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수신기가 사라진 시대, 새로운 생존 전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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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연합회 주최 '오디오 콘텐츠의 글로벌 현황과 대안 모색' 세미나
'라디오데이즈 아시아 2023. 콘퍼런스 참가 라디오 PD들 발표자로 나서

24일 서울 상암동 YTN 스퀘어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오디오 콘텐츠의 글로벌 현황과 대안 모색' 세미나 ⓒPD저널

[PD저널=엄재희 기자] "기술은 협력하고, 콘텐츠에서 경쟁하자(agree on technology, compete on content)"

디지털 기술 변화로 전통 매체인 라디오의 입지가 점차 줄어드는 가운데, 24일 '오디오 콘텐츠의 글로벌 현황과 대안 모색' 세미나 자리에 모인 라디오 PD들이 공감을 표한 문장이다. 지난 9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세계 최대 라디오 콘퍼런스 '라디오 데이즈 아시아 2023'(Radio Days Asia 2023)에 다녀온 10명의 PD가 해외 오디오 콘텐츠 경향을 공유한 이번 세미나는 40여 명의 현직 PD들이 참여해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라디오 수신기의 설 자리가 사라지는 시대, 이를 대신할 새로운 기술과 라디오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

통합 라디오 플랫폼...'생존을 위한 선택'
하나의 플랫폼에서 여러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는 통합 라디오 플랫폼 구축의 필요성이 제기된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KBS라디오 '콩(KONG)', MBC라디오 '미니(mini)', SBS '고릴라' CBS '레인보우(Rainbow)' 등 방송사가 개발한 개별 앱이 있지만, 청취자가 각각 따로 설치해야하는 불편함 탓에 활성화되진 못하고 있다. 이에 지난 2021년 지상파 3사와 전국 37개 라디오 사업자가 통합 라디오 플랫폼 구축에 나섰으나, 각 사의 사정이 다르다 보니 결실을 맺진 못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통합 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홍서령 KBS PD는 "각 방송사가 원하는 앱 기능이 다르고 이해관계도 상충하는 상황에서 이를 조율하는 통합 기구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호주는 상업 라디오 채널이 모인 CRA, 공동체 라디오 채널이 연대한 CBAA가 '뭉치면 산다'는 구호 아래 앱 개발을 이끌며 통합 플랫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은 협력하고 그 안에서 내용으로 경쟁하자는 것"이라며 "통합 라디오 플랫폼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는 통합 라디오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내보내고 있다. 인도네시아 <RRI PLAY GO>와 호주의 <커뮤니티 라디오 플러스>(Community Radio PLUS), 일본의 <라디코>(Radiko),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서비스되는 <라디오 플레이어>(Radioplayer)가 대표적이다. 

Radioplayer 설명 자료 ⓒradioplayer
영국의 'Radioplayer' 설명 자료 ⓒRadioplayer

홍 PD는 "인도네시아의 RRI는 전국에 있는 청취자가 각 지역 라디오을 선택해 들을 수 있고, 호주의 <커뮤니티 라디오 플러스>는 400여 개 이상의 공동체 라디오의 통합 플랫폼으로 실시간 또는 팟케스트 형태로도 들을 수 있는 앱"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일본의 라디코는 100여 개 방송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청취자가 속해 있는 지역 라디오 방송은 무료로 들을 수 있고, 구독료를 지불하면 모든 방송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홍 PD는 "라디오데이의 메인 스폰서인 라디오플레이어는 2011년 BBC의 제안으로 영국, 프랑스 등 157개 라디오 방송을 모두 청취 가능한 앱으로 개발됐다"며 "자동차에서 들을 수 있는 앱, 스마트 스피커 앱, 스마트폰 앱으로 나뉘어져 있고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통합 라디오 플랫폼이 아날로그 방송과 대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서는 "라디오데이의 많은 연사들이 기존 라디오와 통합 라디오 플랫폼은 함께 존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통한 청취율 조사 모델 개발
국내 라디오 청취율 조사 방법에 대한 문제의식과 해외의 새로운 조사 방식도 주요 관심사였다. 현재 국내 라디오 청취율 조사는 청취자 3000여 명 대상 전화면접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김태경 cpbc PD는 "라디오 청취 패턴이 다양화되고 있는데 전화면접으로만 조사가 진행돼 결과를 받고나면 신뢰할만한 데이터인지 의문이 든다"며 "앞으로 사람들은 라디오를 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할 것이기 때문에 조사 방법의 다각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새로운 청취율 조사 방식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시장 조사 분석 전문 기업 GFK의 '라디오 360'이 대표적이다. 호주에서 처음 시행된 하이브리드 청취율 조사 모델로 조사 대상만  6만여 명에 이른다. 특히, '미디어워치' 장비로 청취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이 눈에 띈다. 조사 대상자가 시계 형태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착용하면 주변 라디오 소리를 인식해 데이터화하는 것이다. 

GFK Radio 360 모델 설명자료@GFK
GFK Radio 360 모델 설명자료@GFK

서재의 CBS PD는 "미디어워치가 주변 소리를 녹음한 뒤 오디오 매칭 기술을 통해 해당 시간대의 해당 방송을 인식해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술"이라며 "라디오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앱이나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데이터도 수집해 청취자가 여러 디바이스로 한 채널을 수신할 때도 구분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이어 "GFK가 최종적으로 출시한 라디오360 모델은 온·오프라인 설문조사와 미디어워치까지 포함한 일종의 패키지 개념"이라며 "디지털 플랫폼 청취층의 규모를 확인하고 청취자의 다양한 메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고 전했다.

커지는 인카 인포테이먼트 시장...자동차 제조업체와 협력 필요
방송통신위원회의 국내 라디오 청취 행태 조사에 따르면, 라디오 이용자의 77.3%가 자가용에서 청취했다고 답할 만큼 자동차는 라디오의 주 이용장소다. 따라서, 라디오 업계도 자동차 내에서 멀티미디어 및 정보 제공 기능을 통합 서비스하는 '인카 인포테이먼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국내 자동차 업계들은 자동차 내 라디오 물리 버튼을 없애고 '미디어'(MEDIA) 버튼으로 대체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 중 27.6%인 708만대가 커넥티드 카다. 배민주 아리랑 국제방송 PD는 "새로 출시되는 차량에서 미디어 버튼을 누르면 여러 가지 어플 중 라디오가 하나로 등장한다"며 "차량 내 디스플레이어에 나오는 유튜브, 스포티파이, 팟케스트, 라디오들이 청취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라디오는 음질뿐만 아니라 디자인, 메타 데이터를 중시해야 한다"며 "그러나 가장 큰 위협은 방송국과 제작자들이 정작 이러한 변화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차그룹-엔비디아 커넥티드 카 운영체제(CCOS) ⓒ현대자동차

배 PD는 라디오 플레이어 CEO가 제시한 라디오 업계 대응 방안 다섯 가지를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 글로벌 라디오 방송사 및 팟케스터와 협력하여 전 세계 청취자를 대상으로 확장 △ 인공지능 기반 콘텐츠 등 신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혁신 △ 라디오 차량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필수 요소가 될 수 있도록 업계와 기술 협력 △ 차량에서 청취 형태에 대한 통계 분석 활용△ FM라디오와 IP스트리밍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방송은 청취자 선호도와 네트워크 가용성에 따라 FM과 인터넷 스트리밍 사이에서 원활한 전환이다.

배 PD는 "특히, 자동차 제조 업체와 기술 협력이 필수적인데, 라디오 업계 전체가 필요한 기능을 협의하고 제조 업체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짚었다.

AI 기술과 라디오의 접목
AI기술 활용도 주요 이슈 중 하나다. 박정언 MBC PD는 "라디오가 5년 후에도 지금 형태로 존재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아닐 것"이라며 "라디오데이에서 지금 우리가 아는 라디오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공감했고, 그 해답으로 나온 것은 'AI 기술'"이라고 말했다.

이어 "말레이시아 플라이(Fly) FM은 음악 프로에서 버츄얼 인플로언서에 라디오 진행을 맡겼는데, 일본에서 유학하고 왔다는 나름의 세계관도 갖췄다"고 소개했고, "중국 CGTN은 자사 대표 앵커를 AI로 만드는 등 AI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만 "대부분 AI에 의해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짚었다.

지난 9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Radiodays aisa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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