 YTN도 없다. 우리 사회의 가장 중대한 공익제보 창구가 사라지는 것이다. 시민은 단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뿐인데 그 반대편엔 소송을 휘두르는 권력이 있다. 가까이 다가온 이 선명한 미래 앞에서 어쩌면 더 차분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시민사회와 언론이 사라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박정훈 대령을 인터뷰하고 윗선 개입을 집요하게 파고든 소수의 언론인들, 그 보도를 보며 군인권센터에 힘을 보탠 시민들은 어딘가에 있다. 다시 시작될 긴 싸움을 앞두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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