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 능력보다 사람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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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 한국형 슈퍼히어로물에 담긴 현실

디즈니+ '무빙'
디즈니+ '무빙'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공중부양 하는 초능력을 가진 아이. 서양의 슈피히어로물이라면 악당을 해치우고 영웅이 되는 길을 선택했을 수 있겠지만,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은 다르다.

한국형 슈퍼히어로물을 시도한 강풀 원작의 이 작품에서 이런 능력을 가진 봉석(이정하)은 고3이 되도록 그걸 숨기며 살아온다. 일부러 많이 먹어 살을 찌우고, 발에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가방에는 무거운 바벨을 넣고 다닌다. 감정 동요를 일으키면 저도 모르게 몸이 떠올라, 감정을 자제하기 위해 수시로 원주율을 외우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봉석. 그가 이렇게 된 건, 역시 초감각의 초능력을 갖고 한때 안기부의 특별부서에서 일하다 은퇴한 엄마 이미현(한효주)이 그렇게 교육시켰기 때문이다.

이미현의 남편 김두식(조인성)은 역시 초능력자로 봉석의 공중부양 능력은 그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이미현과 김두식은 이 땅에서 남다른 능력을 가진 자신 같은 존재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안기부 특별부서를 관리하는 민용준(문성근) 차장은 이 초능력자들을 국가를 위한 일이라며 살인까지 시킨다. 그렇게 이용하다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게 이들의 삶이다. 그러니 봉석이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무빙>이 한국형 슈퍼히어로라고 지칭할 수 있는 건, 이제 우리도 슈퍼히어로물을 그릴 수 있을 장도로 기술적, 예술적 능력을 갖추게 됐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여기 한국적인 현실을 깔아 놓고 있다는 의미가 더 크다. 즉 이 작품은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들이 등장하지만, 그걸 통해 그리고 있는 건 우리 사회가 남다른 능력을 이용하거나 심지어 오용하고 있는 현실이다. 굳이 봉석을 고3 학생으로 설정해 그려 넣은 것부터가 그렇다. 저마다 개성도 취향도 달라 하고 싶은 일도 또 잘할 수 있는 능력과 가능성들도 다른 게 학생들이어야 하지만, 우리네 고3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모두가 대입이라는 한 가지 짜놓은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그 틀 속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버려지는 게 고3들이 아닌가.

디즈니+ '무빙'

그렇게 고3 관문을 뚫고 대학을 가고 사회에 나와서 직장을 가져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저마다 하고 싶었던 꿈을 향해 가는 이들은 극소수다. 대부분 하고 싶지 않아도 배운 능력으로 그럭저럭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게 우리 사회가 보통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이다. 이런 현실은 고시를 통과해 법조인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기도 하는 엘리트들도 다르지 않다. 좀 더 많은 돈을 벌고 그만한 권력을 누리는 게 다르겠지만, 이들 역시 특정 권력 집단에 이용되거나, 권력의 욕망에 눈멀어 자신을 잃어버리거나, 이용가치가 사라지면 가차 없이 버려지는 삶을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빙>의 이미현과 김두식이 그들의 특별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안기부가 요구하는 틀에 맞춰진 일에만 이용되다 버려지는 이야기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남다른 공감대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가진 건 몸뚱어리 하나밖에 없는 삶은 어떤가. 김두식과 함께 콤비를 이뤄 안기부의 일들을 함께 해온 장주원(류승룡)이라는 캐릭터는 바로 이 우리 사회에서 몸 밖에 가진 게 없는 삶을 은유한다. 금세 상처가 아무는 회복 능력을 가진 이 초능력자는 건달로 살아가며 형님으로 모시는 보스를 위해 온몸에 칼을 맞은 채 싸우는 삶을 살아온다. 하지만 조직에도 배신당하고 그 능력을 알아본 민용준에 의해 안기부로 들어와 이용되는 인물이다.

무빙>은 그래서 초능력자들이 국가를 위한 공적인 일에 뛰어들어 무언가를 해내는 이야기만큼 이들의 지극히 사적인 사랑이야기에 집중한다. 봉석이 좋아하는 희수(고윤정)와의 애틋한 청춘멜로가 그렇고, 이미현과 김두식이 자신들의 초능력을 서로에 대한 사랑을 위해 쓰는 멜로가 그러하며, 장주원이 안기부로 들어오기 전 만났던 지희(곽선영)와의 느와르 같은 사랑이 그렇다. 결국 이들 초능력자들이 진짜 원하는 건 사랑 같은 인간적 삶이었다는 걸 그림으로써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능력’만이 유일한 이용가치처럼 취급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봐야 하는 건 다름 아닌 ‘사람’이라는 것. 결국 사회를 행복하게 하는 건 능력이 아니라 인간적인 삶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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