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문의 검’, 국가의 존재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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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 판타지로 담은 국가 탄생기

tvN '아라문의 검'
tvN '아라문의 검'

[PD저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국가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아니 왜 국가라는 존재가 필요하게 됐을까. tvN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은 이러한 질문에 다양한 문화인류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답을 하는 드라마다. <선덕여왕>부터 <뿌리 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같은 작품으로 사극 작가로서 한 획을 그어온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야심작으로 2019년 <아스달 연대기>로 그 포문을 연 후 올해 <아라문의 검>으로 돌아왔다.

굳이 ‘야심작’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사극 작가들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선사 시대의 서사를 판타지로 그려내려는 야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 없어 말 그대로 맨땅에 하나하나 서사의 말뚝을 박고 이야기를 그려나가야 하는 작품이지만, 결코 허무맹랑한 공상으로 그 빈 지대를 채운 그런 드라마는 아니다. <아라문의 검>은 신화나 설화를 해석하고, 문화인류학이 풀어낸 국가 탄생과정 같은 이론들을 바탕으로 그 뼈대를 세우고 있다.

즉, <아라문의 검>은 일찍이 청동기술을 바탕으로 정복전쟁을 통해 문명을 키워온 아스달과, 그들의 약탈 전쟁에 핍박받아온 와한족이나 아고족 같은 부족들이 연합해 맞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과정에는 아스달을 통치하는 왕 타곤(장동건)이나 그 곳에서 종교적 힘을 키워낸 제사장 탄야(신세경) 그리고 부족 연맹을 이끄는 ‘재림 이나이신기’라 불리는 은섬(이준기)이 등장한다. 타곤이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국가를 통치하려 한다면, 탄야는 이 과정에서 생겨날 무고한 희생들을 막기 위해 종교 지도자로서 맞서고, 은섬은 핍박받던 부족들을 해방시키겠다는 목적으로 아스달의 타곤과 싸운다. 인물들의 복잡한 욕망이 얽힌 서사의 반전들이 이어지지만, 이를 관조적으로 바라보면 그것이 바로 국가가 탄생해온 과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tvN '아라문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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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국가는 필요악처럼 탄생한다. 즉 피가 끊이지 않는 아스달이라는 문명과 부족들의 전쟁 속에서 이를 잠정적으로 끝낼 수 있는 건 국가라는 보다 큰 틀로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일이다. 그렇게 묶어낸 국가는 적어도 그 안에서는 한 나라라는 틀 안에서의 시스템에 의해 혼돈이 멈추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이건 우리가 이미 역사를 통해 배운 것처럼, 또 다른 국가의 탄생과 더불어, 국가과 국가 사이의 더 큰 전쟁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점에서 필요악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저마다의 욕망이 부딪치고, 또 서로 다른 부족이라는 차이가 만들어내는 질시와 대결 속에서 어떻게 국가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칼과 방울 그리고 거울의 상징인 세 아이들이 한날한시에 태어나 결국 이 세상을 끝낼 것이다.” <아라문의 검>은 이런 신탁을 통해 국가의 탄생이 칼과 방울, 거울로 상징되는 세 힘에 의해 가능했다는 추정을 내놓는다. 은섬으로 상징되는 칼은 실질적으로 적을 무너뜨리고 아군들을 결집시키는 힘으로서의 무력을 의미하고, 탄야로 상징되는 방울은 이민족들까지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종교적 힘을 의미한다. 그리고 은섬의 쌍둥이인 사야(이준기)로 상징되는 거울은 국가의 운영을 위한 부와 더불어 타자를 받아들이는 동질감이나 공감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이 세 가지 힘이 더해져야 국가 같은 거대한 시스템이 기능하게 되고, 그 안에 사람들이 결집해 한 나라라는 결속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tvN '아라문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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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칼과 거울을 상징하는 은섬과 사야가 쌍둥이라는 점이다. 두 인물은 한 배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 헤어져 각각 부족연맹을 이끄는 이나이신기와 아스달의 총군장이라는 적으로 만난다. 하지만 이들은 얼굴이 똑같아 서로 역할을 바꿔 상대방의 삶을 경험하게 되고, 그걸 통해 동맹의 길을 찾게 된다. 칼과 거울이 서로를 마주보고 견제하며 동맹의 길을 찾는 이런 구도는 지금의 국가에도 의미심장한 은유가 아닐 수 없다. 강력한 권력만큼 중요한 게 그 권력이 과연 나만이 아닌 타자에게도 올바른 것인가를 반추하는 거울 같은 기능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이건 국가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기본적인 균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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