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참사 1주기, ‘망각’을 부추긴 언론과 끝내 붙잡은 언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인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분향소 옆에 시민들이 추모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뉴시스

[PD저널=이봉우 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윤석열 대통령이 10.29. 참사 1주기 시민 추모대회에 참석하는 대신 유년 시절 다녔던 교회를 찾았다. 교인들조차 없이 참모와 여당 지도부를 앞에 두고 ‘애도 메시지’를 따로 촬영하여 ‘가짜 애도’라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참사 직후 희생자들의 이름도 영정도 없는 ‘관제 애도’ 논란 속에도 느닷없이 기독교, 불교, 천주교 3대 종교 행사에 참석해 ‘비공개 애도 메시지’를 던졌던 1년 전 태도에서 달라진 게 없다는 의미다.

10.29 참사 1년 치 보도 분석해보니...
우리 언론도 마찬가지다. 보도의 양과 질에서 1년 전과 달라진 바를 찾기 어렵다. 참사 직후 빠르게 선포된 국가애도기간(2022.10.30.~11.5.)과 경찰 특별수사본부 수사(2022.11.1.~2023.1.13.)에 빠르게 식어간 언론 보도는 1년이 되도록 충분하게 회복된 적이 없다.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올해 10월 29일까지 ‘이태원 참사’를 언급한 54개 언론사의 총 보도량은 53,591건인데 이중 절반이 넘는 29,059건이 참사 직후인 지난해 10월~11월에 집중됐다.(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기준)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올해 10월 29일까지 ‘이태원 참사’를 언급한 54개 언론사의 총 보도량

경찰 특수본 수사가 막 끝나고 특별법과 이상민 장관 탄핵을 국회가 논하던 올해 2월 이미 2294건으로 떨어진 보도량은 3월부터 10월까지 800~1300건을 오갔다. 그나마 1천건을 넘긴 것도 특별법이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6월, 이상민 장관 탄핵안이 기각된 7월, 1주기를 맞이한 10월 3차례뿐이다. 이런 무관심은 진상 및 책임 규명을 줄기차게 요구한 유족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공격했던 정부‧여당의 태도와 비슷하다. 지난 1년간 경찰 특수본 수사가 용산구청, 용산경찰서에서 수사가 멈췄다는 비판이 이어졌으며 배턴을 넘겨 받은 검찰 수사 역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기소 여부조차 질질 끌어 논란이 됐다.

이는 특별법 제정 요구로 이어졌고 책임지는 사람 없는 상황에서 2월 국회가 의결한 이상민 행안부장관 탄핵소추안은 7월 25일까지 심리가 이어지며 결국 기각됐다. 그 사이 유가족은 꾸준히 정부와 서울시의 불통, 생존자 및 유족 지원 부족을 호소했고 끊임없는 2차 가해에 생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2번째 참사가 벌어졌다. 이렇게 1년간 참사가 현재진행형이었으나 올해 2월 이후 주요 언론사들의 보도량 그래프는 놀라우리만치 잠잠한 보합세를 그린 것이다.

'정치화'된 건 유족이 아니라 언론
언론 보도 사례 중엔 가슴 아픈 수미상관도 엿보인다. 참사 직후 서울경제 ["토끼 머리띠 남성이 '밀라' 외쳤다" 증언에…CCTV 뒤진다]2022.11.1.등 참사 책임을 ‘뒤에서 밀라고 외친 토끼 머리띠 남성’으로 돌렸던 허위정보가 보도로 유포된 바 있다. 1주기를 코앞에 두고는 매일경제 [핼러윈때 ‘이 복장’ 입으면 징역형…“이태원 참사 키웠다” 지적도]10.25.와 같은 보도가 쏟아졌다. “‘이태원 압사 사고’ 당시 일부 핼러윈 참가자들이 경찰복이나 소방복을 입고 다니면서 사고 규모가 커졌다는 지적”“경찰복이나 소방복을 입은 일반 시민들이 핼러윈 축제 현장을 돌아다니면 안전대책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며 이번엔 참사 원인을 ‘경찰 코스프레한 시민들’에게 돌린 보도들이다.

진상 및 책임규명 요구를 이념적으로 오염시키며 유족을 모욕한 보도들도 꾸준하다. 참사 직후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이태원 참사’의 정치화…고인과 유족을 두 번 죽이는 일]2022.11.5.의 경우 “예전에는 폴리스라인을 치고 한쪽으로만 통행하게 했다”는 김어준 씨의 주장을 “한국판 괴벨스”로 치부하면서 “좌파들은 이번 이태원 참사를 제2의 세월호로 만들려고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지금 이태원 참사에 대해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애도하지 못하는 것도 그때의 후유증 때문”“오랜 기간 좌파들에게 이용당한 나머지, 아직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진상 규명을 외치는 분들이 상당수”라며 세월호‧이태원 참사 유족을 한꺼번에 ‘좌파 선동에 속아 일상으로 못 돌아간 사람들’로 폄훼했다.

10.29 이태원참사 1주기인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기억의 길에서 시민이 추모메세지를 적고 있다 ⓒ뉴시스
10.29 이태원참사 1주기인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기억의 길에서 시민이 추모메세지를 적고 있다 ⓒ뉴시스

1주기 즈음하여 이런 심각한 수위의 보도가 잦아드는 와중에도 서울신문 [[사설] 참사 1주기, 어떤 명분의 정쟁도 국민 용납 못할 것]10.30처럼 유족과 시민들의 ‘추모’ 및 ‘진상규명’ 노력을 ‘민주당의 정쟁’으로 규정하며 비슷한 취지를 보인 기사들이 이어졌다. 이 기사의 경우 “전국 시도당에 공문을 내려 조직적 참여를 요청했고 당원들에게 1만원씩 내고 추모대회 추진위원 가입을 요구했다”며 이를 “민주당이 추모행사를 정치집회로 삼으려는 의도”로 규정했으나 추모대회 추진 위원 가입을 시민들에게 요청한 건 유가족들이며 이는 1주기 추모대회 준비는 물론 서울시가 부과한 분향소 장소 무단점유 변상금 등 일상과 생업을 잃어버린 유족의 인간적 삶을 지원하는 목표를 지닌다. 이마저 ‘정치집회’로 보였다면, 지나치게 ‘정치화’된 건 유족이 아니라 언론이다.

진상 파헤친 언론보도도
언제나 그렇듯 제 역할을 한 극소수의 매체가 있다. 진상 및 책임 규명 관련에 힘쓴 보도들인데 놀랍게도 그 출발점은 부실하다는 비판에 시달린 경찰 특수본의 수사 기록들이다. 참사 직후 별도의 진상규명 작업 없이 곧바로 시작된 경찰 수사는 수사 주체의 정보 독점으로 인해 언론 보도량이 급감하는 데에도 일조했으나 1년이 지나서는 참사 책임 주체인 경찰조차 외면할 수 없었던 진상의 단면을 폭로하는 역할을 했다. 경향신문 [[단독]특수본, 내부 보고서에 “김광호·이임재 기동대 배치 안 해 사고 키웠다” 적시]10.24.의 경우 참사 직후 언론과 정부, 여당이 ‘괴벨스식 가짜뉴스’로 치부한 과거 경찰의 인파 관리 이력을 경찰도 인정했다고 전했다. 특수본 보고서에서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경찰관기동대와 의경중대 등 경찰부대가 동원된 연도는 2017년, 2020년, 2021년으로 확인”“(기동대 배치 목적은)‘코로나19 방역과 함께 보조 업무로 안전사고 예방과 질서 유지 목적도 있었음이 명백히 확인된다’고 적시”했다는 것이다.

MBC [[단독] "압사당해요" 신고 빗발칠 때‥"집회에 간첩침투" 첩보만 신속전파]10.23.의 경우 참사 현장의 신고는 경찰 무전으로 최장 7초간 비명소리가 들렸음에도 상당 부분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과 달리, 대통령실 인근 집회에서는 "경찰복, 군복을 입은 간첩이 침투해, 집회 참가자를 살해하고 윤석열 정부 경찰에 뒤집어씌우려 한다"는 황당한 경찰 내부 첩보에도 “형사들은 5분 만에 현장 도착했고 다시 6분 만에 조치했다는 보고까지 일사천리”였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마포역에서 국회까지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 4대 종교인들이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 촉구 및 300일 추모'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뉴시스<br>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 4대 종교인들이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 촉구 및 300일 추모'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외에도 △기동대 배치 부재의 책임이 참사 전날까지도 직보를 주고 받은 이임재 전 용산서장과 김광호 서울청장 모두에게 있다는 특수본의 잠정 결론, △경찰청과 서울청 112상황실 등 상부와 부하에게 모두 책임을 전가했으나 경찰 수사보고서에서는 참사 전 인파 사고 위험성을 충분히 보고 받고 직접 지시까지 했던 김광호 서울청장의 책임, △참사 당일 대통령실 집회 등 대통령실 이전으로 인한 격무와 그에 따른 안전 관리 부실을 인정한 경찰 관계자들의 진술 등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갖은 정치적 공격과 2차 가해로 많은 사람들이 조마조마하게 확인을 기다렸던 참사의 진상이 일부 매체들의 노력으로 공개됐다.

물론 소수 매체의 노력으로 바뀌는 건 없다. 유족이 이미 누더기가 됐다면서도 최소한의 진상규명을 위해 찬성한 특별법이 연말에 본회의를 통과해도 정부, 여당, 언론의 정치공세는 계속될 것이며 어쩌면 그 공세만으로 참사 보도가 채워질지도 모른다. 관건은 ‘망각’이다. 자연스러운 사람들의 ‘망각’을 끝까지 붙잡는 것이 언론인데, 그때 지금 참사의 진상을 보도한 소수 매체들의 활약이 빛날 것이다. 누군가 기억하고 있다고, 누군가는 여전히 참사의 진상과 책임을 파헤치고 있다고 외치는 언론이 하나라도 있을 때, 유족의 마음은 조금이나마 풀릴 것이고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를 지켰다고도 말할 수 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