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에 대한 사색과 체험의 공간, '뮤지엄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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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의 향연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문화예술공간 '뮤지엄 산'

[PD저널=박재철 CBS PD] 모네가 살아있다면, 오늘도 그는 지베르니의 작은 연못을 찾았을 테다. 세 개의 이젤에 캔버스 세 개를 나란히 세워두고 연못 위에 핀 꽃을 그렸을 것이다. 캔버스에 담긴 대상은 한결같다. 꽃. 그러나 꽃의 색채와 분위기는 제각각이다.

빛은 시간이 흐르면서 대상에 드리운 색채를 변모시킨다. 새벽녘과 한낮, 저녁 어스름, 빛이 깃드는 각도와 강도는 달라진다. 매 순간 대상의 색채는 빛의 변화에 따라 미세하게 바뀌고, 그 변화는 나란히 세워진 세 개의 캔버스 위에 ‘인상’적으로 표현된다.

모네는 꽃이 아닌 빛을 그리려 한 화가다. 그는 30년 동안 꽃의 빛을 그렸다. 이것이 그 유명한 모네의 ‘수련 연작’이다. 모네는 같은 이유로 건초더미와 포플러, 루앙 대성당 등을 연작 형태로 선보인다. 

그가 보기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고유한 색상이 없다. 때와 장소, 보는 이의 위치와 시각에 따라 색은 유동적인 것이 된다. 그의 말마따나 “빛이 곧 색이다”

모네 '수련 연작'

최근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을 취재했다. 이미 입소문이 많이 난 곳이라 평일에도 사람들로 붐볐다. 수려한 경관을 품고 있는 이 문화공간을 누군가에게 설명한다면, 아마도 그 열쇠말은 ‘빛’이 될 듯싶다.

우선, 이곳을 설계한 안도 다다오는 ‘빛’을 건축물 안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작가 중 하나다. 건축에 있어서 그의 미학적 낙관은 ‘노출 콘크리트’에 자주 찍힌다. 많은 경우, 외관의 노출 콘크리트를 보고 안도 다다오 건축을 떠올린다. 하지만 빛을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설계도 안에 독창적으로 끌어들이려는 구상과 노력 속에 그의 진가가 있다. 목재나 철재 같은 사물성을 띤 십자가 대신 자연광으로 십자가를 형상화한 <빛의 교회>는 그 직접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세계적 명성을 얻기 전, 일본 오사카 밀집 지역에 지은 <스미요시 주택>은 그가 빛을 건축의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촘촘히 어깨를 붙이고 있던 세 채의 건물 중 한 채를 과감히 중정으로 만든다. 그 중정을 통해 건물 내부로 충분한 빛이 들어오게끔 했다.

그에게 빛은 무엇이었을까? 뮤지엄 산 김용민 학예사의 설명이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에서 빛은 자연을 표상합니다. 자연은 사계절 우리들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죠. 자연은 곧 변화입니다. 그러나 한번 지은 건축물은 한곳에 고착되어 있죠. 빛을 건물 안으로 들이면 그 자연의 변화가 건축물에 반영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빛은 그 일조량과 강도, 다른 사물들과의 반사각 등을 통해 건물에 시간을 새겨 넣습니다. 안도 다다오가 빛이 들어오는 기하학적 공간을 자신의 설계에 꼭 넣는 것은 그런 이유에 섭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문화예술공간 '뮤지엄 산'

뮤지엄 산이 빛에 대한 사색과 체험의 공간인 점은 무엇보다 국내 유일의 제임스 터렐 전시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임스 터렐은 빛을 예술적 오브제로 삼은 공간 설치 작가다. 그의 대표작 <스카이 스페이스>나 <호라이즌 룸>은 시시각각 변하는 빛이 공간에 들어올 때 그곳에 있는 감상자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체험케 하는 작품들이다. 다채롭고 화려한 인공 광선의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아름다움 대신, 변화하는 빛의 시간표에 따라 감상자도 마음의 템포를 맞춰야 작가의 미학적 메시지를 수신할 수 있다.

“제임스 터렐에 있어서 빛은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빛을 ‘영성’으로 해석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빛이 들어오는 공간은 영성이 인간 내면에 깃드는 ‘임재’의 장소가 됩니다. 예술을 통한 개인의 종교적 체험과 관련된 풀이죠. 두 번째는 빛을 ‘타자’로 이해하는 겁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냅니다. 낯선 이방인을 환대하고 그들과 무언가를 나누는 행위는 실천적 윤리적 측면에서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행위와 유사합니다. ‘네 이웃에게 행하는 것이 곧 나에게 하는 일이다’ 성경의 이 구절을 떠올려 보시죠.”

제임스 터렐 '호라이즌 룸'

클로드 모네와 안도 다다오, 그리고 제임스 터렐. 빛에서 출발해 평생 빛을 변주하며 자신의 예술적 여정을 전개해나간 작가들. 그들이 빛이라는 화두를 안고 마지막에 도착할 종점은 어디일까? 빛에 대한 천착이 그들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빛은 동사다. 빛은 움직임이고 과정이고 변화다.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다른 존재와의 만남에 따라 달라지는 다채로운 양상이다. 그런 빛의 속성을 포착한다는 것은 작품에서 혹은 삶에서 ‘고정 불변’의 태도를 버린다는 뜻이 아닐까. 그렇다면, 집착과 강박에서 조금의 거리두기는 가능할 것이다. 빛의 예술가들은 작품 향유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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