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몰아친 방송계 구조조정 '칼바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JTBC 80여명 희망퇴직으로 회사 떠나...TBS 이달부터 희망퇴직 실시
KBS 임금 삭감 및 명예퇴직 검토...아리랑국제방송도 인건비 절반 삭감에 '뒤숭숭'
수신료 분리징수 · 공적 재원 축소에 광고시장까지 '꽁꽁'...탈출구 안보여

ⓒpixbay
ⓒpixbay

[PD저널=엄재희 기자] 방송계에 희망퇴직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JTBC가 80여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단행한 데 이어 TBS는 지난 3일부터 112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다. TV수신료 분리고지 시행을 앞둔 KBS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광고 시장 침체와 수신료 분리 징수 및 정부·지자체의 공적 지원 축소 등으로 경영난에 빠진 방송사들이 인력 감축에 나서면서 방송 노동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 경영 개선 실패...JTBC 80여명 희망퇴직
방송계 희망퇴직의 첫 포문을 연 곳은 JTBC다. JTBC는 지난해 10월 보도부문을 포함해 JTBC와 JTBC미디어텍 등 방송 계열사 인력을 대상으로 대규모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2023년 520억원의 적자가 예상되고, 누적부채 3400억원을 해소할 방안이 없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JTBC는 지난 2019년 252억원 영업적자로 돌아선 후 2022년을 제외하고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경영악화를 개선하지 못했다. 이 희망퇴직으로 JTBC 직원 80여명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사가 한꺼번에 80여명을 내보내는 일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 

방송업계는 JTBC가 수익 구조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JTBC는 중앙그룹이 만든 콘텐츠 제작·유통 스튜디오 SLL로부터 방영권을 구매하고 TV 광고를 판매해 수익을 내고 있다. JTBC의 '아는형님'과 '재벌집막내아들' '스카이캐슬' 등 주요 인기 프로그램의 IP는 SLL이 가지고 있다. SLL은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 62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했지만, JTBC는 TV 광고 시장의 침체에 직격탄을 맞았다.

JTBC 소속 한 PD는 "최근 예능 쪽 메가히트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다 보니 전반적으로 위기가 왔다"며 "구조조정을 했다고 회사가 단기간에 좋아지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 공적 지원 축소에 허덕이는 방송계
TBS는 3일부터 이달 18일까지 근속 1년 이상 20년 미만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희망퇴직 수당은 퇴직 당시 기본급의 2개월분으로 책정됐다. 희망퇴직 목표 인원은 112명이다. TBS는 지난해도 희망퇴직을 실시해 이미 40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TBS는 지난달 22일 'TBS지원 폐지조례' 시행 연기와 93억원 규모의 출연금이 편성되면서 한숨 돌리는듯 했지만, 서울시는 올해 3월 180명의 인건비만을 편성했다. TBS에는 현재 290여명이 종사하고 있는데, 사실상 정리해고를 하라고 압박한 꼴이다. 결국, TBS이사회는 지난달 27일 이사회를 열고 조기 희망퇴직을 결정했다.

TBS 내부에서는 방송사를 살리기 위한 정리해고가 아니라, 매각하기 위해 인력을 축소하는게 아니냐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TBS 한 이사는 "TBS 사측은 '지원 폐지조례' 연기를 조건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 같다"며 "잔류 인원을 180명으로 정한 이유에 대해 '매각하기 좋은 인원'이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PD저널>이 입수한 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정태익 대표이사는 당시 이사회에 출석해 "어떤 구매자가 나타나서 저희 방송사를 구매하거나 관심을 가질 때 양적 규모가 200명 이하일 때 인수가 가능하다는 계산에서 180명이 정해진 것"이라며 "운영인력이 부족할 경우 관리직에 있는 사람을 현업에 돌려서라도 방송을 해야하는 엄혹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희 계획은 4~5개월 안에 완벽하게 새롭게 독립하기 위한 기본 구조를 갖추는 것"이라고 밝혔다.

ⓒTBS
ⓒTBS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인 아리랑국제방송도 상황이 여의찮다. 지난달 2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2024년 정부의 아리랑국제방송 지원 예산 중 직원 인건비를 116억원에서 58억원으로 50% 삭감했다. 지난달 28일 열린 이사회에 아리랑국제방송 사측은 문체부가 1월 중 방발기금 등을 통해 추가 지원하겠다고 입장을 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배승현 언론노조 아리랑국제방송 지부장은 "사업비는 그대로인데 인건비만 반토막 나서 충격이 더 큰 상황"이라며 "당장 6월이 되면 인건비 지급이 어려워지는데 정부를 상대로 임금체불 소송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회가 나서서 추경을 편성해야 하지만 총선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 2월 수신료 분리고지 시행 전망...'시계제로' KBS
공영방송인 KBS에도 적색등이 커졌다. KBS 경영진은 지난해 열린 '위기극복 워크숍'에서 '수신료 분리고지 시행령 개정'으로 수신료 결손액은 2,627억원으로 추산되고, 광고수입이 868억 원이 감소할 것이라며 임직원 임금삭감과 20년 차 이상 대상으로 특별 명예퇴직 등 대책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KBS는 "명예퇴직 결과와 분리징수에 따른 재정 악화 상황 등을 감안해 구조조정도 적극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KBS 측은 구체적인 감원 계획 등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박민 KBS 사장은 지난달 19일 국회 상임위에 출석해 '인건비 1000억원 삭감' 계획을 언급하기도 했다. 

노조는 TV수신료 분리고지에 대한 대응없이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KBS 사측은 수신료 분리고지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기자·PD·아나운서 등 직군을 망라하고 인력을 차출하고 있다.

윤성구 언론노조 KBS본부 사무처장은 "박민 사장은 경영난의 큰 변수인 수신료 분리고지의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며 "수신료 분리고지 이후 5%정도 수입이 감소했는데, 수익이 급감할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노동자를 압박하는 용도로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회사가 어려워지면 구조조정을 할 수 있지만 회피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자산 처분 등 다른 방안이 있는지 선행 검토되어야 한다"고 했다. KBS는 지난해 노사합의로 '고용안전협약'을 맺어 해고 등의 구조조정을 실시할 경우 노사가 동수로 참여한 '고용안정위원회'와 협의하고 동의도 받아야 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노조원 등 관계자들이 13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박민 KBS 사장 임명안 재가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노조원 등 관계자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박민 KBS 사장 임명안 재가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방송계 구조조정으로 공공성 후퇴 우려
이러한 방송계 구조조정이 저널리즘의 질적 저하와 공공성 후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인력부족이 발생하면 보도와 프로그램의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역할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연우 세명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방송사 인원이 줄면 심층 취재와 공익적 프로그램 제작은 더 힘들어진다"며 "민주주의는 공짜로 오는 게 아니라 일정부분 사회적 부담을 통해 완성되는데, 방송사의 공적 역할을 어떻게 강화할지, 재원은 어떻게 조달할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준형 언론노조 정책전문위원은 "이번 구조조정 움직임은 장기적인 경영 악화로 공적 재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방송계 상황과 방송을 파괴하려는 적대적인 정권의 언론정책이 겹치면서 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후 KBS·MBC 등에 대한 민영화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공영방송의 정치적 지배구조(방송3법 등 대안)뿐만 아니라 재원구조(수신료 산정 및 징수 등)의 안정성을 도모할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